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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멕시코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발표에 멕시코에서 8년째 자동차 부품 생산 업체를 이끌고 있는 A씨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며 망연자실했다. A씨는 지난해 400억원을 투자해 공장 증설을 완료한 상태다. 완성차 업체들의 북미 지역 생산 공장 확장이 본격화하던 시기에 맞춰 대규모 투자에 나섰던 것이다. A씨는 "미국 정부가 멕시코산 제품에 관세 부과 시 우리는 현지 판매 가격을 올려야 해 경쟁력을 잃거나 관세 상승분을 손실로 떠안은 채 팔아야 하는 실정"이라고 우려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B씨 역시 지난해 연말부터 멕시코 몬테레이에 1000억원을 투입해 공장을 건설 중이다. B씨는 "회사 설립 이후 최대 규모의 투자인데 큰 차질이 생길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전반적인 생산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첫날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수입하는 모든 제품에 25%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공언하면서 해당 국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멕시코 누에보레온주 몬테레이에 연 40만대 생산 규모의 자동차 공장을 운영 중인 기아는 북미 전기차 생산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 당초 기아는 새로 출시한 소형 전기차 EV3를 몬테레이 공장에서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몬테레이 공장에 수천억 원을 투자해 전기차 생산시설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까지 멕시코는 미국 '니어쇼어링' 정책의 최대 수혜국으로 각광을 받았다. 특히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의 경우 미국·캐나다·멕시코 3국 간의 자유무역협정인 신북미자유무역협정(USMCA·구 NAFTA) 적용으로 관세가 붙지 않는다.
기아가 멕시코에서 생산한 차를 미국으로 수출할 경우 완성차를 미국으로 옮기는 물류비용은 발생하지만 멕시코의 인건비가 미국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에 원가 측면에서는 오히려 경쟁력을 지닐 수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멕시코에서 수입하는 제품에 25%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이 같은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미국 시장을 노리고 멕시코에 진출한 자동차 부품 업체들도 고민이 커진 건 매한가지다. 북미 친환경차 부품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멕시코에 진출한 포스코인터내셔널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멕시코 북동부를 북미 공략을 위한 생산 거점으로 낙점하고 지난해 10월 멕시코 코아우일라주 라모스 아리스페에 구동모터코아 공장을 준공한 바 있다. 부품 생산과 제조는 2020년 포스코인터내셔널에서 독립한 자회사 포스코모빌리티솔루션이 담당한다.
공장이 들어선 라모스 아리스페는 멕시코 북동부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로, 주요 메이저 완성차 업체를 비롯해 부품 공장이 밀집해 있다. 총 6만3925㎡(약 1만9371평)의 대지에 준공된 제1공장에는 프레스 18대가 운용 중이다. 추가로 현재 건설 중인 제2공장까지 가동되면 2030년까지 연 250만대 생산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멕시코 공장에 2030년까지 16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멕시코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관세 폭탄이 현실화되면 멕시코에서 생산하는 완성차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부품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 포스코인터내셔널 관계자는 "멕시코 현지 최종 고객사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어 관세의 직접적 영향은 미미하다"면서도 "다만 관세 부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현지 제조업체들에 부정적 영향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관계사들과 다각도에서 대응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멕시코에는 포스코인터내셔널 외에도 현대모비스와 현대트랜시스, 현대 위아 등 한국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대거 진출해 있다. 모두 현대차그룹의 북미 권역 공장을 염두에 두고 진출한 업체들이다. 이보다 규모가 작은 현대차그룹 협력사들도 상당히 많은 수가 진출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멕시코에서 수입하는 물품에 25%의 관세를 매겨버리면 멕시코에서 생산한 자동차나 부품들의 가격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며 "현대모비스 등 대형사들은 미국 내 공장을 최대한 활용해 멕시코 공장 생산량을 조절하며 대응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소규모 업체들은 대응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멕시코에 주로 자동차, 가전제품에 사용되는 용융아연도금강판을 생산하는 시설(연간 90만t 규모)과 코일가공센터, 선재가공센터를 운영 중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관세 인상이 현실화되면 우리 제품의 구매자인 멕시코 내 자동차, 가전제품 업체들이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어 면밀히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부과 발표에 영향을 받는 건 가전제품 공장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케레타로에서 가전공장을, 티후아나에서 TV공장을 운영 중이다. LG전자 역시 레이노사(TV), 몬테레이(냉장고), 라모스(전장) 등에 생산기지가 있다.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가전제품 대부분은 미국으로 수출된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미국을 포함해 다른 지역에서도 생산기지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통상정책 변화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을 지켜보면서 투자 속도를 늦추는 기업도 있다. 북미 완성차 업체를 공략하기 위해 멕시코 생산법인을 설립한 삼성전기는 전장용 카메라 모듈 생산공장 설립을 미루고 있다. 트럼프 취임 이후 관세정책 등 여러 가지 영향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뜻이다.
멕시코 정부는 "높은 관세를 매기면 피해를 입는 것은 결국 미국"이라고 경고하며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멕시코는 4756억달러(약 668조원)어치 물품을 미국에 수출했다.
이는 미국의 국가별 수입액 1위다. 미국 정부가 멕시코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인들의 생활물가가 치솟을 것이란 주장이다.
[김동은 기자 / 정지성 기자 / 안두원 기자 / 박윤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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