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정책연구원 ‘의료개혁의 시작, 무엇부터 할 것인가?’ 주제로 정책 좌담회 개최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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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 의료개혁 실행 방안에 대해 의료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건강보험 운영에 대한 관점이 없는 상황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불통방식 정책 논의가 계속 강행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26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4층 강당에서 의료정책연구원 주최로 ‘의료개혁의 시작, 무엇부터 할 것인가?’를 주제로 의료정책 좌담회가 열렸다. 강대식 의협 회장 직무대행은 “지속 가능한 의료 보장을 위해 어떤 매뉴얼이 적용되고 어떠한 원칙이 적용돼야 할지에 대해 의료계뿐만 아니라 국가, 시민사회, 국민이 컨센서스를 이뤄서 가야 하는 분명한 개혁의 시점이 왔다. 적지 않은 비용을 보건의료체계를 위해 쓰고 있지만 방향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9월 진행된 ‘바람직한 의료개혁의 방향’ 포럼에서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은 “건강보험 운영의 이념이 없고, 의료사회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과연 의료보장 제도를 유지할 자격이 있는가”라며 의료개혁에 대한 화두를 던진 바 있다.
문석균 의료정책연구원 부원장은 “건강보험제도는 의료서비스 가격을 소비자가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낮춰 접근성을 보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의료의 과다 이용을 야기해 보험재정 운영이 어려워진다. 또한 모든 의료분야의 문제를 수가로 해결하려는 자세로 인해 편법적인 수가제도가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이 유지되려면 경제적인 접근성과 지리적 접근성의 형평이 중요하다. 문 부원장은 “경제적 접근성의 형평은 보험료 부과체계로 달성할 수 있다. 지리적 접근성의 형평은 진료권과 진료의뢰체계로 구성되는 공급체계의 정립으로 해결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진료권을 폐기해 지역의료가 붕괴했다”고 설명했다.
윤석준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대한민국 건강보험 제도의 개선이 없었기에 지금과 같이 의료시스템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우리나라는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면서 “초창기 건강보험 제도는 시혜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돈이 없어도 병원을 갈 수 있게끔 하고자 했다. 하지만 1989년 전국민건강보험제도가 시작되고 나서도 제도를 성숙시키거나 발전시키지 못하고 시혜의 연장 차원에서 받아들인 게 사실이다. 이렇게 40여 년이 흘렀다”라고 평가했다.
제도의 발전 없이 의료 이용 패턴을 바꾸지 않다 보니 과도한 의료 서비스를 받는 환자들이 증가세를 보인다는 지적이다. 윤 교수는 “거의 문화 활동하듯 의료활동을 하는 환자도 있다. 오전에 클리닉에 방문해 진료를 받고, 오후에는 다른 데서 물리치료를 받는다. 전 세계에서 의료이용 빈도가 최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작동 메커니즘을 개선할 정책 없이 시간만 흐르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은혜 의협 정책이사는 “우리나라는 의료보장 국가라고 헌법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건강보험 제도로는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며 “건강보험제도는 체제를 유지할 수단이다. 의료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중산층 이상의 경우 문제가 없겠지만, 서민이나 가난한 사람은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야 한다. 건보가 단순히 의료제도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수호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이사는 “현재 건강보험제도의 문제점은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원정분만 등으로 보여진다”면서 “의료개혁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위해 요양기관계약제로 전환해야 한다. 공적 의료를 제공할 공급자와 민간의료를 공급할 공급자로 공급자 시장 분리가 필요하다. 기본적인 의료를 누리겠다는 사람과 좋은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사람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야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국민에게 의료를 보장하지 않는 의료민영화와는 다른 이야기”라고 밝혔다.
건강보험제도로 인해 의료서비스 가격을 소비자가 인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비용 의식을 낮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장재영 서울대병원 사직전공의는 “얼마를 내는지 알지 못하고 수요체계를 시장에 맡겨놓으니 소비자들은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이유를 의사 수 부족이라 판단한다. 또 의사들은 수요가 많은 건 환자들의 비용의식이 없어 의료서비스를 너무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는 의사와 환자 간 신뢰를 깨는 행동이다. 이러한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현 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 강사는 의료사회화와 의료시장화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할 시기라고 설명했다. 김 강사는 “보편적 의료를 제공하고자 했지만 포퓰리즘적인 정치권의 결정으로 의료시장화가 도입되면서 단점만 부각됐다”면서 “환자 입장에선 당일에 전문의를 볼 수 있으니 좋겠지만, 지속 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의료시장화와 의료사회화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강사는 “저소득층 국가의 경우 감염병, 영양 문제 등으로 보편적 의료도 받지 못해 의료사회화가 답이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소득 수준 등을 고려하면 의료시장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단일한 건강보험 의료체계를 분할해 의료 보험 안에 내부 시장을 만들어 의료서비스에 대한 가격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 또한 공공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의 역할도 불분명하다. 수요가 적은 서비스를 공공에서 맡을 수 있게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투데이/노상우 기자 (nswreal@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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