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증교사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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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한 달 남짓 남았다. 워낙 역동적인 나라인지라 무슨 일이 터질지 짐작하기 어렵다. 좀 이르겠지만 국내에서 올해의 인물을 꼽는다면 이재명, 김건희, 명태균, 한강이 거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 가장 영향력을 끼친 인물 한 명을 택하라 하면 단연코 민주당 당대표 이재명이다.
새해 벽두였던 1월 2일, 정치테러가 자행됐을 때 그의 운명은 더 심상치 않았다. 테러만으로 부족했다. 4월 총선을 두 달 남짓 남긴 2월에 이르러서는 사법리스크와 '비명횡사' 논란이 정점에 달했다. 그는 정치적 위기와 기회라는 벼랑끝에 몰렸다. 그때 역설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실정이 동아줄을 던져주었고 기사회생했다. 총선에서 175석이라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반면 자신도 모르고 그를 도왔던 윤석열은 108석을 얻어 입법 권력을 사실상 잃어버렸다.
위증교사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모인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류영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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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에게 11월은 극한 경험의 달이었다. 예상된 일이었다고 하지만, 천당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죄에 가까울 것으로 예상했던 공직선거법 재판에선 '징역형'이 내려졌고, 오히려 유죄 추정으로 지목됐던 위증교사 재판에선 명료하게 무죄를 선고받았다. 공직선거법 결심 공판이 열렸던 지난 9월 20일. 법정에서 최후진술에 나선 그는 "재판장님! 뭐 운명이겠지요. 제 개인적 삶이 어떻게 될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훈련된 검사들이 일단 기소해 놓고 재판하면 몇 년간 고생해서 무죄를 받더라도 인생은 끝난다고 하는 그 말을 지금 실행하고 있는데, 그들이 성공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역시도 운명으로 받아들여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위증교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1심 선고일인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인근에서 지지자들과 보수단체가 집회를 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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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며칠 롤러코스터 같은 판결로 서초동은 마치 '로마의 콜로세움' 같았다.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의 환호와 실망이 동시에 교차하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실종된 정치 속에 사법이 정치를 심판하는 대결의 장이기도 했다. 앞으로 '이재명의 운명'이 어찌 될는지는 그의 말처럼 아무도 알지 못하고 신만이 알 것이다. 5개 영역에서 재판받고 있는 그의 운명을 거론하는 것은 다 부질없는 일이다. 이제 두 번의 선고가 이뤄졌고 아직 13번의 판결을 앞두고 있다.
남은 13번의 선고는 그에게 큰 짐을 매게 한다. 천형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짐작된다. 그는 '창해일속'이라는 말을 꺼냈다. 그의 고된 처지를 반영한다. '바닷물속의 좁쌀'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고통과 고난을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삶이 자신의 뜻과 다르게 진행될 때 스스로를 위로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자의든 타의든 이재명은 운명에 이미 의탁하게 된 것 같다.
그 '운명'은 무엇인가. 오늘의 이재명을 만든 것은 8할이 윤석열과 검찰이다. 그간 이재명의 '선거대책위원회'는 정부·여당이었고 '선거대책본부'는 검찰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부·여당은 이재명을 잡을 판을 그렸고, 검찰은 그 오더를 받아 열심히 재판에 넘겼다. 재판을 여러 번 견학했지만 판사의 선고 결과를 분석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판사도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딱 떨어지는 혐의들이 아니고 죄다 주관적 판단을 요하는 것들이었다. 모양상 증거라는 객관적인 외관을 치장하고 있지만 야당의 대선후보를 '판사의 자유심증주의'라는 재판에 떠맞기는 것 자체가 정치의 패배라고 해야 할 것이다.
350번이 넘는 압수수색과 70~80명이 넘는 검사 인력, 그리고 2년 간의 집요하고 기록적인 수사는 사법사에서 유례가 없다. 현 정권에서 가장 많이 탄압을 받은 정치인은 이재명이다. 가만히 있어도 뜰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재명만큼 클 수 있는 정치인은 야권에서 아무도 없다. 두 기관이 너무 잘 작동해서 만들어진 일들이다. 좋든 싫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일은 대립에 의해 전선이 형성되는데, 윤석열 정부는 야권의 다른 정치인을 키울 생각은 눈꼽만큼도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야권 지지자들은 이재명이 끝까지 살아남아 피선거권을 박탈당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좋아할 것이다. 그런데 그의 피선거권이 날아가면 어떻게 될까. 고위 법조인 출신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재명이 날아갔을 때 오히려 더 바꿔야 되겠다는 큰 흐름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이 날아갔다고 좋아하다가 자기들이 날아가는 그야말로 큰 흐름이 생겼다는 것이다. 지금은 개인 이재명의 생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미 정치적 탄압과 박해를 받는 사람으로 자리매김을 했다는 사실이 요체라는 얘기였다.
이재명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의 정치적 행보는 좀 급했다. 시장에서 도지사로 대선에 나가 패배했고, 다시 국회의원과 당대표가 됐다. 한시도 쉴틈없는 숨가쁜 행보를 이어왔다. 이런 측면에서 정치적 탄압의 명분을 제공한 업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법원의 선고로 그가 날아가든 살아나든 야권에서 이재명의 입지를 위협할 사람은 없다. 외려 워낙 튼튼해서 걱정이 될정도이다. 최악의 경우라도 그가 등을 떠미는 사람이 리더로 태동할 수 있다.
그도 이 시점에서 다짐하고 있을 것이다. 이재명은 정치를 유연하고 좀더 여유있게 했으면 한다. 사법리스크라 불리기엔 적절하지 않지만 김대중은 사형선고를 받고도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에게도 2년 6개월 후이든, 아니면 7년 6개월 후이든 그 기회가 언제 찾아올지 지금으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판사마다 다른 자유심증주의를 예측하는 것은 보람없는 일들이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전열과 전선을 확장하는 일 뿐이다. 그 일은 몰아쳐선 될 일이 아니다. 달려오는 운명을 마주보고 과거의 과오는 고쳐가면서 민생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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