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신이 아닌 다신교(多神敎)에서는 신들의 역할이 각각 정해져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대표적 다신교인 힌두교에는 3명의 주신이 있다. 인도 카스트상 최상층 브라만의 어원인 브라흐마(Brahma)는 우주 창조의 신이니 역할은 ‘Generator’이다. 창조 후에는 운영하고 유지하는 ‘Operator’가 있어야 한다. 그가 비슈누(Vishnu) 신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그 운영 체제의 비효율성이 노정되고 시대와 환경에 맞지 않으면 과감히 그것을 파괴하여 혁신(Innovation)이 나올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 그 파괴자 역할을 담당하는 신은 인도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바(Shiva)이다. 그는 노래, 춤, 여자를 좋아하고 화끈한 성격으로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내뱉는다. 그의 파괴 대상은 우주만물인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악업, 악습 그리고 낡은 전통적 관습과 매너리즘 등 소프트웨어도 포함한다. 따라서 시바는 ‘Disruptor’라 불린다. 주신 3명을 그 역할 첫 글자를 따서 ‘GOD’라 한다. 우주 만물은 생성, 유지, 파괴의 순환을 끝없이 반복한다. GOD는 신의 역할과 만물의 순환을 의미한다.
이런 GOD의 역할 개념은 최근 경영학의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개념 정리에 힌트를 주었다. 기업이 설립되어(Generated), 잘 운영되고 있다면(Operated), 이젠 기존의 생각과 전통을 파괴(Disrupt)하며 혁신을 도모해야 할 사이클에 도달하게 된다. 혁신도 그냥 온건한 혁신이 아니라 파괴적 혁신만이 급변하는 기업 환경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한 두 명이 아니다. 즉, 빠르게 변하는 환경과 고객 니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존속하기 위해서는 ‘파괴적 혁신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방송 CNBC는 파괴적 혁신을 잘하고 있는 50개 글로벌 기업을 매년 선정하여 발표하는데, 그런 기업을 줄여서 ‘Disruptor’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안정적이고 잘 나가는 기업이 스스로 가만히 앉아서 ‘Disruptor’가 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 조직 내부에 누군가는 무엇을 파괴할지 고민하고, 파괴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혁신을 유발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 기업에서 나온 직책이 ‘Disruptor in Chief’이다. 줄여서 ‘DC’라 하며, 굳이 의역한다면 ‘혁신유발자’이다. 기업 조직에 DC가 있어야만 누군가는 Innovator가 될 것이고, 그를 이어 혁신을 안정시키는 ‘Refiner’가 나타날 것이다. 힌두교에 ‘GOD’ 가 있어 만물의 순환을 관장하듯이, 기업에서도 Disruptor, Innovator, Refiner가 있고 그 순서대로 그들의 역할이 지속되어야 한다.
실제로 잘 나가는 기업에서 DC는 평지 풍파를 일으키는 성가신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전 지구촌에 피할 수 없는 거물 DC 가 나타났다. 바로 미국 대통령 당선자 트럼프이다. 그의 1기 행적에서 본 바와 같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가의 인물이다. 그는 미국의 제조업 부활을 위해 파리기후협약이나 자유무역협정(FTA) 등 기존 국제계약을 헌신짝처럼 내칠 뿐만 아니라, 말도 안될 것 같은 관세 인상과 법인세 인하를 하겠다고 장담한다. 또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아무도 안 하려는 3D 일에 종사하며 미국의 기저층을 지탱하는 불법 이민자들을 축출하고, 위대한 미국을 만들겠다며 위험한 일을 인정사정없이 저지를 것 같은 모순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어 이제는 전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한 유명 컨설팅회사는 ’TRUMP’의 스펠링을 이용한 다섯 단어로 그의 정책 방향을 요약 설명한다. T는 관세(Tariff) 이다. “Tariff는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이고, 나는 관세인(Tariff Man)이다” 말하면서 중국에 60%, 나머지에 보편적 수입관세로 10~20%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했으니, 각국과 기업은 현재 가슴 졸이며 지켜보고 있다. R은 Risk로, 언제 법원에 의해 뒤집어질지 모르는 위험한(Risky) 조치를 행정명령(Executive Order)으로 취임 첫날부터 발표할 것이다. U는 그가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 과시적이기에 예측불가한 방향으로 세계를 몰아갈 것이라는 ‘Unpredictability’를 나타낸다. M은 제조업(Manufacturing) 부흥이고, P는 여러 정책 간의 상호 충돌과 모순을 나타내는 Paradox이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트럼프의 M, 즉 제조업 부흥 정책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의 바이든은 “가장 노조 친화적인 대통령”이라고 스스로 말했다. 당연히 트럼프는 그 반대로 친 기업(Business friendly) 성향이고, 반 노조(Anti- Union)정책을 펼칠 것이다. 미국은 주요 기관의 수장을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정치적 취향과 노선에 딱 맞는 사람으로 보임하는 엽관제(獵官制; Spoil System)가 확실하게 정착된 나라이다. 따라서 노동 정책을 총괄하는 노동부(DOL), 노조 설립 절차를 감독하고 결정하는 노동관계위원회(NLRB; National Labor Relations Board), 고용문제를 관장하고 판단하는 고용평등위원회(EEOC;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FTC; Fair Trade Commission), 산업안전보건청(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 등의 수장을 보수적이고 친 기업적 인물로 앉혀서 M 정책을 뒷받침할 것으로 예상된다.
M 정책상 트럼프는 노조의 설립과 팽창 그리고 파업(Strike)에 대해서는 명백히 반대한다. 선거 후 실권자로 급부상한 일론 머스크와의 지난 8월 대화에서 밝혀졌듯이, 그는 “파업하는 사람을 해고해도 되고, 파업은 경제적 테러(Economic terrorism)”라고 말했다. 공인으로서 적절한 발언은 아니지만, 그의 사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또 “노조 회비를 안내도 된다”고 발언하며, 근로자들의 노조 가입을 탐탁치 않게 보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노조 가입율은 1983년 20.1% 였으나, 2023년은10% 정도이니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연방정부효율부(DOGE; 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수장으로 임명된 머스크와 트럼프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밀월관계이지만, 노조를 싫어하는 점에서는 죽이 잘 맞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미자동차노조(UAW)나 전미 트럭노조(Teamsters) 등 대형 노조들은 당분간 힘든 국면에 처할 것이다. 민주당의 해리스 후보가 낙선한 결정적 이유는 경합주들이 몰려 있는 러스트 벨트(펜실베니아, 미시간, 오하이오, 위스콘신)에서 예전과는 달리, 노조원의 압도적 지지를 얻지 못했기 때문임이 밝혀졌다. 이는 캠페인 기간 중 민주당과 노조가 “트럼프는 파업에 불참하는 구사대(Scab)”라고 비난했기에 노동자들도 트럼프의 반 노조 성향을 이미 잘 알고는 있었지만, 노조만이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최선의 대책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다음으로 우리 정부와 기업이 주목해야 할 점은 트럼프와 머스크의 근로 시간에 대한 인식이다. 한국에 있는 ‘주당 52시간’이라는 제한은 그들에겐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머스크는 정부효율부(DOGE) 직원 모집에서 낮은 연봉이지만 주당 80시간을 일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공고했다. “제조업의 부흥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를 외치는 트럼프는 15년째 동결된 최저임금(시간당 $7.25)에 대해 올려 주겠다는 말은 절대 안하고 있다. 다만, 시간외(OT) 수당으로 받은 소득에 대해서는 비과세 하겠다고 공약했다. 바이든 정부에서 시간외 수당을 안 줘도 되는 관리직 직원(Exempt employee)의 최저 연봉 기준을 2025년부터 $58,656으로 인상했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트럼프가 이를 그냥 놔둘지 여부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기본적으로 그는 미국 근로자의 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친 기업 성향의 결과, 그는 기업의 Outsourcing을 경영에 필요한 것으로 보고 이를 제한하지는 않을 것이다.
싫든 좋든, 이제 트럼프는 확실히 전세계를 뒤흔들며 혁신을 유발할 Chief Disruptor(DC)로 등극했다. 피하지 못한다면 즐겨야 한다. 그를 이해하려면 1987년, 그의 나이 41세에 낸 <거래의 기술; The Art of the Deal>을 봐야 한다. 그 책에서 첫 번째로 강조하는 것이 “Deal 에서는 판을 키워서 생각하고(Think Big) 덤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관심을 크게 받을 수 있고, 소심한 사람을 아웃 시키면서 거래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의미이다. 보통의 경영자들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시작할 때 실패를 대비하여, 그 타격이 최소화 되도록 규모를 작게 시작하려는 경향이 있다. 부동산 개발프로젝트로 성공을 거둔 트럼프다운 생각이면서 동시에 글로벌 DC 로서 그를 평가할 때 긍정적으로 인정할 만한 대목이다. DC는 자신감만 있고 두려움은 없다. 기업에서 DC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관련된 사람(Innovator)들을 설득하여 자신 있게 혁신에 몰입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제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트럼프를 DC로 받아들이고, 그의 임기 중에는 노조의 공세가 약해질 수 있으니 무노조 경영을 다지는 기간으로 활용하여 혁신과 체질 강화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즉, 트럼프 이후 다시 민주당 정권이 올 경우 닥쳐올 노조의 강력한 공세에 대비하여 혁신을 할 때이다.
[진의환 매경 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소프트랜더스㈜ 고문/ 전 현대자동차 중남미권역 본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