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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한동훈 ‘당원게시판’ 대처, 왜 ‘김건희’가 떠오르나 [김민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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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5일 국회에서 당원 게시판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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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태평성대인가/ 위에서 한나라가 벌컥 들이치고/ 동에선 낙랑이 비켜 들어오니/ 내 나라 신세 가련하다/ 이 어찌 태평성대란 말인가!”

인기 드라마 <정년이> 속 국극 ‘자명고’에 등장하는 고구려 왕자 호동(정은채 연기)의 대사다. 요즘 국민의힘을 보면, 이 대사가 딱이다. 북한은 러시아에 파병하고, 미국의 새 정부는 거액 청구서를 내밀 태세고, 경제 지표는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데, 국민의힘만 ‘정녕 태평성대’ 같다. 집권 여당의 최대 이슈가 ‘누가 당원 게시판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비난했는가’라니.

논란 자체가 어이없지만, 이를 더 수준 이하로 만든 건 한동훈 대표의 처신이다. 당원 게시판에 한 대표와 부인·장인 등 이름으로 대통령 부부를 비난한 글이 올라온 사실이 알려진 게 지난 5일이다. 한 대표는 ‘한동훈’ 명의 글에 대해선 ‘동명이인’이라 일축했다.

그런데 가족 명의 글을 두고는 3주째 모호한 발언만 거듭하고 있다. “없는 분란을 만들어 분열을 조장할 필요는 없다”(14일), “위법이 있다면 철저히 수사되고 진실이 드러날 것”(21일), “어제 말씀드렸고 그걸로 갈음해달라”(22일).

평소 스타일에 비춰보면 납득하기 어렵다. 법무부 장관 시절 그는 김의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 제기에 자신의 미래까지 걸었다. “법무부장관 직을 포함해서 앞으로 어떤 공직이든지 다 걸겠습니다. 의원님은 뭘 거시겠어요?” 이번에는 왜 딴판인가.

한 대표가 내놓을 수 있는 답은 둘 중 하나다. 가족이 썼거나, 안 썼거나. 한 대표는 익명 게시판이니 작성자를 색출할 수 없다고 한다. 누가 압수수색이라도 자청하라 했나. 가족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다. 가족이 썼으면 인정하고, 사과할 부분이 있으면 사과하면 된다. 가족이 안 썼다면, 해킹이나 도용일 가능성이 크다. 수사로 규명하면 된다.

그는 둘 중 고르지 않았다. 대신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회가 게시판 글을 자체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한 대표와 가족 이름으로 올라온 글 1068건을 분석한 결과, 수위가 높은 글은 12건 뿐이며 이는 모두 작성자명 ‘한동훈’의 글이라고 했다. 가족이 썼든 안 썼든 내용이 별 것 아니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거다.

한 대표는 당원 게시판 논란을 ‘한동훈 죽이기’로 본다.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친윤석열(친윤)계 김민전 최고위원과 충돌한 뒤 기자들 앞에서 속내를 드러냈다. “당 대표를 흔들고 끌어내리겠다는 얘기 아닌가요?” 그는 “문제를 제기하려는 사람들을 보면, 명태균 리스트에 관련돼 있거나 김대남(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 건에 나온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자유다. 하지만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음모론으로 ‘뭉개기’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나 정당, 공직자에게는 책임성(책무성·accountability)이 요구된다. 정부·정당·공직자의 행태가 문제 될 때 ‘설명’을 요구하고 잘못이 있으면 문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세금으로 보조금을 지원받는 공당의 대표는 주권자가 의문 갖는 사안을 설명할 의무가 있다. 뭉갤 권리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도 김건희 여사 의혹과 관련해 책임성을 다하지 않아 비판받는 것이다.

한 대표 발언 중 “위법이 있다면 수사될 것”이라는 말도 문제적이다. 그는 윤 대통령·명태균씨 통화 녹취가 공개되자 “법리를 먼저 앞세울 때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자신의 가족 관련 사안에선 법리부터 따지고 나섰다.

보다 심각한 대목은 위법만 아니면 괜찮다는 인식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법의 그물에 가둘 수 없다. 법의 그물보다 훨씬 넓고 깊다. 법은 도덕·윤리·상식의 최소한을 규율할 뿐이다. 형사법은 더 그렇다.

검사 출신들은 모든 사안을 형사법 테두리 안에서 해석하려 한다. 당원 게시판 글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이나 형법상 업무방해 혐의에 해당한다면 심각한 사안이다. 그러나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문제가 전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한 대표는 ‘검사 정치’의 한계를 자복하고 있다.

한 대표 가족이 무관한 걸로 드러난다 해도 새로운 질문이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왜 지금까지 침묵·회피로 일관하며 논란을 키웠는가?’ 정치지도자로서의 리더십 이슈가 부상할 것이다.

지난 21일 한 대표는 “아내와 (당원 게시판에 대해) 이야기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윤 대통령 기자회견이 연상된다. 김건희 여사는 남편 휴대전화로 대신 문자를 보내도, 윤 대통령은 아내 전화를 볼 수 없다고 털어놓지 않았던가. 윤 대통령이 김 여사와 관련된 외부 조언을 들으면 “제가 집사람한테 그런 말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라고 답한다는 보도(중앙일보)도 떠오른다.

지금은 태평성대가 아니다. 민생·안보와 무관한 논란은 신속히 끝내야 한다. 영어 잘 하는 한 대표는 이 쉬운 속담을 알고 있을 터다. “Honesty is the best policy(정직이 최선의 방책).”

경향신문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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