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이제는 OUT!] 담배사업법 개정안 논의 지지부진
현행법, 담배 아닌 ‘유사담배’ 분류… 청소년 사이 ‘입문용 담배’ 확산
니코틴 농도 조절 가능해 더 위험
해외 34개국, 전자담배 판매 금지… 국내는 담배사업법 개정안 계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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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냄새가 덜 나니 여학생들이 전자담배를 많이 피워요.”
경기 성남시의 중학교 3학년생 박모 양(15)은 올해 초 친구를 따라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평소 담배 냄새를 싫어했던 박 양은 “액상형 전자담배는 향이 좋아서 흡연한다는 죄책감이 덜 든다. 부모님도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성인과 청소년 흡연율은 감소 추세지만 액상형 전자담배 이용자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현행법상 담배가 아닌 ‘유사 담배’로 분류돼 규제가 거의 없는 데다, 과일 향 등을 넣어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이용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보건당국은 합성 니코틴 등으로 만든 액상형 전자담배를 담배로 규정하고 광고 제한 등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아직까지 관련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 규제 사각지대 ‘합성 니코틴’
담배사업법상 담배는 ‘연초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연초의 잎이 아닌 줄기나 뿌리에서 원료를 추출하거나, 화학적으로 합성한 니코틴으로 만든 액상형 전자담배는 담배로 분류되지 않는다. 법적으로 담배가 아니다 보니 온라인이나 자판기 판매도 가능하고 광고 및 판촉 규제도 없다. 담뱃갑 경고 그림과 문구 표시 대상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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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상형 전자담배는 청소년 사이에서 ‘입문용 담배’로 확산되고 있다. 올 7월 발표된 ‘청소년 건강패널조사’에서 액상형 전자담배로 흡연을 시작한 학생의 60.3%는 현재 궐련형 일반담배를 주로 피운다고 했다. 중1∼고3 학생 흡연율은 2020년 4.4%에서 지난해 4.2%로 큰 차이가 없지만,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같은 기간 1.9%에서 3.1%로 증가했다. 특히 여학생은 1.1%에서 2.4%로 사용자가 두 배 이상이 됐다.백유진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청소년기 니코틴에 중독되면 대뇌 피질이 얇아지면서 충동적 성향이 강해지고 자기 통제력이 약해진다”고 말했다.
● 미국 등 121개국은 합성 니코틴 규제
미국은 액상형 전자담배 이용자가 심각한 폐 손상을 입거나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2022년 4월부터 합성 니코틴도 담배에 포함해 규제하고 있다.
21세 미만에게는 합성 니코틴 제품 판매가 금지됐고, ‘담배보다 덜 해롭다’는 식으로 마케팅할 수도 없게 됐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34개국은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를 아예 금지하고 있고 121개국은 광고와 판촉 마케팅 금지 및 세금 부과 등 관련 규제를 시행 중이다.
의료계에선 ‘액상형 전자담배는 덜 해롭다’는 담배업계의 주장을 두고 “검증되지 않았다”는 반론이 나온다. 유럽호흡기학회는 “어떤 전자담배도 금연에 효과적이고 안전하다고 평가할 수 없으며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담배는 중독과 발암 위험이 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니코틴 농도를 임의로 바꿀 수 있어 일반 담배보다 건강에 더 해로울 수도 있다. 실제로 시중 전자담배 판매점에선 구매자 요청에 따라 니코틴 첨가제를 더 넣은 고농도 제품을 판매하는 경우도 흔하다. 최근엔 ‘무니코틴’을 내세우며 “덜 해롭다”고 광고하는 전자담배도 나타났다. 백 교수는 “인체에 얼마나 유해한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들”이라고 지적했다.
● “낡은 담배 규제 서둘러 개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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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은 “액상형 전자담배도 궐련형 일반담배와 동일한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가향물질의 첨가, 실내 사용, 광고와 판촉 마케팅도 제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35개 회원국은 액상형 전자담배 제품을 담배 등으로 정의하고 규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국회에 담배의 정의를 연초 전체와 합성 니코틴 등으로 확대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10건이나 계류 중이다. 그러나 법안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유해성 검증 없이 담배로 규제해선 안 된다는 업계의 반대 등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합성 니코틴 규제가 주춤한 사이 업계에선 다양한 담배 제품을 개발해 청소년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관리 감독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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