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반도체 글로벌 전쟁이 치열한데
이공계 엘리트 年 3만명 해외 유출
최상위권 학생들 의대 쏠림 지나쳐
장기적 안목으로 고급 인재 키워야
AI(인공지능) 머신 러닝(기계 학습)의 토대를 만든 공로로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존 홉필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의 나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각각 91세, 77세였다.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의 평균 연령이 70세라고 한다. 이 기준으로 보면 이 전 부원장은 한창 연구에 매진할 나이다. 5년 계약한 이 전 부원장의 연구 성과는 중국이 먼저 가져갈 것이다. 우리나라 과학계가 노벨상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채희창 논설위원 |
미국,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은 AI·반도체 등 첨단산업을 주도하기 위해 인재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일찌감치 다른 나라의 고급 인력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자리를 제공했다. 엔비디아 젠슨 황, 구글 순다르 피차이, 마이크로소프트 사티아 나델라 등 미국 글로벌 테크 기업의 CEO가 외국 출신이다. 2030년 AI 분야 글로벌 1위를 천명한 중국은 세계 각지의 과학 인재를 쓸어담고 있다. 심지어 화웨이는 외국의 천재 소년들을 영입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2010년대 중반 이후 매년 한국의 이공계 학부생 및 대학원생 약 3만명이 해외로 떠나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 폴슨 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AI 인재의 40%가 해외로 떠났다. 스탠퍼드대의 ‘AI 인덱스 2024’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한국은 인도와 이스라엘에 이어 AI 인재 유출이 세 번째로 많은 국가다. 지난해 미국이 석박사급 이상의 한국인 고급 인력과 가족에게 발급한 취업 이민 비자가 5600여건이다. 인구 대비 발급 비자 수는 한국이 인도·중국의 10배가 넘는다. 반면 해외로 나간 과학 인재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우리는 핵심 인재를 지키는 데도, 키우는 데도 미흡하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며칠 전 이공계 석박사 인력이 매년 4만명 부족하다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냈다. AI 분야 전공자는 국내에서 배출되는 이공계 박사의 6%에 불과하다. 의료와 금융, 제조,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활용이 확산하는 데 대비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국가인공지능위원회가 지난 9월에야 출범한 걸 봐도 그렇다.
최상위권 고교생들이 이공계가 아니라 의대로만 몰리는 것도 우려를 키운다. 2021년부터 올 1학기까지 자퇴한 서울대 신입생 611명 중 공대생이 187명으로 가장 많았다. 카이스트에서도 최근 3년간 182명이 의학계열 진학을 위해 자퇴했다. 의대 증원이 결정되면서 ‘의대 블랙홀’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 이런 풍토에서 창의적인 과학 인재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정부의 근시안적 접근도 문제다. IMF 외환위기 때도 연구개발(R&D) 예산은 줄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R&D 예산을 16%나 삭감해 과학기술계의 큰 반발을 샀다. “나눠먹기식 R&D를 원점 재검토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카르텔 타파’ 지시 여파다. 직격탄을 맞은 대학 이공계 연구실이 마비돼 청년 과학자들이 큰 상처를 입었다. 해외에 나가는 연구자들의 발길이 더 빨라졌다고 한다.
한국은 가진 게 사람뿐인 나라다. 밖에 나가 있는 인재를 불러들여도 모자랄 판에 국내 인재까지 해외에 뺏긴다면 미래는 보나마나다. 우리의 우수 과학 인재들이 국내에서 충분한 연구비 지원과 신분 보장, 처우 개선으로 연구활동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들이 산업계, 학계, 정부 부처를 옮겨다니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 분야 노벨상은 어쩌다 주어지는 게 아니다.
채희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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