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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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 이후, 개각설이 돌았다. 국무총리 후보로 주호영 국회부의장, 권영세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이정현 전 의원 등이 거론됐다. 이어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추가됐다. 그러더니 ‘대미 외교가 중요하다’며 주미대사 출신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이 급부상했다. 그러다 25일엔 ‘경제가 중요하다’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름이 거론된다. 동시에 대통령 지시라며 “여성 총리 후보” 얘기도 나온다.
익숙한 윤석열 정부 국정운영 모습이다. 총리 인선을 앞두고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건 탓할 게 아니다. 그러나 지금 거론되는 인물 대부분이 ‘내 사람’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주 부의장이나 권 의원이 국민의힘에서 나름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큰 국정기조 변화를 예고하는 인물은 아니다. ‘친윤계’ 원희룡-추경호, 그리고 정진석 비서실장까지 총리 후보로 거론됐다는 건 윤 대통령 마음을 내보인 것이다.
더욱이 행정안전부 장관에 ‘친윤 핵심’ 이철규 의원, 교육부 장관에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 여성가족부 장관에 윤 대통령과 같은 법무법인에 있었던 전주혜 전 의원, 그리고 국정원장에 이상민 행안부 장관 하마평까지 이르면 ‘제2기 친위 내각’을 꾸리고 싶은 속내가 그대로 보인다. ‘자폭’ 기자회견, 바닥 치는 지지율에도 아무런 성찰도 아픔도 없는 것이다. 하마평이 그대로 이뤄지진 않겠지만, 하반기도 전반기와 똑같은 상황이 이어질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윤 대통령은 “국면 전환용 개각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데, 그러면 10%대 국면에 안착하겠다는 건가. 거론되는 인물로는 어차피 ‘국면 전환’이 될 수도 없다.
총리 후보 논의 과정을 보면, 윤석열 정부 특징인 ‘즉흥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깊은 고려나 방향성에 대한 고민보다 “그 사람 어때”라는 ‘불쑥’ 방식이 느껴진다. 한은 총재를 총리로 발탁하겠다는 발상에선 그동안 정부가 틈날 때마다 ‘금리 인하’를 거침없이 내뱉은 바탕이 뭔지 알게 해준다.
그리고 11월에 하마평을 띄우면서 개각은 내년 초에나 진행할 것이라 한다. 참으로 여유롭다.
기자회견 이후 벌어진 대표적인 일이 △‘골프 외교’ 논란 △정무수석의 “기자 무례” 발언이다. 지난 8월부터 계속된 ‘주말 골프’는 기자회견 이틀 뒤인 9일에도 쉬지 않았다. ‘트럼프 골프 준비’라는 거짓말까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골프를 치자고 하면, 그린피로 얼마를 요구할까.
기자회견 이후 대통령실 내부 평가에서도 ‘횡설수설 대통령’ 아닌, ‘무례 기자’를 성토했던 것인가. 홍철호 정무수석은 ‘용산’에서 그래도 온건한 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니 ‘용산’ 매파들은 어느 정도일까.
음주운전으로 벌금 800만원형을 받고도 대통령실에 복귀해 논란이 일었던 강기훈 국정기획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지난 22일 사의를 표명하며 입장문을 발표했다. 죄송하다는 말 대신 “제가 지금까지 본 분 중 가장 자유 대한민국을 걱정하시고 사랑하시는 분은 대통령님”이라고 말했다. 홍보수석이나 대변인 아니고는 수석도 물러나면서 입장문을 발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비서관도 아닌 행정관이 이러는 건 주제넘은 일이다. 그것도 개인 비리로 물러나 대통령실에 큰 부담을 줬으면 조용히 물러나는 게 예의다. 그런데 또 부담을 줬다. 누구 보라는 입장문인가. ‘대통령실 직원들은 각자도생이구나’라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요즘 대통령실이 잔뜩 고무됐다고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선거법 위반 혐의 1심 판결, 한동훈 대표의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 논란, ‘티케이’(TK)와 ‘70대 이상’의 분전으로 지지율은 17%에서 20%로 올랐기 때문이라 한다.
앞으로 개각과 대통령실 개편 난항, 김건희 특검과 채 상병 특검 거부권 행진, 친윤·친한 분란이 계속될 것이다. 그 와중에 경제는 1%대 저성장이 우려되고, 트럼프 2기 외교적 파고가 예고돼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계속 여유로울 것이다.
신용한 전 윤석열 대선캠프 정책총괄지원실장이 주간경향 인터뷰에서 당시 풍경을 이렇게 전했다. “내일 광주 방문해 공약을 발표한다 치자. 맨 위에 A4 2장 요약본이 올려져 있는 회의자료가 나온다. 4~5분은 듣는다. 그러다 ‘야, 내가 광주지검 근무할 때 말이야. 지검 앞에 치킨집이 있는데, 야 이름이 고상하게 포시즌이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토요일 오후엔 3시간씩 간다. 기자회견 직전에, 예를 들어 지티엑스(GTX) 연장 지도를 놓고 설명해야 한다. 5분 듣다 또 이야기한다. 설명에 집중하지 않는다. 10분 남겨놓고 그때 가서야 요약 페이퍼만 대충 보는 거다.”
당락이 왔다 갔다 하는 대선 기간에도 이리 여유로웠던 대통령이다. 2년 반, 얼마나 달라졌을까. 지난 7일 회견이 답해준다.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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