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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붙잡지 마라, 절로 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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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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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이 소설가가 문단에 데뷔하는데 원로 소설가의 압력(?)으로 자기가 그리고 싶은 세계를 맘대로 그리지 못한다. 그러고 있는 것을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지켜보다가 꿈을 벗는다. …깨어나면서 듣는 한 마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으면서 산다는 게 한 사람이 자기가 그리고 싶은 세계를 맘대로 그리는 것보다 우선이다.” 무슨 뜻인가? 간단하다. 개인이란 어디까지나 하나의 관념이지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하고 사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무엇의 뜻을 이루는 것보다 먼저라는 그런 얘기 아니겠는가? 흠!



-아프리카 어디쯤인 것 같다. 붉은 마당에서 벌거숭이 여자들이 군무(群舞)를 춘다. 늙은이, 젊은이, 어린이들이 고르게 잘 버무려진 비빔밥 같다. 건강하다. 아름답다. 싱싱하다. 천진하다. 황홀하다. 나풀거리는 천 조각들이 한여름 배롱나무처럼 여자들의 벗은 몸 군데군데를 은근슬쩍 장식하고 있다. 아무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는다. 입술을 비틀지 않는다. 가슴을 가리지 않는다. 배를 움켜잡지 않는다.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학처럼 뱀처럼 노루처럼 대나무처럼 개울처럼 끊임없이 흐르며 춤을 춘다. 아, 남자들도 보인다. 하지만 드문드문 겨우 보인다. 얼마 안 되는 남자들이 그나마 여자들 틈에 몸을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사금파리처럼 파고든다. 그래도 뭐 아무렇지 않다. 갑자기 춤이 사진으로 바뀐다. 단체사진이다. 누구는 서고 누구는 앉고 누구는 바닥에 엎드리고 누구는 무릎 꿇고 누구는 옆으로 눕고 각양각색 저마다 포즈를 취한다. 모두가 환하게 웃는 얼굴이다. 웃는 얼굴이라기보다 그냥 그대로 하나인 웃음이다. …이쯤에서 꿈을 벗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마디. “잊지 마라, 저 모두가 오랜 세월 짓눌려온 아픔과 슬픔과 억울함과 외로움과 눈물의 열매인 것을! 그것들이 없었으면 이것들이 없는 거다.” 마침내 먼동이 트는 21세기 ‘여성이 앞장서는 새천년 모성(母性)의 시대’ 서막(序幕)을 본 느낌이다. 가슴이 설레고 머리가 개운하다. 반갑다. 좋다. 고맙다. 오, 어머니!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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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볼 때는 샨티 이홍용인 줄 알았는데 옆에서 보니 아니다. 속으로 놀란다. 흠, 세상에 똑같이 생긴 다른 사람이 있구나. 봉긋하게 솟아오른 흙더미를 손으로 쓸어 평평하게 만들며 그가 말한다. 자기는 월간 잡지를 발행하는데 지난달에 “덜어주자”라는 제목으로 특집을 냈더니 아예 덜고 말고 할 것 없이 잡지사가 망하게 생겼단다. 터무니없는 세금이 부과되어 이의를 신청했지만 구제될 가망이 거의 없단다. 금방이라도 울음보가 터질 기세다. 그가 이 달에 거둔 열매라며 석류 한 자루 바닥에 쏟아놓는데 석류가 아니다. 멍게다. 석류든 멍게든 거죽을 벗기고 속을 먹는 건 일반이지, 망하든 흥하든 사람이 살면서 겪는 건 일반이지, 울고 말고 할 것 없지, 그렇게 울상을 하면 우는 거고 그냥 웃으면 웃는 거고, 잠시 살다 가는 인생, 뭐 그렇고 그런 거지,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꿈에서 나온 것 같다. 석류 알처럼 탱글탱글하던 멍게 속살이 눈에 선하다. 그걸 먹었는지 그냥 보기만 했는지 잘 모르겠다. …깨어나면서 드는 생각 한줌. 사람 또한 그러하니 겉으로는 저마다 각양각색 다르지만 속으로는 그놈이 그년이요 그년이 그놈이라, 분별은 “예스” 차별은 “노”로다. 아멘. 이리 보면 나는 나, 너는 너요, 저리 보면 내가 너, 네가 나렷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세상에 똑같이 생긴 다른 것이 어디 사람만이겠는가?



-한국 축구팀이 올림픽에서 우승한다. 온 나라가 뒤집어진다. 애고 어른이고 여자고 남자고 대장이고 졸병이고 남이고 북이고 산이고 물이고 없다. 완전 하나다. 통일이고 뭐고 그런 거 없다. 그저 감동이고 괜히 눈물이다. 시상식이다. 한국 선수들 입장. 그런데 어? 안 보인다, 주장 손흥민이 안 보인다, 아무리 봐도 없다, 보이지 않는다. 누가 소리친다. 손 어디 있냐? 손 나와라. 너 없으면 우리 없다! 모두가 합창한다. 손 어디 있냐? 손 나와라, 너 없으면 우리 없다! 아! 나온다, 묵직한 휘장 걷고 양손 번쩍 들고 웃으며 나온다. 그런데 저건 무슨 엉뚱한 퍼포먼스? 손흥민이 나오며 옷을 벗는다. 트레이닝 벗고 러닝 벗고 마지막 팬티까지 홀라당 벗는다. 벌거숭이 알몸이다. 알몸 손흥민이 입 나팔로 말한다. “이게 내 모든 것이다. 나의 전부를 한님께 바친다.” 이번에는 세계가 뒤집어진다. 브라질이고 네팔이고 영국이고 중국이고 스위스고 일본이고 북해고 남해고 그런 거 없다. 그냥 지구별이다. 아름다운 초록별이다. 온통 난리법석으로 흔들리다 꿈에서 나오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한마디. “보아라, 제가 세상에 올 때 받아온 것에서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고 보태지도 않았다. 저게 옹근 것이다. 하늘이 준 것 말고 스스로 만든 무엇이 티끌만큼이라도 보태어져 있으면 ‘옹근 모두’가 아니다. 흥민이 제법이다. 빠뜨린 것도 보탠 것도 없는 본디의 너! 이것이 네가 한님께 바칠 모든 것이다. 완전하고 싶으면 보탤 게 아니라 덜어낼 일이다. 한님 것 아닌 네가 만든 것, 그게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도, 있거든 덜어라, 비워라. 아니, 그럴 것 없다, 붙잡지만 마라. 절로 비워질 터이니. 위도일손(爲道日損)이렷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면서 옮긴 다그 함마르셸드의 한마디가 이런 꿈을 불렀나? “당신 발자국이 갈수록 땅에서 흐려지듯이 당신 이름이 당신 행적에서 지워지는 것에 감사하라.”



관옥 이현주 목사



*이 시리즈는 순천사랑어린마을공동체 촌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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