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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한 번에 두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바람둥이 엄마의 몸에 비밀이 [생색(生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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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38] 새끼가 어미의 젖을 먹고 있습니다. 열심히 젖을 빠는 새끼를 보는 어미는 어느 때보다 따스한 표정입니다. 잘 먹이고, 잘 키우겠노라는 다짐이 어미의 눈에 비칩니다. 얼마 후였습니다.

어미가 복통을 느낍니다. 그리고 잠시 후. ‘툭’하는 소리와 함께 또 다른 새끼가 태어납니다. 육아에 바빴던 나날들. 새끼가 잠든 사이 어미가 딴짓했던 걸까요.

어미는 억울합니다. 최선을 다해 육아에만 전념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땅에서 솟아났는지. 도대체 둘째 이 녀석은 어디서 나타났을까요. 답은 신체적 비밀에 있습니다. 녀석의 자궁이 2개이기 때문입니다. 호주의 상징인 캥거루·코알라와 같은 유대류(Marsupials)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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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비밀 같은 거 없어요, 없다고요.” 회색캥거루 새끼와 어미. [사진출처=JJ Harr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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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류 녀석들의 신체비밀
유대류. 호주에 주로 서식하는 동물군을 일컫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머니에서 새끼를 양육하는 모습으로 잘 알려졌지요. 새끼 캥거루가 어미의 주머니에 쏙 담겨있는 모습은 귀여움 그 자체입니다. 유대류의 영어단어 Marsupial 역시 주머니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marsippos에서 나왔습니다.

우리에겐 주머니로 유명하지만 사실 녀석들에겐 더 큰 신체적 특징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두 개의 자궁입니다. 이 녀석들은 자궁이 두 개인 덕분에 새끼를 낳아 키운 지 얼마 안 되어서 또 다른 새끼를 낳을 수 있습니다(그 사이 교미는 없었습니다). 우리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가 새끼 젖을 먹이는 동안에는 수정이 힘든 것과 다른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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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밖은 위험해.” 독일 드레스덴 동물원 캥거루 새끼. [사진출처=Fiver, der Hellse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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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과 진하게 사랑을 나눈 암컷 캥거루를 보시지요. 바람둥이인 이 녀석은 한 놈과 사랑이 끝난 직후 또 다른 녀석과 붙었습니다. 가장 잘생긴 녀석과도, 가장 힘이 센 녀석과도. 그렇게 수 없이 많은 수컷놈들이 암컷을 거쳐 갑니다.

두 개 자궁에 각각 새끼 캥거루가 자리를 잡습니다. 한 녀석은 잘생긴 캥거루가 아빠고, 한 녀석은 힘이 센 캥거루의 자식입니다. 아빠가 다른 ‘쌍둥이’를 암컷 캥거루는 뱃속에 품을 수 있는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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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순이는 내거야.” 붉은 캥거루 수컷 두마리가 대결을 벌이는 모습. [사진출처=Del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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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거루에게 쌍둥이가 없는 이유
그러나 이 녀석들이 동시에 태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캥거루는 한 녀석부터 정성껏 돌본 뒤에 나머지 새끼를 낳습니다. 한꺼번에 둘을 키우는 건 캥거루에게도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암컷 캥거루에게 ‘착상지연’(Embryonic Diapause)이란 놀라운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수정체를 잠시 휴면상태로 보관한 뒤 상황이 나아지면 착상시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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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 동생 싫어요, 싫다고요.” 회색 캥거루 모자. [사진출처=fir0002]


첫 새끼를 키우는 와중에 별다른 교미 없이도 둘째를 낳을 수 있던 배경입니다. 녀석들은 가뭄이 들거나 생식 환경이 척박해질 때도 착상을 지연시킵니다. 새끼가 굶어 죽을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수정은 함께 됐지만, 출산은 시차를 두는 놀라운 능력을 갖춘 암컷 캥거루는 또 놀라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제법 성숙해진 첫째를 위한 젖과 이제 갓 태어난 새끼를 위한 젖을 동시에 만듭니다. 모유와 이유식을 한번에 만드는 슈퍼맘의 모습입니다.

자궁만 두개가 아니라고?
더 진하게 파고듭니다. 녀석들의 신체에 두 개인 건 자궁뿐이 아닙니다. 암컷 캥거루와 유대류 동물들 대부분은 ‘질’도 두 개입니다. 각각의 질은 각각의 자궁과 연결돼 짝을 이루지요. 이 역시 번식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진화라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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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거 참 거기 찍지말라니까 그러네.” 붉은캥거루.


이를 가만둘 수컷 놈들이 아닙니다. 비어있는 질을 넋 놓고 바라볼 정도로 녀석들의 성욕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다른 질에도 자신의 그것을 갖다 넣어야 자기 새끼가 수정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수컷 캥거루의 성기는 끝이 두 쪽으로 갈라져 있는데, 암컷 캥거루의 두 질에 끼워서 맞추기 위해서 진화된 모양입니다.

척박한 환경에 맞춘 결과물
암컷 캥거루가 생식기관을 두 개로 진화시킨 배경에는 녀석들의 서식지와 관련 있다고 생물학자들은 분석합니다. 대부분의 유대류가 서식하는 호주. 광활하고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지만 사실 동물들이 살아가기엔 매우 척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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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없는 땅에서 사는 법이요? 물을 안마시면 돼요.” 유대류인 코알라는 주식인 유칼립투스 잎에서 수분을 얻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사진출처=Guillaume Blanchard at French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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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대부분이 사막이나 반건조 지역으로 이뤄져 있어서 물을 생명줄로 삼는 동물들에겐 치명입니다. 폭염과 잦은 산불 역시 동물들에게 부담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캥거루를 비롯한 유대류는 자신만의 살길을 찾았습니다. 임신의 연속성을 높여서 더 많은 새끼를 낳는 것입니다. 캥거루를 비롯한 유대류 새끼들은 착상된 지 30일이 지나면 출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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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주머니는 찾을 수 있죠.” 주머니 속 왈라비. 유대류 대부분은 인간으로 치면 미숙아로 태어나서 육아낭에서 큰다. 인큐베이터인 셈.


눈도 못뜨는 핏덩이 같은 새끼들을 낳는 셈인데, 이놈들은 어찌나 생존본능이 대단한지 어미의 털을 잡고 스스로 주머니(육아낭)로 들어가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줍니다. 어미의 주머니는 마치 인큐베이터 같아서 새끼들은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무럭무럭 자랍니다. 자연이 유대류에게 부여한 놀라운 능력입니다.

자궁이 두 개인 덕분에 이론적으로 암컷 캥거루는 끊임없이 출산을 할 수 있는 신체구조를 가졌습니다.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는 생식본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지요. 엄마는 위대하다는 말, 캥거루가 증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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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내 새끼 언제 이리 컸누. 뽀뽀” [사진출처=Charles J. Sha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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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인간들만큼이나 새끼를 사랑한다네.” 시드니의 붉은 캥거루. 1819년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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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ㅇ캥거루와 같은 유대류는 질과 자궁이 두 개다.

ㅇ주 서식지인 호주의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번식 연속성을 높인 것이다.

ㅇ주머니에서 새끼를 키우는 캥거루의 모성은 인간 못지 않다. 엄마 사랑해.

생명(生)의 색(色)을 다루는 콘텐츠 생색(生色)입니다. 동물, 식물을 비롯한 생명의 성을 주제로 외설과 지식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가끔은 ‘낚시성 제목’으로 지식을 전합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격주 주말마다 재미있는 생명과학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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