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20대 여성 오피스텔 추락사
前남친과 싸운 후 떨어져…스토킹혐의 구속
유족 “흉기 휘둘러야 살인인가”…타살 의혹
항소심 “사망 책임 못 묻는다”…징역 3년2월
지난 1월 전 남자친구와 싸운 직후 부산의 한 오피스텔 9층에서 떨어져 숨진 20대 여성의 생전 모습. MBC 실화탐사대 방송화면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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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숨지기 직전 오피스텔 9층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유족은 B씨를 범인으로 즉각 지목했다. 생전 A씨는 B씨와 교제하는 9개월간 주변인들에게 지속적인 스토킹과 상습 폭행, 협박 등 피해 사실을 호소해왔다. 유족 측은 “A가 친구를 만나러 갈 때면 (B씨가) 한여름에도 긴팔과 긴바지를 입게 해서 증거 사진을 찍게 하고, 마트를 갔다고 하면 영수증을 찍어서 보내라고 하고, A의 지인들에도 폭언을 일삼았다. A를 몸에 멍이 들 정도로 폭행하기도 했다”며 “자살을 종용하는 카카오톡을 보낸 것도 확인했다”고 토로했다.
경찰에도 수차례 신고했지만 B씨의 협박은 더 심해졌다고 한다, 유족 측은 “반복되는 폭행, 폭언, 협박 등에 경찰에 신고했지만, B씨가 자신의 아버지가 변호사고 삼촌이 경찰이라는 얘기를 하며 신고를 하더라도 자기는 금방 풀려날 거라고 얘기했다”며 “A가 보복이 두려워 결국 처벌을 포기했다”고 전했다.
검찰은 이 같은 B씨의 범행이 A씨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져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보고, 지난 4월 B씨를 협박 및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 공소 사실에 따르면 B씨는 지난해 8~10월 A씨 집에 찾아가 와인 잔을 자기 손에 내리치거나 의자를 던지는 등 수차례 협박한 혐의를 받는다. 같은 해 12월9일엔 A씨가 이별을 통보하자 약 13시간 동안 A씨 집 현관문을 두드리거나 초인종을 누르고 365차례에 걸쳐 카카오톡 메시지를 전송하는 등 스토킹한 혐의도 받고 있다.
A씨가 사망 전 자신을 찾아온 B씨와 이야기 나누는 모습. MBC 보도화면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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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은 A씨 사망에 B씨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며 타살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유족 측은 “A가 추락한 후 가해자는 A가 들어오기 전 혼자 먹었던 맥주캔과 슬리퍼를 챙겨 나오는 모습이 발견됐고, 추락 직후가 아닌 10여분이 지나고 나서야 119에 신고를 했다”며 “사건 당일 A가 지인을 만났는데, 스토킹이 두려워 지인에게 부탁해 오전 2시쯤 오피스텔 문 앞에서 헤어졌고, 2시23분 B씨가 119에 투신 신고를 했다. B씨가 첫 진술 땐 투신 당시 본인 차 근처에 있었다고 거짓 진술했다 경찰이 추궁하니 투신 때 같이 있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고 강조했다. 또 “(CCTV를 보니) 창틀에 (A씨가) 매달려 있다. 죽으려 했으면 그냥 뛰어내렸겠지 뭐 하러 안간힘을 쓰고 있겠냐”며 “매달려 있는 순간 그 애(B씨)가 보고 있다. A가 한동안 버티고 있었는데, 힘이 없어서 한쪽 팔이 떨어지니까 그제야 B씨가 가서 잡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1심, 2심 재판부 모두 B씨의 행동과 A씨 사망 사이에 명확한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봤다. 앞서 지난 7월 1심 재판부는 스토킹 처벌법 위반, 특수협박 혐의 등으로 기소된 B씨에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증명되지 않은 범죄사실에 대해 B씨의 행위가 피해자 사망 사이에 명확한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유죄로 인정한 사건 범행에 대해서만 형을 정하겠다”며 “범행 경위 등을 고려할 때 죄질이 몹시 무겁고 과거 다른 여자친구의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징역 10년을 구형했던 검찰은 1심의 형이 너무 적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B씨 측도 특수협박 범행 관련 피해자에 대한 해악의 고지가 없었고, 1심의 형은 너무 과중해 부당하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B씨 측은 또 1심 재판부가 이 사건에 작용되지 않는 양형 기준을 참고하고, B씨의 범행과 피해자의 사망 관련성을 인정하는 판시는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A씨가 생전 B씨의 폭행과 협박, 스토킹에 시달려온 모습. MBC 보도화면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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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재판부는 “B씨의 양형에 피해자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헌법에서 정한 이중 처벌 금지 원칙에 반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일부 감형된 선고를 내렸다. 부산지법 형사항소 3-3부는 지난 22일 B씨에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한 뒤 징역 3년2개월과 40시간의 스토킹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 만남과 결별이 반복되며 다툼의 수위가 높아졌고 서로 다투는 중에 죽음을 언급하거나 극단적인 행동으로 발전했다. 피해자 집 앞에서 13시간 현관문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누르는 범행은 죄질이 매우 불량하고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게 했다”며 “반복되는 B씨의 범행으로 피해자의 정신적 착취의 정도가 심해졌음을 피해자의 행동 등을 통해 추측할 수 있다. 유족과 지인들은 범행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고통받으며 엄벌을 탄원해 피고인은 죄책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피해자 사망에 대해 피고인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는 별개 수사로 처리돼야 하고 판결에 그 책임을 더할 경우 헌법이 정한 이중 처벌 금지 원칙에 어긋난다”며 “또 피고인이 대부분 범행을 인정하고 있고, 피해자 유족에게 지속해 반성 의사를 표시하고 공탁금을 내는 등 피해 회복 노력을 전혀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감형 이유를 밝혔다.
감형을 받자 B씨는 뒤돌아 고개를 숙였고, A씨 유족과 지인들은 “진짜 미안하긴 한 거냐”며 절규했다. 피해자 어머니는 지난달 항소심 결심 공판에 출석해 법정 최고형을 선고해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유족은 “A가 생전 스토킹하던 전 남친과 드디어 헤어졌다며 올해 여름 유학 가면 지독한 스토킹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고 안도하며 부푼 꿈을 얘기했었다”며 “흉기를 휘둘러 죽여야만 살인이냐. 이 정도의 처벌로는 또 다른 교제 폭력과 안타까운 희생을 막을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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