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옹 반 렌테르겜 지음, 롤러코스터 펴냄
러·獨 2000년대초 에너지 협력
세계최장 해저 천연가스관 설치
'소련 제국주의 부활' 강한 의지
'우크라에 사용료' 전쟁 원인으로
푸틴의 광기 눈감은 유럽도 책임
‘알테르나티플로스(Alternativlos)’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와 함께 종종 언급되는 이 단어는 ‘대안이 없다’는 뜻을 갖고 있다. 2010년 유럽을 덮친 금융 위기 당시 유로존 국가들을 상대로 구조개혁과 긴축 정책의 불가피하다는 것을 강조할 때 그가 내건 말이었다. 독일은 금융 위기 대처에만 이 같은 단호함을 보였던 것은 아니다. 에너지 자원 확보 문제에서도 동일한 입장을 보였다.
시간을 거슬러 가 2001년 9월 이제 막 마흔 줄에 접어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연방 대통령이 독일의 연방의회가 있는 건물인 라이히스타크스게보이데의 문턱을 넘었다. 러시아로 진행하던 연설을 중단한 채 갑작스럽게 유창한 독일어를 시작한 푸틴은 이전의 러시아와 독일 사이의 얼룩진 역사에 대해 사과한 뒤 준비했던 메시지를 꺼냈다. “오늘날 독일은 러시아의 최대 경제 파트너입니다. 러시아의 심장은 (독일과의) 협력과 동반자 관계에 활짝 열려 있습니다.”
이에 즉각 반응한 것은 맨 앞 줄에 앉아있던 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였다. 이후 물흐르듯이 강력한 경제적 관계로 뭉친 이들은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가스관을 설치하기로 한다. 1973년 소련과 서독을 잇는 최초의 가스관이었던 ‘브라더후드’의 부활이다. 서독은 소련의 값싼 천연가스를 얻고 소련은 부족한 설비와 자금을 챙기는 계약이었다. 이는 21세기에 ‘노르트스트림 1·2’로 재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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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주간지 ‘렉스프레스’의 대기자인 마리옹 반 렌테르겜은 신간 ‘노르트스트림의 덫’에서 노르트스트림을 두고 “블라디미르 푸틴과 서방이 20년 간 맺어온 변태적 관계의 중심”이라며 “노르트스트림은 러시아가 유럽에 설치한 트로이 목마와 같다”고 강조한다.
유럽에 러시아의 천연 가스를 공급하는 세계 최장의 해저 가스관은 어떻게 현대판 트로이 목마가 됐을까. 2022년 9월 노르트스트림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폭발해 유럽 전체를 에너지 부족으로 인한 패닉 상태로 이끌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소행으로 이 폭발의 배후를 지목했지만 많은 심증이 러시아의 자발적 소행임을 가리키고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 전후부터 러시아에서 고위급 인사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대규모로 죽어갔다. 호주 언론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따르면 2022년 러시아 안팎에서 죽은 러시아 고위급 인사들의 수는 23명에 달한다. 공식적으로 보고된 이들의 사인은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모두 ‘올리가르히(소련 붕괴 이후 민영화 과정에서 탄생한 신흥 재벌)’인데다 이들이 종사하는 분야가 모두 천연가스와 석유 업계였다는 것이다.
천연가스와 석유에 대한 푸틴의 야욕은 실제로 컸다. 천연가스 매장량이 47조8000억㎡로 집계되는 세계 최대 천연가스 보유국인 러시아에서 이를 경제적 수단으로 삼은 지도자는 많았다. 푸틴이 달랐던 점은 이를 지정학적 갈등에서 힘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 같은 푸틴의 야욕에 눈 감은 것은 독일이었다. 독일 통일 이후 성장 가도를 달리던 독일 경제의 에너지 소비는 끝없이 늘었는데 여론은 환경 문제로 쏠렸다. 결국 독일 정계에서는 석탄과 원자력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방식을 줄이겠다고 공약을 내걸 수밖에 없었고 대체에너지 중 환경오염도 적고 가격도 저렴한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유일한 대안으로 등장했다. 탈원전 기조 속에서 유럽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가스관은 중요해졌다.
문제는 여기서 등장한다. 러시아에서 유럽을 향해 가는 길목에는 우크라이나가 있다. 러시아는 유럽으로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데 꼭 필요한 곳인 우크라이나에 가스관 사용료를 매번 내야 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 국영 가스프롬과 우크라이나 국영 나프토가스 사이에는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나프토가스는 우크라이나에 국내 공급 가격을 인하하면서 가스관 사용료를 인상하자고 요구했고 가스프롬은 물론 그 반대를 원했다. 결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의 야욕상 피할 수 없는 전쟁이었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은 이에 눈 감은 것이었다. 현재 진행형인 전쟁에서 푸틴의 믿는 구석은 노르트스트림이었다. 결국 독일을 비롯한 유럽은 이 전쟁에 개입할 명분도, 이 전쟁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여지도 잃게 됐다. 무조건적인 ‘대안 없음’이 초래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결과다. 312쪽, 11만8700원.
정혜진 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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