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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야스쿠니 참배했는데…외교부, 사도광산 추도식 日대표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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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사도광산의 도유 갱도. 갱도 안에는 작업하는 65개의 사람 모형이 있다. 사람이 다가가면 센서가 작동해 인형들이 “술 마시고 싶다” 같은 말을 하기도 한다. 광산의 한반도 출신 노동자 관련시설 유적지 안내도. 김현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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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오는 24일 개최되는 ‘사도광산 추도식’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있는 인사를 파견하기로 한 데 대해 한국 정부가 이를 사실상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대로라면 강제 노역의 역사를 기억한다는 사도광산 추도식의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더해 일본 정부 대표의 추도사 메시지에 따라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결정 당시 ‘전체 역사를 반영한다’는 한·일 간 합의 자체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외교부는 22일 오후 9시쯤 “정부는 진정성 있는 사도광산 추도식 개최를 위해 일본 정부의 고위급 인사 참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본 측에 강조해왔다”면서 “일본이 이를 수용해 차관급인 외무성 정무관이 추도식에 참석하게 됐다. 그는 일본 정부 대표로서 추도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일본 외무성은 이날 오전 “이쿠이나 아키코(生稲晃子) 정무관이 23~24일 이틀 간의 일정으로 사도시를 방문한다”며 “방문 기간 (사도광산)추도식에 참석하고 사도광산 시찰 등을 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일본 외무성 정무관은 외무상과 부대신 바로 아래 직책으로, 한국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인사다.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회는 24일 오후 1시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사도광산 추도식’을 개최한다. 추도식에는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 11명도 참석할 예정이다.

한국 정부는 그간 일본 중앙 정부 차원의 고위급 인사 참석을 일본 측에 요구해왔다. 일본 정부는 참석 인사에 대한 발표를 차일피일 미뤄오다가 추도식 이틀 전인 이날 오전 이쿠이나 정무관의 참석을 공개했다. ‘기습 발표’나 다름 없었다.

문제는 이쿠이나 정무관의 과거 언행이 사도광산 추도식에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란 점이다. 아이돌·배우 출신의 이쿠이나 정무관은 2022년 참의원(상원) 의원으로 처음 당선됐다. 참의원 당선 직후인 2022년 8월 15일(일본 측 패전일)에 태평양 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그는 또 언론 인터뷰에서 강제징용·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더 양보해야 한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그는 이달 출범한 이시바 시게루 2기 내각에서 외무성 정무관으로 임명됐다. 외무성에는 이쿠이나 외에도 마츠모토 히사시·에리 아르피야 등 두 명의 정무관이 더 있다.



우익 인사 참석 기습 통보…한·일 합의 위배 지적



외교가에선 일본이 추도식이 임박한 시점에 과거사 문제에 대해 부적절한 언행을 한 인사를 정부 대표로 내세운 것 자체가 추도식의 취지를 흐리려는 의도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7월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당시 합의의 정신을 어긴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정부는 2015년 군함도(端島·일본명 하시마) 근대산업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때는 일본 측에 말로 성과를 얻어냈지만, 이번 사도광산 합의는 행동을 얻어냈다는 점에 방점을 찍어왔다. 군함도 등재 당시 정부는 협상 등을 통해 일본에 “조선인들이 자기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동원돼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했다”는 점을 문서로 받아냈다.

올해 7월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결정 당시 일본 측은 ‘강제징용이 포함된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한다’는 한국 측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이에 따라 강제노역과 관련한 전시물을 설치하고 매년 추도식을 열기로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국이 반대한다면 21개 위원국의 전원 합의(컨센서스) 방식으로 의결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당시 외교부 당국자는 “어려운 과정 끝에 가까스로 한일 간 합의가 막판에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후 추도식 이행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당시 합의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가 이날 오후 언론 브리핑을 진행 하려다가 돌연 취소한 것도 이런 당혹감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그럼에도 외교부는 22일 밤 늦게 ‘정부의 고위직 참석 요구에 대한 일본 측의 수용’에 방점을 둔 공식 입장을 냈다. 일본 측 입장을 사실상 받아들이는 결정을 한 셈이다. 이는 정부가 이틀 앞으로 다가온 추도식이 무산되는 것보다는 이를 강행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추도식에는 한국 측에선 박철희 주일본 한국대사도 참석한다.



추도식 日정부 메시지, 또다른 뇌관



이쿠이나 정무관의 과거 언행으로 볼 때 24일 그가 발표할 추도사에 담길 일본 정부의 메시지는 더 큰 뇌관이 될 거란 시각도 있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한 한국인 피해자를 기리는 표현이나 최소한 이전 정부의 사죄·반성 태도를 계승한다는 취지의 발언조차 없다면, 이는 ‘안 하느니만 못한’ 추도식이 될 여지도 있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관한 축하나 감사 표현만 담긴다면 유족들이 크게 반발할 여지가 있다. 유족이 참석한 가운데 한·일 정부 관계자가 사도광산 노역의 강제성을 희석하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

앞서 올해 7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한국을 포함한 위원국 21개국의 전원 합의(컨센서스)로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일본은 “전체 역사를 반영하라”는 한국의 요구에 따라 사도광산 인근의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강제노역 관련 전시물을 설치했고 매년 추도식도 열기로 했다.

박현주·이유정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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