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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강제로 수술대 올라 ‘전기 충격’…트랜스젠더, 병원 상대로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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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자신을 강제로 입원시켜 ‘전기 충격 치료’를 가한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중국의 트랜스젠더 ‘링얼’. 자료 : 링얼 소셜미디어(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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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신병원에서 강제로 ‘전기 충격 치료’를 받은 트랜스젠더가 병원을 상대로 소송해 1000만원이 넘는 배상액을 받아냈다. 성소수자를 ‘정상’으로 돌려놓는다며 입증되지 않는 시술이 횡행하는 중국 사회에서 이번 판결은 “트랜스젠더 권리의 승리”라고 중국 내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평가했다.

“강제 전기 충격으로 심장 질환 얻어”

2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중국 언론에 따르면 중국 허베이성 친황다오시 창리현 인민법원은 지난달 31일 자신의 동의 없이 여러 차례 전기 충격 시술을 받았다며 한 트랜스젠더가 친황다오시 제5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병원이 트랜스젠더에게 6만 위안(11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링얼’이라는 이름으로 소셜미디어(SNS)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28세 트랜스젠더는 출생신고서에 남성으로 기재돼 있지만 스스로 여성이라고 여긴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링얼은 부모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힌 뒤 부모의 극렬한 반대에 직면했고, 부모는 2022년 7월 링얼을 병원 정신병동에 강제로 입원시켰다.

링얼은 성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으로 우울 증상을 겪고 있지만 병원에 입원할 정도는 아니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병원은 링얼에게 ‘불안 장애’와 ‘불화적인 성적 지향’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링얼은 97일 동안 정신병동에 입원했으며 7차례에 걸쳐 원치 않는 전기 충격 치료를 받았다.

병원은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바로잡겠다’며 이같은 시술을 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링얼은 “침대에 온몸이 묶인 채 전기 충격 치료를 받았으며, 치료를 받을 때마다 기절했다”면서 이같은 치료로 인해 심장 질환을 얻어 약물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밝혔다. 링얼은 병원에서 퇴원한 뒤 병원을 상대로 8만 위안(1500만원) 이상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신문

링얼의 소송을 소개한 중국 바이두 백과 페이지. 자료 : 바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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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질병 아니지만 ‘전환 치료’ 횡행

중국의 정신보건법은 “자신이나 타인의 안전에 위협이 되는 경우”에 한해 중증 정신장애 환자가 병원에 강제 수용될 수 있도록 규정해 환자의 ‘자발성’을 강조하고 있다.

재판장에서 링얼 측은 “병원 치료를 스스로 요청하지 않았고 폭력적 성향 등 정신병동에 입원할 정도의 문제가 없었다”면서 “입원 및 치료 과정 전반에 걸쳐 본인의 동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신병원의 강제 수용이 가능한 기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데도 강제로 입원 및 치료를 한 병원의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병원은 “환자에게 불안 증상이 명백히 있었고 부모가 비자발적 입원 동의서 등 일련의 문서에 서명했다”면서 “이는 ‘정신장애 의심 환자의 가족이 진단을 위해 의료기관으로 이송할 수 있다’고 규정한 정신보건법에 부합한다”고 맞섰다.

링얼의 소송은 ‘친황다오 정신병원 트랜스젠더 사건’으로 불리며 중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소송에는 “성소수자를 ‘정상’으로 돌려놓는다는 치료는 비과학적”이라는 저명한 의학 전문의의 견해 등이 증거로 제출됐다.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은 동성애와 성소수자에 대해 ‘퇴폐적인 서구 문명’이라며 배척해왔다. 중국정신의학협회는 지난 2001년 정신질병 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했지만, 여전히 성소수자를 ‘정상’으로 돌려놓는다는 명목의 ‘전환 치료’가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를 둘러싼 법정 다툼도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2014년에는 한 성소수자 남성이 자신에게 전기 충격 시술을 한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으며, 2017년에는 또다른 성소수자 남성이 정신병원에서 약물을 투여받은 뒤 병원을 상대로 소송해 승소했다.

이같은 소송은 병원이 성적 지향을 ‘치료’할 수 있다고 허위 광고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와 달리 링얼의 소송은 성소수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강제 치료의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가디언은 설명했다.

김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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