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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그늘 고광률 지음, 파람북, 1만9500원 |
선 굵은 작가 고광률이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다룬 신작을 내놓았다. 노근리 사건은 1950년 7월26일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 밑 굴다리에 모인 피난민 300여 명에게 미군이 무차별 총격을 가해 200여 명이 숨진 일을 이른다. 고광률의 소설 ‘붉은 그늘’은 6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에 이 사건 피해자와 가해자를 아울러 등장시키고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오르는 전사(前事)와 이후의 상황 전개, 현재적 의미까지를 두루 짚는다.
소설의 중심인물은 노근리 현장에 있었던 미군 하지스와 한국 여성 하봉자. 2008년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방한한 하지스가 하봉자를 만나고자 국가보훈처 공무원을 통해 연락을 취해 온다. 하봉자와 하지스 사이에는 아들 남득이 생겼지만 둘은 결혼으로 맺어지지 못했고, 하봉자가 “당신은 나의 은인이자 원수”라 표현하게 되는 파란과 곡절이 둘 사이를 이으면서 갈라놓는다. 하지스는 심성이 착한 이여서 노근리 현장에서도 사람을 쏘지는 않았고 나중에는 이 사건에 관해 언론에 증언을 하고 사죄까지 하지만, 그런 개인적 실천에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는 것이 하봉자와 작가의 판단이다. 이 두 인물과 함께, 일제 강점기부터 갖은 악행과 탐욕으로 부와 권력을 일군 악인 도완구가 소설 속 주요 사건들을 빚어내고 끌어간다. 하지스의 방한에서 결말의 파국에 이르도록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모습이 배경음처럼 그려져 소설의 깊은 주제를 암시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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