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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나는, 우리는… 어떤 어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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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할 것 없이 ‘인사’ 하나로도
어른·아이는 마주보며 서로 채워
‘노키즈존’ ‘민식이법’ 이면의
간단한 해법의 불편함도 담아


서울신문

과거 일곱 살 아이와 한 학원에 입학 상담을 간 적이 있었다. 학원 원장님은 나와 아이에게 명함을 각각 건네며 이름을 또박또박 말하고 인사했다. 마치 처음 보는 어른끼리 명함을 주고받는 것처럼 말이다. 난생처음 받은 명함에 아이가 당황했을 것이라는 짐작과 다르게 아이는 사뭇 진지하게 명함을 받아 들더니 이내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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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48) 작가의 신작 에세이 ‘어떤 어른’을 읽으며 떠오른 장면이다. 나도 다음에 어린이 취재원을 만나면 꼭 멋지게 명함을 건네야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작가는 전작인 ‘어린이라는 세계’를 통해 어린이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선을 알려 줬다면 신작에서는 ‘나는 어떤 어른이 돼야 할까’라는 물음에 힌트를 준다.

작가는 ‘어떤’의 자리를 채우기보다는 어린이가 어른을 보고 있음을, 보면서 배우고 깨닫고 변화하고 있음을 말한다. 어린이와 어른의 관계를 생각할 때 흔히 작고 약하고 미성숙한 어린이를 어른이 지켜보는 장면을 떠올리지만 어린이 역시 어른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어른을 보면서 세상이 어떤 곳인지 배우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궁리하며 하루하루 성장해 가는 것이 어린이가 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기억하고 짐작할 수 있는 어른이라면 ‘어떤 어른’이어도 좋다고 작가는 말한다. 어린이에게는 다양한 어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없는 것을 어린이에게 줄 수 없으니, 나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말처럼 실천이 필요하다.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책 속 주인 잃은 강아지를 맡기기 위해 들이닥친 어린이들의 수선스러움을 내치지 않는 세탁소 사장님의 모습이나 ‘녹색 어머니’ 봉사활동을 하면서 등교하는 어린이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어른의 모습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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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어린이라는 세계’에 이어 4년 만에 신작 ‘어떤 어른’으로 돌아온 김소영 작가. 사계절 제공


작가는 자신이 운영하는 독서 교실에 어린이가 오면 꼭 받침이 있는 찻잔이나 사기로 된 머그잔에 차를 내준다. ‘어린이는 조심성이 없는데 혹시 깨뜨리면 어떡하냐’는 주변의 우려와 달리 여태 독서 교실에서 그릇을 깬 어린이는 단 한 명도 없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초보 운전자들이 조심성이 없어서 사고를 내는 게 아닌 것처럼 어린이들도 서툴러서 실수할 때가 더 많은 것뿐이라고, 경험과 연습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이다.

신작에는 ‘노키즈존’(어린이 제한구역)이나 ‘민식이법’ 악용 사례 등에 대해 작가가 오래 고민하고 준비한 대답도 담겼다. ‘노키즈존’은 어린이에 대한 명백한 차별임을 주장해 왔던 작가에게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예로 들며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사람이나 스쿨존(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일부러 장난치는 어린이 때문에 사고가 나도 어른 잘못이냐며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에 대해 그는 “‘노키즈존’이라고 써 붙이는 간단한 해결책보다 서로의 사정을 헤아리고 조율해 가는 번거롭고 불편한 해결책이 더 합리적”이라고 응답한다. 깨지기 쉬운 장식품이 많아서 어린이 출입이 어렵다거나 음식이 뜨거워서 어린이가 돌아다니면 위험하기 때문에 어린이 동반석을 제한한다는 식으로 여러 이유를 설명하는 게 맞다고 말이다. “그래 봤자 결론은 똑같다고 하더라도 ‘노키즈존’이라는 말로 차별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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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또 ‘어린이 박물관’, ‘어린이를 위한 전시’ 등 어린이만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만드는 것보다는 ‘모두를 위한 전시’를 추천한다. 어린이와 어른이 수시로 서로를 볼 수 있도록 같은 공간에서 같은 혜택을 누려야 서로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나면 어린이가 보기에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계속해서 나아가는 어른, 나아지는 어른’이 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어린이들을 조금 더 유심히 바라보고 내가 어릴 때 좋아했던 어른의 모습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될 일이다.

윤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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