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노동법 개정안에 반발한 부다페스트 시민들의 세체니 다리 항의 시위-행진. 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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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부다페스트는 독일인들이 도나우강이라 부르는 다뉴브강 서쪽 부다(Buda) 지역과 북쪽 오부다(Obuda), 동쪽 페스트(Pest)가 뭉쳐 생겨난 도시다. 부다와 페스트는 강을 사이에 두고 10세기 이래 근 천 년간 엎치락뒤치락 성쇠가 엇갈렸다.
10세기 마자르인들이 헝가리 왕국을 건립한 이래 번성했던 페스트는 13세기 몽골제국의 침략으로 도시가 파괴되면서 쇠락한 반면 부다는 1361년 새 수도가 된 이래 흥성해졌다. 16세기 오스만제국의 침략-통치 시절에도 총독이 머무르던 부다와 달리 페스트 지역은 방치되다시피 했다. 지역 격차는 1686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가 오스만 제국에게서 헝가리를 수복할 때까지, 다시 말해 전쟁으로 두 지역이 모두 폐허가 되다시피 할 때까지 이어졌다.
왕가는 1723년 페스트를 새 수도로 지정했다. 페스트는 유럽 상업 중심지로 급성장했고 두 도시의 운명은 다시 뒤집혔다. 19세기 100년 동안 페스트 인구가 약 20배 증가하는 동안 부다 인구는 5배가 증가했다. 오늘날 중부 유럽 최대 도시로 꼽히는 부다페스트는 1848년 혁명으로 수립된 자치정부에 의해 1873년 출범했다.
그 배경에 혁명 발발 이듬해인 1849년 개통된 세체니 다리가 있었다. 정치인 이슈트반 세체니(I. Szechenyi, 1791~1860) 백작이 자금을 대고 애덤 클라크가 이끈 스코틀랜드 기술진이 시공한 그 다리가 개통되면서 부다와 페스트 주민들은 나룻배 없이도 어떤 악천후에도 오갈 수 있게 됐고, 어떤 화물도 수송할 수 있게 됐다. 두 지역은 빠르게 격차를 해소하며 함께 성장했다.
현재의 세체니 다리는 2차대전 독일군에 의해 폭파됐다가 49년 복구된 것이다. 부다페스트 시민들은 통일 전 동독 시민들이 공산국가인 헝가리를 통해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을 때에도, 근년의 민주화 시위 때에도 세체니 다리에 모여 시위를 벌이곤 한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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