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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주정완의 시선] 구멍 뚫린 소아 의료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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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주정완 논설위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달 초 생후 2개월도 안 된 아기가 백일해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최용재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장의 탄식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이 아기는 백일해 1차 예방접종을 받기 전에 기침·가래 등의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백일해 양성이 확인됐다. 그 후 입원 치료를 받다가 나흘 뒤 증상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국내에서 백일해 사망자가 나온 건 2011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적어도 13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제2급 감염병인 백일해는 환자가 어릴수록 치명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번 걸리면 100일 가까이 기침 증상이 이어진다는 뜻에서 백일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백일해 영아 사망자 첫 발생에도

소아 감염 환자들 다인실에 입원

‘1인실 병실 규제’ 누굴 위한 건가

문제는 다른 아기들도 안심할 수 없는 환경이란 점이다. 최근 국내 백일해 감염 환자는 ‘폭발’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늘고 있다. 질병청이 집계한 백일해 환자 수는 올해 들어 지난 9일까지 3만2620명에 달했다. 지난해 전체 환자 수(292명)에 비해 이미 110배 넘게 증가했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인 2019년(496명)과 비교해도 60배 넘게 늘어난 수치다.

하필이면 올해 백일해 환자가 급증한 원인이 뭘까. 의료계에선 코로나19가 유행했을 때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부작용이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것으로 본다. 충남 아산에서 어린이병원을 운영하는 이종호 원장은 “둑이 터졌다”고 표현했다. 이 원장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랬다. “코로나19 때 철저한 개인 방역으로 다른 감염병 환자도 크게 줄었다. 이게 꼭 좋은 걸까. 그렇지 않다. 사람이 면역을 얻으려면 예방접종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감염이 돼야 한다. 그런 식의 감염이 2년 동안 막혀 있었는데 예상했던 대로 마스크를 벗자마자 온갖 감염균과 바이러스가 터져 나왔다. 의학적으로는 ‘면역 부채’라고 한다. 내년에도 소아 감염 환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방역 당국도 호흡기 감염병의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다. 백일해뿐 아니라 마이코플라스마 폐렴도 요주의 대상이다. 지영미 질병청장은 지난 19일 관계부처 합동 대책반 회의를 열었다. 그러면서 “고위험군에 대한 집중적인 보호를 위해 백일해 등 호흡기 감염병 예방접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현재 한국 사회가 소아 감염병 환자를 적절히 돌볼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오히려 한 가지 감염병으로 병원을 찾은 어린이 환자가 입원 중에 다른 감염병을 추가로 얻을 위험을 지적한다. 이른바 ‘교차 감염’ 또는 ‘원내 감염’의 우려가 크다는 얘기다.

소아 입원 환자의 교차 감염을 막으려면 1인실 병실 확보가 시급하다는 게 현장의 요구다. 소아청소년병원협회는 전국 회원 병원 52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소아 감염병 환자의 다인실 입원에 대해선 ‘부적절하다’는 응답이 100%였다고 밝혔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1인실이 부족하기 때문에 교차 감염 위험을 알면서도 다인실에 입원시킬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보건복지부의 병실 규제가 성인 중심 병원이나 어린이 병원이나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1인실을 늘리고 싶어도 못한다는 얘기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어린이병원을 하는 최 회장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4인실의 경우 소아 환자를 돌보는 엄마·아빠 등 보호자를 포함하면 열 명 정도가 한 병실에서 북적인다. 백일해 환자가 처음에 폐렴인 줄 알고 다인실에 입원했다가 다른 환자를 감염시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뜩이나 저출산이 심각한 상황에서 소아 의료체계를 충실하게 갖추는 건 우리 아이들의 건강과 생명이 걸린 문제다.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 간다. 이미 주요 대학병원에서 소아과 전공의 소멸과 소아 응급실 폐쇄 등으로 소아 의료체계는 붕괴 직전의 상태다. 첫아이가 아플 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가슴을 졸였던 부모가 둘째나 셋째를 낳을 마음이 들 것인가.

대전에서 어린이병원을 하는 강은식 원장의 지적이 뼈아프게 들린다. “현장에서 엄마들한테 비일비재하게 듣는 말이 있다. ‘나라에서 애를 낳으라고 하더니 막상 애를 낳으니까 더 힘들게 한다.’ 이런 엄마들에게 둘째나 셋째 계획이 있느냐고 물으면 고개를 젓는다. 초저출산 시대라면서 왜 이렇게 나라가 아이들 건강에 인색한지 모르겠다.” 정부가 매년 수십 조원의 예산을 저출산 대책에 쓴다는데 그 돈은 어디로 갔을까. 그 돈의 일부라도 소아 의료체계 회복에 제대로 써주길 바라는 건 과도한 바람일까.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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