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보호해야 하나 경영 어려워져
삼성, SK, LG 등 16개 대기업 사장단이 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주요 기업 사장단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이 기업들을 대표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밀어붙이는 상법 개정에 재계가 "경영을 옥죄는 개악"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이 정한 상법 개정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의무조항도 더해졌다.
최근 경제 8단체의 반대 건의에 이어 21일 대기업 사장단까지 나서서 "상법 개정안은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으로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어렵게 한다"며 법안 논의를 중단해 달라고 촉구했다. 삼성, SK, 현대차, LG, 롯데, 한화, HD현대 등 16개 대기업 사장들이 한자리에서 특정 법안을 반대한 것은 이례적이다. 상법 개정의 후폭풍에 상당한 위기감을 갖는 것은 물론 규제법률만 쏟아내고 경제 살리기 법안을 등한시한 국회를 향한 재계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상법 개정에서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공격이다. '주주 이익 불충실'을 이유로 행동주의펀드 등이 손해배상 소송과 배임죄 고발 등으로 경영권을 위협, 개입하는 일이 어렵지 않게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규 투자나 자본조달, 인수합병(M&A)과 같은 통상적 경영활동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상법 개정안에 함께 들어가 있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의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과 같은 조항 또한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그러나 경영진이 방어·견제할 수 있는 차등의결권 등과 같은 수단은 마땅치 않다. 기업들의 우려가 일리가 있는 것이다.
'후진적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자'는 상법 개정의 취지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카카오그룹, 두산그룹, LG화학, 고려아연 등 일부 대기업의 물적분할 후 중복상장(쪼개기 상장), 계열사 합병, 일방적 유상증자 등 지배주주의 지배권과 이익을 우선하는 구조조정에 소액주주의 이익이 침해당한 것도 사실이다. 이 지경까지 오도록 기업들이 자초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소액주주는 물론 기관투자자, 사모펀드 등 제각기 다른 주주들의 이익을 공평하게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헤지펀드의 공격이나 소송에 휘말린 경영진의 경영활동이 합당했는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등에 대해 더 정교한 수단이 필요한 것은 맞다. "종기환자의 환부에 메스를 대고 제거해야지 팔다리를 자르는 교각살우(矯角殺牛)를 범하면 안 된다"는 재계의 호소도 그런 것이다.
기업 상거래의 근본이 되는 상법 개정은 신중해야 한다. 금융투자세 폐지와 함께 1400만 투자자들이 반길 일이지만, 민주당이 '기업인 배임죄 처벌 완화' 카드까지 꺼내 들며 시급한 민생경제 입법보다 다급한지 곱씹어 봐야 한다. 주주 이익이 침해당하고 한국 증시만 나홀로 추락한 상황이 계속되는데도 정부와 대통령실, 여당 모두 법 개정에 명확한 입장조차 정하지 못한 채 시간만 끈 책임도 크다.
주주 보호 등의 제도적 장치로 상법 이외의 자본시장법 개정과 같은 다양한 수단을 함께 강구해야 할 것이다. 재계가 희망하는 핀셋규제의 하나로 이해충돌이 불가피한 합병 등 기업지배구조 재편과 같은 사안에 대한 주주충실 의무, 손해배상 책임 영역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식의 보완장치도 고려해볼 만하다. 상법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고 기업과 주주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Copyrightⓒ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