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1 (목)

[단독] “차별금지법 정비 요청” 인권위 공지…내부망서 비판글 이어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안창호 인권위원장이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국장단이 2025년 업무계획 수립을 위해 회의를 연 뒤 “평등법(차별금지법) 관련 업무 내용을 현 상황을 고려해 정비 요청한다”는 취지의 논의 결과를 각 부서에 내려보내 논란이 되고 있다. 안창호 위원장이 인사청문회 때부터 평등법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혀온 터여서, 국장단이 평등법 관련 방침을 미리 위원장 기조에 맞추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다.



21일 여러 인권위 관계자들 설명을 들어보면, 18일 오후 이석준 사무총장 직무대행 주재로 2025년 인권위 업무계획 수립을 위한 국장단 회의가 열렸다. 다음날 기획재정담당관실에서 각 부서에 공유한 회의 결과를 보면, 평등법과 관련해 “현재 국회에 발의된 법안이 없고, 인사청문회 및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됨. 평등법 관련 업무 내용을 현 상황을 고려해 정비요청”이라고 적혔다.



회의 결과가 공유된 직후 인권위 내부망에서는 비판글이 속속 올라오면서 댓글이 이어졌다. 직원 ㄱ씨는 “입법이 없을 때는 입법을 위해 노력했고, 발의된 이후엔 제정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제는 입법이 없고 논란이 있으니 계획을 수정하라고?”라며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썼다. 이 글의 조회수는 1000명을 넘었다. 직원 ㄴ씨는 “사무처 최고 리더들이 (차별금지법을) 지켜내고 후퇴시키지 않기 위한 시도와 노력조차 해보지 않고, 이렇게도 쉽게, 이렇게도 빨리, 스스로 알아서 ‘현 상황을 고려’하다니”라고 썼다. ㄷ씨는 “부끄럽다”고 썼고, ㄹ씨는 “비겁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장단 회의에 참석한 간부들은 “해당 회의결과에 대해 크게 의미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18일 국장단 회의를 주재한 이석준 사무총장 직무대행은 “평등법 논의 결과는 여러 성과목표 및 관리과제 중 하나였는데, 내년 업무계획에 참고하라는 안내문 수준”이라고 했다. 이 사무총장 대행은 “우리는 국제규범에 맞춰 활동하기 때문에 위원장이 바뀌었다고 사무처 방침에 변동이 있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간부는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평등법 관련 법안이 자동 폐기되고 새로 입법해야 하는 상황에서 세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취지”라면서 “위원장과 다수 인권위원의 성향 때문에 그런 우려가 나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현 단계에서 간부들이 알아서 평등법 관련 추진사업을 접는 것은 전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2003년 10대 인권과제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포함한 이후 2006년 7월부터 국회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해왔다. 2020년 7월에도 국회에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을 제정하라고 입법 권고했는데, 2021~2025 인권위 5개년 계획에는 평등과 차별금지를 위한 법·제도화가 주요한 전략과 성과목표로 제시돼 있다. 지난달 31일 인권위가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를 위해 제출한 자료에도 ‘평등법 제정’을 주요 추진과제로 적시해 놓았다.



다만 안창호 위원장은 국감에 나와 “평등법 관련해서는 인권위 보고서에 이견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과거 저서에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부모-자식 간 성행위와 수간마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식으로 기술하는 등 극단적인 반대 입장을 보여온 안 위원장은 지난 9월3일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도 “공산혁명 가능성이 있고 다수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고 주장하며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는 뜻을 거듭 표명했다. 직원들이 국장단 회의결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그간 반복된 차별금지법에 대한 안창호 위원장의 입장 때문이다.



인권위 한 직원은 21일 한겨레에 “차별금지법 제정은 인권위가 출범 이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지향해왔던 정체성인데 그것이 허물어진다고 생각하니 좌절감이 크고 동요가 생기는 것 같다“며 “혹시 인권위 정책의 철회 또는 후퇴가 위원장의 종교적 신념에 기반하고 있다면 매우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핫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