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교제폭력 사건' 가해자 1심 징역 12년
범죄 확대 우려 크지만 엄벌 규정 미비
관련법 발의됐지만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
지난 4월 1일 아침에 걸려온 전화는 손은진(48) 씨의 일상을 무너뜨렸다. 21살 된 딸 이효정 씨가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접한 손씨는 불과 9일 뒤 딸의 사망선고를 들어야 했다. 사인은 남자친구의 폭행에 따른 다발성 장기 부전과 패혈증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교제폭력을 인정하지 않고 검찰 구형에 비해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 손씨는 교제폭력에 대한 처벌규정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픽= 이미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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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 중단 보복은 아닌 듯”…‘거제 교제폭력’ 法 판단, 유족 울분
지난 14일 창원지법 통영지원 형사1부는 이씨의 전 남자친구 A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스토킹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이런 (교제폭력) 범행에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엄중한 처벌로 사회적 경각심을 주는 것이 절실하다”면서도 “고의를 가지고 사람을 살해한 살인죄로 기소된 것이 아니고, 교제를 중단하려는 피해자에게 보복할 목적으로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도 보이지는 않는다”며 양형 사유를 밝혔다.
앞서 검사가 A씨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교제폭력’이라는 범위가 축소된 재판이라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손씨는 “가해자는 징역을 살아도 33살에 나오지만 저는 효정이를 볼 수 없다”며 “엄벌할 길이 없어서 범죄가 학습되고 있다. 빨리 법이 생겨서 자식들이 부모 옆에 오래 남아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교제폭력의 숫자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만777명이던 교제폭력 피해자 수는 지난해 1만2799명으로 20% 가까이 증가했다. 매일 35명꼴로 교제폭력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씨의 사례는 ‘이별 요구→폭행’이라는 전형적인 교제폭력의 정황을 보여준다. 손씨는 “효정이가 헤어지자고 한 이후 (가해자가) 계속 폭행을 했고, (내가) 왜 멍이 있느냐고 물어봐도 애는 ‘부딪혔다’라고만 했다”며 “(다른 교제폭력) 피해자나 유족을 만나보면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가해자들의 행동이 같아 신기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피해자가 몸을 지키려고 상대를 한대라도 때리면 쌍방폭행이 인정되고, 경찰서에 임의동행이나 사건 접수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 가해자는 풀려나니까 가해자는 ‘경찰이 무서울 것 같나’, ‘벌금을 내면 그만이다’고 말하면서 더 때린다”고 설명했다.
신고 절반은 현장 종결…피해자 보호법은 ‘미적미적’
하지만 미온적인 가해자에 대한 제재와 처벌, 보복 위협 탓에 신고를 주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이씨는 응급실로 이송되기 전까지 경찰에 11번 도움을 요청했지만 대부분 현장종결로 처리됐고, 지난 8일 경북 구미시에서 전 남자친구인 서동하(34)에게 살해된 피해 여성도 숨지기 전 경찰에 3번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제폭력 신고 중 절반 이상이 현장 종결로 처리됐다는 통계도 있다.
결국 제도의 부재가 교제폭력을 예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제폭력은 스토킹범죄와 달리 반의사불벌죄가 남아 있어 가해자와 피해자의 적극적 분리가 힘들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왔다. 이 때문에 교제폭력에 대해 반의사불벌죄 폐지와 피해자 보호 강화를 골자로 한 법안이 계속해서 발의되고 있지만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제 교제폭력 처벌과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안이 20·21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번 국회에서도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 등이 유사한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이에 대해 이경하 변호사(이경하 법률사무소)는 “지금도 교제폭력은 일반 폭력범죄로 들어가니까 보호조치할 법적 근거가 없어서 많은 법조인이 지적하고 있다”며 “처벌 자체도 굉장히 경미한데 초기엔 가볍게 보인 범죄가 살인까지도 이어져서 다른 범죄와 다르게 처음부터 무겁게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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