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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러 핵우산 쓴 北' 이런 최악 상황도 가능…한반도도 영향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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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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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전술지대지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로 러시아 본토를 노리자 러시아는 ‘핵 보유국의 지원을 받는 비핵국가에 대한 핵 사용’을 담은 핵 교리로 맞대응했다. 냉전 때부터 유지된 ‘공포의 균형’을 흔드는 이번 결정은 1차적으로 합법적 핵 보유국인 미국·영국·프랑스와 이들의 지원을 받는 비핵국가 우크라이나를 타깃으로 하지만,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등을 지원할 경우 미국의 동맹인 한국도 러시아의 핵 교리 적용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서명한 핵 교리(‘핵 억제 분야 국가 정책의 기초’)에는 “핵 보유국의 지원을 받는 핵 비보유 국가의 공격은 (핵보유국과의)공동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조항이 들어있다. 이는 핵 보유국과 동맹 관계에 있거나 군사 협력을 하고 있는 모든 국가로 핵 사용의 대상이 사실상 확대된다는 의미가 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미·영·프 등 핵 보유국과 더불어 이들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도 상황에 따라 핵 공격 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

특히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는 비핵국가’란 점에서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대응해 최후의 방안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무기 공급이 이뤄지고 우크라이나가 이를 러시아 공격에 사용한다면, 러시아가 이를 빌미로 한국 역시 핵 교리 적용 대상이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러시아의 핵 교리는 “러시아 또는 그 동맹국에 대한 군사 연합의 공격이 있을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도 명시했다. 러시아는 또 다른 조항을 통해 동맹국으로 벨라루스를 특정했으나, 이 역시 러시아의 편의에 따라 확대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북·러는 올해 6월 ‘포괄적 전략적인 동반자 조약’을 맺으며 사실상의 동맹 수준으로 관계를 격상했다. 북한 역시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해 지켜줄 동맹’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북·러가 ‘불량 동맹’을 통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을 위협하고, 북한에는 든든한 핵우산을 씌워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셈이다. 러시아가 북한의 ‘핵 뒷배’를 자처할 경우 확장억제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대북 억지 정책 자체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불법적 핵개발국인 북한과 합법적 핵보유국인 러시아를 동시에 상대하는 상황까지 상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는 미·러 간 ‘핵 치킨 게임’이 벌어지고, 한반도가 그 무대가 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러시아의 새로운 핵 교리는 “재래식 정밀 유도 무기 등의 ‘존재’ 만으로도 핵 사용이 가능하다”거나 “러시아 영토 밖 군사 조직에 대한 공격이 있을 때에도 핵을 쓸 수 있다”고 규정하는 등 핵 사용의 조건과 대상, 지리적 범위 등도 대폭 넓혔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이 지원한 에이태큼스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했는데, 이런 재래식 전술·전략 무기들에 대해 실전 배치가 아닌 보관 단계에서부터 핵무기로 무력화할 수 있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1963년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를 창설한 러시아가 관련 규범을 스스로 허물고 있다고 지적한다. NPT는 핵국가의 비핵국가 선제 공격 등을 명시적으로 금지하진 않지만, 조약 전문을 통해 핵보유국이 “무력 위협 또는 무력 사용을 삼가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간 ‘선제핵불사용(NFU·No First Use)’ 등의 핵 교리는 본질적으로 합법적인 핵 보유국 간 적용하는 핵무기 사용 규범을 의미했다.

다만 러시아가 실제 핵 사용을 하는 ‘레드라인’까지 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아직까지는 많다. 핵 교리 수정으로 ‘최후의 수단’인 핵 사용의 문턱을 낮추는 행동 자체를 협상력 제고 수단으로 삼는 것과 핵무기를 실제 쓰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최악의 경우 러시아가 저위력 전술핵을 쓰는 것으로 즉각적인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러시아가 핵을 쓰는 순간 NPT 체제 자체가 무너질 수 있어 러시아도 쉽사리 결정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짚었다. 특히 러시아가 비핵국가를 겨냥한 핵 공격을 감행하는 순간 한국을 비롯한 핵 비보유국들이 일제히 핵무장에 돌입하는 ‘핵 도미노’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유정·박현주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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