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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광화문]언더그라운드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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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15일.미국이 "미국의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해외 반도체 기업이 화웨이에 제품을 공급할 때 반드시 사전승인을 받으라"고 했다. 대만 TSMC는 이날부터 화웨이로부터 주문을 받지 않았다. 같은 날 애리조나에 120억 달러를 들여 5나노미터 칩을 생산하는 공장을 짓겠다고도 했다. TSMC는 이 제재안의 유예기한인 9월14일 이후 화웨이와 거래를 단절했다.

#2024년11월11일. 미국은 AI 가속기나 그래픽처리장치(GPU) 가동에 쓰이는 7나노미터 이하 첨단 반도체의 중국 수출제한을 요구하는 공문을 TSMC에 보냈다. TSMC는 곧바로 중국 고객사에 수주를 받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TSMC는 앞서 화웨이가 제재대상이 아닌 중국 업체 소프고를 내세워 자사의 칩 구매를 한 것이 드러나자 이를 미국에 알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말하는 '힘에 의한 평화'에서 '힘'을 '극강의 군대'로 표현되는 군사력으로 좁게 해석하면 많은 것을 놓친다. 기축통화와 금융시스템, 통신(인터넷망), 반도체공급망 등에 이르기까지 타국을 압도하는 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한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려면 무엇보다 돈이 필요하다. 교역을 통한 것이든, 국채를 발행한 것이든 간에 군비확충은 필수적이다. 전투기와 전차 등을 운용하는데 필요한 석유도 비축해야 하고, 군인들이 먹을 식량도 마련해야 한다. 첨단무기를 생산하거나 구입하려고 해도 천문학적인 자금이 든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은 달러, 반도체, 석유, 식량 등이 자급자족이 되는 나라와 안 되는 나라와의 싸움이라고 거듭 써 왔다. 중국은 달러로 반도체, 석유, 식량을 사야 하는 게임의 룰을 바꾸려고 애를 썼다. 위안화의 기축통화화나 에너지의 위안화 결제 등은 그 일환이다. 일대일로를 통해 미군기지를 우회하는 에너지수송 루트를 뚫으려고도 했다.

거꾸로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은 중국의 돈줄부터 조여야 했다. 이 관점에서 대중무역 적자 축소는 중국에 대한 달러공급을 줄이는 게 된다. 미국이 의도했든 안 했든 간에, 중국이 온갖 방법을 썼음에도 페트로달러와 세미콘달러 체제는 여전히 굳건하다. 여기에다 미국은 무기제조에 쓰이는 첨단 반도체의 조달을 막아 중국의 '기술굴기' 눌렀다.

헨리 패럴과 에이브러햄 뉴먼은 저서 '언더그라운드 엠파이어'에서 이같은 미국의 힘과 그 작동방식을 해부하며 미국을 '언더그라운드 제국'이라고 표현한다. 땅 밑의 광섬유케이블, 서버팜, 금융결제시스템, 반도체 생산망 등을 통해 미국이 다른 국가와 그 기업에 강제력을 행사하는지를 펼쳐 보인다.

예컨대, 미국은 화웨이가 5G망으로 세력확장을 꾀하자 자국이 지배하는 글로벌 통신시스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다. 미국은 달러결제망과 SWIFT(국제간 은행통신협회)에서 벗어날 수 없는 HSBC로부터 화웨이의 위법행위 관련 자료를 받아 냈고, 이를 근거로 동맹국에까지 화웨이의 통신장비 사용금지를 요구했다. TSMC도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될 수 없으니 이를 따라야 했다.

저자들에 따르면 미국은 기존의 도구 뿐 아니라 새로운 도구를 개발해 왔는데, 재무부의 세컨더리 보이콧, 상무부의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과 무역법 301조 등이 그것이다. 법적 제도적 장치를 고안하고 실행한 것은 트럼프 이전 정부나 바이든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트럼프정부는 '힘을 사용하겠다는 적극성 자체가 부족했다'며 그 힘을 더 활용했다.

TSMC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듯, 언더그라운드제국의 영토를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히려 제국에 대해 깊이 파악하고 있어야 대처할 수 있다. 트럼프 1기 때 미국이 화웨이를 때리면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기업이 반사이익을 얻은 것을 기억한다면, 트럼프 2기 시대의 생존법도 찾아 낼 수 있다.

머니투데이



강기택 산업1부장 acek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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