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읊다]〈94〉그리운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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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년 사신으로 일본에 간 시인은 잠 못 이루던 어느 가을밤 이웃의 다듬이질 소리를 들었다. 시인은 고국에서도 들었던 그리운 소리에 아내의 고단한 다듬이질을 떠올리며 아내의 안부를 걱정했다.(“遙憐體弱多香汗, 預識更深勞玉腕.”) 꿈결에라도 소리 따라 돌아가고 싶다는 시인의 향수가 애틋하다.
한시에서 다듬이 소리는 일찍부터 읊어졌던 제재 중의 하나였다. 한나라 반첩여(班婕妤)가 지었다는 ‘도소부(搗素賦)’에서 기원하여 남북조 시기부터 유행했다. 우리 한시 중엔 위 시가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이 제재의 시들은 대개 시인이 여성 정감을 대변하여 가을(혹은 겨울)밤 아내가 겨울옷을 다듬이질하며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반해 위 시는 시인 자신이 다듬이 소리를 매개로 고국의 아내를 떠올리고 있다. 실제 경험과 무관한 전형화된 시적 제재를 시인이 자신의 삶 안으로 끌어들여 썼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 마리오(오른쪽)는 함께 지내던 섬을 그리워하는 네루다를 위해 섬의 소리를 녹음해서 보낸다. 브에나 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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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 포스티노’(1996년)의 원작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파리 대사로 부임한 파블로 네루다는 고국 산티아고 해안가의 이슬라 네그라를 그리워하는 편지를 보낸다. 이슬라 네그라에서 네루다와 우정을 나눴던 우체부 마리오는 네루다를 위해 그곳의 소리를 녹음해서 보낸다. 네루다의 그리움도 시처럼 소리와 연결된다. 다만 영화와 소설 속의 그리움은 시와 달리 양방향이다. 네루다가 그리워하는 섬의 소리를 녹음해 보낸 마리오 역시 네루다를 그리워한다.
한시와 영화 모두 소리를 매개로 삼아 그리움을 표현한다. 그리운 소리는 다르지만 그리움의 간절함만큼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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