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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인생은 원래 억울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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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송길영 Mind Miner


“고시는 마약과 같습니다.”

온라인 게시판에 오랜 기간 고시 준비를 하다 이제 포기한다는 수험생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20대 중반부터 8년 가까이 시험을 보아 온 그는 30대를 맞이했습니다. 회계사와 세무사의 1차와 2차를 번갈아 붙고 떨어진 기록들을 남기며 “꽃 같은 내 젊은 날의 성적표”라고 한탄했습니다. 치열했던 노력이 그의 맘 속 실패의 상처로 남을까 걱정하는 위로의 댓글이 게시판을 가득 채웠습니다.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청춘의 공감과 ‘그만둘 수 있는 용기가 대단하다’는 응원은 우리 사회에 가득 찬 당락의 관행에 모두가 상처받고 있음을 짐작하게 해 줍니다.



조직에 의지하려 희망해도

결국 혼자서 살아가는 세상

나 자신이 출발점이자 목적지

중앙일보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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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공무원 뿐 아니라 고등학생 래퍼와 트로트 가수까지 시험으로 뽑는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은 ‘오징어게임’의 생존확률 456대 1 보다 훨씬 어렵기만 해 보입니다. 경쟁 과다의 세상에서 시험 잘 보는 법을 평생 배운 이들은 실제 삶에 다다르기도 전에 이미 지쳐버립니다.

열심히 노력하여 통과했다 해도 시험으로 익힌 지식이 막상 그리 유용하지 않음을 알게 되어 힘이 빠지는 일도 생깁니다. 주눅 들어 조직 밖으로 나갈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이, 독립된 삶을 원했던 초심은 어느덧 흐려지고 조직 그 자체가 목표가 되는 듯 무리와 동화됩니다.

그 반대편에 선배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조직에 먼저 들어와 성취의 시기를 밟아 온 그들은 은퇴의 시기가 다가오면 당황한 모습을 숨기지 않습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다 부러움을 받지만, 아직은 너무나 젊은 내가 이제 누구에게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것이 낯설기만 합니다.

이제는 선배들의 연대기가 그대로 우리들의 삶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선배들의 모습은 멋져 보이기에, 혹은 달리 다른 대안이 없기에 후배들은 더욱 환상처럼 믿고 따랐지만, 마침내 각성은 찾아옵니다. 각성한 이들은 자신만의 길을 찾고 또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오랜 기간 공부했던 청춘의 실패는 되려 그의 삶에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지속한 끈기와 그만둘 줄 아는 용기의 성품은 어쩌면 다른 큰 성취의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한참 동안 그 일을 하다 불현듯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다 깨닫는 것보다, 시작하기 전 냉철히 고민하고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 다행일 수 있습니다.

나보다 큰 무엇인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은 연약하게 태어나 함께 모여 살아남은 우리 종의 특성입니다. 하지만 손 닿을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행위는 고민을 유예한 것일 뿐입니다. 고민 없는 나의 진로는 입시상담 선생님도, 취업진로 상담실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나의 목표가 있어야 방향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유행하거나 지금 유망한 직업을 경계합니다. 사라진 신분제와 세습되지 않는 직업은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허락합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기에 모두가 같은 것을 추구하다 보면, 선택의 축복은 경쟁의 저주로 순식간에 흑화합니다. 선생님도, 선배도 믿으면 안 됩니다. 그의 정답이 나의 정답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정답이 있다면 누군가 이미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학교육을 마친 이들이 수백만 명이나 실직 상태이며, 심지어 직업을 구할 의지도 없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들이 현명한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시류에 떠밀려 가는 것보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방황하고 있다면 무엇이든 행하기보다 멈추고 생각할 때입니다. 목표를 정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오히려 목적지에서 멀어지기만 합니다.

스스로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고 생존을 위한 ‘현행화’를 하지 못하면, 취약한 생명체와 같이 작은 바람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억센 비와 뙤약볕에도 기죽지 않고 자라는 들풀처럼, 삶의 어려움은 비료의 안락한 자양분이 아니라 풍무 속 담금질과 같이 나의 근육을 강화합니다.

안전해 보이는 조직이 되려 나의 생존력을 낮추는 아이러니를 걱정하는 것은, 현생 인류가 이전의 그 어떤 조상보다 오래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동적인 이합집산의 새로운 협력 시스템은 동료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일상화합니다.

홀로 선 핵개인은 긴 여행을 떠납니다. 길 위에서 수많은 핵개인들을 만나 서로 돕고, 위안받으며 다시 헤어짐을 반복합니다. 많은 도반과, 많은 스승을 만나고 헤어지며 삶을 배우고 서로를 가르칩니다. 조직보다 작은 개인으로 분화되었지만, 더 큰 지혜로운 무리로 강화되는 인류는 새로운 진화의 단계로 접어듭니다.

핵개인들은 ‘인생은 원래 억울한 것’이라는 이전에 살아온 선배들의 회한을 반복하지 않으려 합니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새로운 사회, 그 어느 누구도 숨지 않는 호명사회에서 각성한 핵개인의 여정의 출발점과 목적지는 같은 곳, 바로 ‘자신’입니다.

송길영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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