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프로그램의 부제 “요리 계급 전쟁”은 프랑스의 유명한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의 한마디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가 살던 19세기만 해도 계급에 따라 먹는 음식 종류가 달랐다. 상류층은 값비싼 향신료, 신선한 식재료, 하얀 빵과 고급 와인을 즐길 수 있었지만 빈곤층은 호밀, 보리를 넣어 거칠고 거무튀튀한 빵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 말의 원뜻은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분 또는 계급을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최근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 [사진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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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음식으로 먹는 사람의 계급을 구별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하지만 음식이 그 음식을 만든 사람과 먹는 사람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만큼은 여전히 사실이다. 음식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음식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흑백요리사에 드러난 한국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우선 우리 사회는 공정성을 중시한다. 흑백요리사에서 커다란 화젯거리가 된 블라인드 테스트 장면을 떠올려보자. 누가 만든 음식인지 알 수 없도록 심사위원의 눈을 가리고 맛만 보고 평가하도록 한다. 인간은 시각 지배적 동물이다. 깨어있는 동안 받아들이는 감각 정보의 약 80%가 시각 정보이며 대뇌 피질의 약 30%가 시각 정보 처리에 관여한다. 우리가 느끼는 맛도 시각에 크게 흔들린다. 눈으로 즐기는 것도 미식의 일부로 봐야 한다는 반론이 있긴 하지만 시각을 배제하고 맛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공정하게 보인다.
심사위원 안성재 셰프가 눈을 감고 맛본 채소 요리 평도 인상적이었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채소들을 최대한 맛있게 예의를 갖춰서 다루자는 생각이 많이 느껴졌다며 합격점을 줬다. 다른 생명체 덕분에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음식을 먹을 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다. 음식을 낭비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식재료에 대한 존중심은 미식가의 기본 덕목이다. 하지만 두부 지옥으로 이름 붙인 경연 장면에서 산더미처럼 쌓아둔 두부에서는 식재료에 대한 어떤 존중심도 보이지 않았다. 환경은 고사하고 식재료에 대한 예의가 사라졌다.
후반부 레스토랑 미션에서 음식의 맛이 아니라 매출 총액으로 순위를 결정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컸다. 공정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란 비판이다. 하지만 달리 보면 이는 한국 사회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요리사라고 해서 요리만 잘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잘해야 살아남는다. 그게 현실이다. 한국인 4명 중 1명이 자영업자이다. 한국경제신문의 올해 분석 결과에 따르면 국내 숙박업소와 외식업종 자영업자 두 명 중 한 명은 나홀로 사장이다. 흥미로운 요리 경연을 보고 나서도 현실이 씁쓸하게만 느껴진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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