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파고들며 광폭외교 펼치는 中
“바이든의 스완송: 트럼프의 승리에 가려진 외교 순방(Biden’s Swan Song: A Diplomatic Trip Overshadowed by Trump’s Victory).” 뉴욕타임스가 바이든 대통령의 마지막 다자외교무대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두고 단 기사 제목이다. ‘스완송’은 고별무대를 뜻하는 의미로 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지난 4년간의 외교적 성과의 재확인이 아니라 과거를 정리하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진핑 주석이 APEC과 G20 정상회의 단체사진에서 정중앙에 서 있는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뒷줄 끄트머리 자리를 배정받으면서 트럼프에 가려진 초라한 모습이었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이후 개최된 첫 국제 다자회의인 제31차 페루 APEC 정상회의와 브라질 G20 정상회의는 글로벌 각자도생의 출구와 방향성이라는 의문점을 남긴 채 폐막되었다. ‘포용적 무역과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APEC 정상회의 의제가 어색할 만큼 21개국 회원들은 향후 트럼프 2.0 시대 보호무역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브라질 G20 정상회의도 트럼프에 초점이 맞춰진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각국과의 고별회담을 진행한 바이든 그리고 트럼프 2.0 보호무역주의가 미칠 파장과 영향을 고민하는 국가들의 빈틈을 파고들며 광폭 외교 횡보를 보인 시진핑 두 정상 모두 속내가 복잡해 보인다. 각기 다른 미중 양국의 속내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임기 2달을 남겨둔 채 글로벌 리더로서 존재감이 희석되는 가운데 미중, 한미, 미일, 한미일 정상회담 일정을 소화하며, 지난 4년간 구축한 다자협력 기제의 제도화와 미중관계 관리에 애쓰는 데 집중했다. 우선 한미일 정상회의에서는 차기 트럼프 정권에서도 기존 협력의 틀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40분간 진행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3국은 연합 군사훈련, 경제안보, 공급망 안정, 다국적 제재 모니터링팀 활동 등 다양한 협력 기제의 지속적 확대를 강조했다. 3국간 공동이익과 진행 중인 협력사업의 유지와 확대를 위한 ‘한미일 사무국’ 설립도 신설되었다.
그러나, 트럼프 2.0 시대 바이든식 3국 협력 메커니즘이 그대로 유지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기존 협력의 틀은 변화가 없겠지만, 세부 운영과 협력 방식에서 변화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을 바이든 대통령이 모를 리 없고, 한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군 당국 간 소통 재개, 마약류 대응협력, 인공지능(AI) 안전과 국제협력 등 성과를 언급하면서 중국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하는 디리스킹(De-Risking)을 강조했지만 그것 또한 트럼프 2.0 시대에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 있다.
브라질 리우데자이네루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 등 각국 정상이 18일(현지시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일부 정상이 지각으로 빠져 있다. AFP연합뉴스 |
한편, APEC과 G20 정상회의에서 레임덕에 빠진 바이든 대통령과 달리 회원국들의 주목을 받은 시 주석은 보호무역이 아닌 자유무역과 세계 경제화를 외치며 참여국들의 공감대를 얻어 냈다. 그렇다면 이번 다자 정상회의를 통해 중국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크게 2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트럼프 2.0 탐색을 위한 외교무대로 활용함과 동시에 반(反)트럼프 세력을 규합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중·중일 정상회담 등 대부분 양자회담이 30분 정도 진행된 반면, 미중 정상회담은 외교안보, 경제, 첨단산업, 전략경쟁, 북러 군사협력 등 모든 영역에 걸쳐 100분간 회담이 진행되었다. 중국은 이를 통해 향후 트럼프 2.0 시기 더욱 강화될 대중국 제재와 기술통제의 방향성을 간접적으로 탐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시 주석은 정상회의 기간 연설과 미중 회담에서 ‘일부 국가가 패권을 행사하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대국은 디커플링(De-Coupling)과 공급망 분리를 주도해서는 안 된다’는 표현으로 다가올 트럼프 2.0 시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또한, G20 정상회의에서 녹색경제·저탄소경제의 당위성과 함께 보호무역주의에 맞서 최빈국들에 일방적 개방정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참여 회원국들을 끌어들였다.
둘째, 트럼프의 자국우선주의에 따른 한미일 3국간 불협화음의 기회를 이용해 한국, 일본과의 관계 개선 시도와 함께 회색지대 국가들을 최대한 우군으로 확보해 나가겠다는 속내다. 시 주석은 APEC 기간 한국 일본 태국 싱가포르 뉴질랜드 태국 칠레 등과 양자회담을 통해 우호적 관계 구축에 주력했다. 특히, 중국 견제의 가장 중심에 있는 한미일 협력의 연결고리를 분리시키고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중국은 한국,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가능한 한 우호적 분위기로 끌고가고자 노력했다. 흥미로운 것은 한중과 중일 정상회담의 내용을 보면 미묘한 차이와 변화가 감지된다는 것이다. 한중회담 30분, 중일 정상회담 35분간 진행된 내용을 종합하면 일본보다 한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가 더 강해 보인다. 그만큼 한미일 연대에 있어 한국의 연결고리가 가장 약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중국정부가 갑자기 한국을 무비자 대상국가로 포함시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상호 국빈방문 초청과 함께 한중 FTA 2단계 협상의 조속한 추진을 통한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데 방점을 둔 반면, 중일 정상회담에서는 상호협력과 충돌 가능성을 확인시킨 자리였다. 중일 회담에서 표면적으로 전략적 호혜관계에 기반해 포괄적인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지만 어색한 분위기가 역력해 보인다. 동중국해 센카쿠 영유권, 무역갈등,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일본 영공침해 등 양국 간 충돌지점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이시바 총리는 회담에서 중국의 대만해협에서의 군사 활동과 남중국해 진출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일본의 역사와 타이완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길 바란다’고 응수하며 미묘한 긴장감이 연출되었다.
트럼프 2.0이 가져올 글로벌 각자도생의 시대에 우리의 대응과 전략을 꼼꼼히 챙겨봐야 할 시점이다. 결국 국익을 위한 외교안보의 유연성과 균형적 통상 리더십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중국경영연구소장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 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2010년) 및 미주리 주립대학(2023년) 방문학자로 미중 기술패권을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한중연합회 회장 및 산하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더차이나’, ‘딥차이나’, ‘미중 패권전쟁에 맞서는 대한민국 미래지도, 국익의 길’, ‘알테쉬톡의 공습’ 등 다수.
[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중국경영연구소장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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