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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수)

“트럼프 ‘미국 우선주의’ 가속 페달…그 끝은 ‘제2의 닉슨 쇼크’ 우려”[논설위원의 단도직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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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태서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경향신문

차태서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호암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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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서 외교학 학·석사를 마친 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아메리카 문명표준의 건설’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담론 분석과 정치사상사를 기반으로 미국 외교와 세계질서 변동 연구에 집중해왔다. 최근 저술한 <30년의 위기>(성균관대 출판부)에서 국제정치학의 고전이 된 E H 카의 <20년의 위기>를 준거로, 1·2차 세계대전 사이 20년과 구냉전·신냉전 사이 30년을 비교·분석해 호평을 받았다.


정확히 ‘나쁜 놈’ 찍어주며 보호무역 하고 장벽 쌓아 막겠다는 트럼프
미국인, 탈신자유주의에 대한 나름의 해답 제시한 그의 ‘포퓰리즘’ 선택

미소 냉전시대, 월남을 그냥 버렸던 이단적 현실주의자 닉슨처럼
러시아 힘을 빌려 중국 견제하고, 대만도 타협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
한국 정부도 필요할 땐 미국과 거리 두고 독자적 전략 펴나가야

미 대선 후 2주가 흘렀지만, 인종차별적이고 반민주적인 데다 예측 불가능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또 한번 미국 대통령으로 맞이해야 하는 세계는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차태서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11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권자 절반 이상이 그를 선택한 것은 일반 서민의 삶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신자유주의 말고 다른 대안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원하는 답을 들려준 것이 트럼프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보호무역과 국경 장벽이라는 트럼프의 탈(脫)신자유주의 질서가 그의 지지층인 노동계층 삶에 실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포퓰리즘의 특징은 “‘나쁜 놈’을 찍어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에 재주가 있는 이데올로기다.

‘미국 우선주의’는 트럼프 귀환과 함께 더 강력해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기 내각의 윤곽이 드러날 때마다 동맹국들은 대책 마련에 부산하다. 특히 조 바이든 대통령의 신냉전 외교에 100% 동기화율을 보였던 윤석열 정부의 외교노선 수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차 교수는 최악의 경우 “제2의 닉슨 쇼크가 올 수도 있다”며 “미국과 협력하면서도 필요할 땐 거리를 두고 독자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선거인단·전체 득표수 앞선 건 획기적

- ‘초박빙’이라던 미 대선이 트럼프 완승으로 끝났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도 해리스 당선 가능성을 조금 더 높게 보는 분위기였는데, 우리가 미국 사회를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특징은 농촌 지역 등에 굉장히 널리 퍼져 산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흔히 미국 가면 만나는 사람들은 주로 유학 가서 사귄 친구나, 업무차 가서 만나는 사람들이죠. (리버럴일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언론도 그랬지만, 한국 언론도 해리스 상승세에 집중했어요. ‘코코넛 나무’ 밈이 인기를 끌고 있다든지, ‘이상하다’(위어드·weird) 전략이 먹히고 있다는 식으로요. 하지만 픽업트럭 타고 다니면서 라디오 방송 듣는 트럼프 지지자들은 코코넛 밈이 뭔지도 모를 가능성이 큽니다. 트럼프는 이번에 선거인단 수만 아니라 전체 득표수도 해리스를 앞질렀는데, 그건 정말 획기적인 결과예요. 인구학적으로 보면, 공화당은 내리막길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유색인종 인구는 계속 늘고 교회 가는 사람은 줄어들면서, 공화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백인 기독교인 인구는 꾸준히 감소 중이었으니까요.”

- 트럼프 승리 요인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일종의 정권 심판 선거였던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지금 미국 시민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문제는 경제와 이민인데, 해리스 캠프는 바이든 정부와의 차별화 대신 민주주의와 임신중지권을 강조하는 전략적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고요. 물론 임신중지권과 민주주의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앞서 예로 든 픽업트럭 타고 다니는 사람들의 표심을 결정하는 데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거든요. 특히 민주주의와 관련해선 흥미로운 설문 결과를 봤습니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졌다’고 답한 사람들에게 해리스와 트럼프 중 누굴 찍었냐고 물어보니 반반으로 나뉘어요. 민주당 지지자들은 트럼프 같은 파시스트에 의해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하지만, 트럼프 지지자들 역시 똑같이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했다고 여긴다는 겁니다. 신자유주의의 화신인 민주당을 심판하기 위해 2016년 트럼프를 뽑았더니 리버럴 엘리트와 딥스테이트가 아무것도 못하게 전부 막아내고,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긴커녕 ‘쓰레기’ ‘개탄스러운 집단’이라 모욕하더라는 거죠. 그러니까 민주당이 외친 ‘민주주의를 지켜내자’는 슬로건은 사실 트럼프 지지자들의 슬로건이기도 했던 거예요.”

-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에 문제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래서 선택한 대안이 인종차별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라는 건 참 불행한 현실 같습니다.

“어려운 문제죠. 저는 2016년부터 트럼프가 출마한 세 번의 미 대선은 사실상 동일한 문제를 놓고 싸우는 하나의 선거라고 보고 있어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미국사학자인 게리 거슬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은 신자유주의 질서가 해체되는 국면입니다. 1930~1970년대가 뉴딜 질서였다면, 1980년부터 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는 신자유주의 질서였죠.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미국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더 이상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 후 10년 넘게 신자유주의 이후 질서를 놓고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어쨌든 그에 대한 자신의 답을 내놨어요. 더 이상 레이건식 신자유주의 안 하고, 포퓰리즘으로 가겠다고요. 자유무역 대신 보호무역 하고, 노동의 이동도 장벽을 쌓아 막겠다고 나름의 탈신자유주의 질서를 제시한 겁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게 없어요. 아직도 바이든·힐러리가 민주당 얼굴이듯이 주류 세력이 교체되지 않은 민주당은 미국의 저학력 노동계층이 보기에 여전히 엘리트 정당이고, 신자유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기득권 세력인 거죠. 반면 공화당은 트럼프 정당처럼 돼 버리긴 했지만, 이전 주류 세력이 사실상 숙청되면서 얼굴이 싹 바뀌었거든요. 이렇게 보면 바이든이 트럼프에 승리했던 2020년 대선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예외적 결과였던 거 같아요.”

- 그럼에도 히스패닉·흑인의 트럼프 지지율이 크게 높아진 것은 쉽게 납득 가지 않습니다.

“라틴계가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을 반대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게 아니었던 거죠. 미국에 이미 합법적으로 들어와 살고 있는 라틴계는 미등록 이민자들이 계속 밀려들어오면 자신들의 임금과 지위가 하락하니까, 오히려 더 강경한 이민 정책을 원합니다. 그만큼 경제적 요인에 대한 불만이 다른 모든 걸 압도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사실 히스패닉 남성들은 굉장히 보수적이어서, 임신중지 이슈에 있어서는 복음주의자들 못지않습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민주당이 만들고 싶어 했던 다인종 노동계급 정당을 공화당이 해냈다고 말하기까지 했어요.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앞으로 민주당은 정말 PC(정치적 올바름)와 엘리트만 남은 정당으로 고립될 수 있습니다. 실제 이번에 정치자금 모금액은 해리스가 트럼프보다 훨씬 많았어요.”

포퓰리즘, 복잡한 문제 단순화하는 재주

- 하지만 트럼프가 노동계층 삶에 도움이 될지 의문입니다. 공약대로 관세를 올리면 인플레이션이 심화해서 서민들의 삶이 더 힘들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습니다.

“포퓰리즘 특성이 바로 그건데, 사실 이 문제는 정치학에서도 중요한 쟁점 중 하나예요. 정치인이 좋은 정책을 펴서 그 효과에 만족하면, 과연 사람들은 그 정책을 편 후보 또는 정당을 지지하는가.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대체로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실제 정책 효과보다는 어떻게 인식(perception)되느냐가 더 중요한 거죠. 트럼프가 하려는 관세 인상이나 감세가 노동자 계급에 도움이 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에요. 하지만 포퓰리즘은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재주가 있는 이데올로기잖아요. 트럼프는 나쁜 놈들을 처단하면 민중의 삶이 좋아질 것이라면서, 그 나쁜 놈들을 찍어주죠. 공장이 해외로 가서 일자리가 줄어드는 건 중국 때문이야, 임금이 하락하는 건 멕시코에서 밀려오는 이민자 때문이야, 그러면서 아주 직관적인 해답을 제시하니까 민심이 확 쏠리게 되는 겁니다.”

- 트럼프 2기는 1기와 비교하면 어떨 것이라고 보시나요.

“일단 순도가 더 높아질 것 같아요. ‘딥스테이트’를 날려버리겠다면서 모든 참모진과 내각을 충성도 기준으로 인선하고, 연방정부 공무원도 중간급까지 다 잘라 버리겠다고 공언했죠. ‘설마 실제로 그렇게까지 하겠어’ 싶지만, 트럼프는 정말 공약을 지키는 대통령이에요. 1기 때도 설마 했지만 정말 장벽 세우고, 관세 올리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잖아요. 특히나 지금은 1기 때와 다르게 트럼프에 대한 견제장치가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상·하원은 물론 연방대법원까지 장악하고, 하급 법원까지 (친공화당 성향으로) 많이 갈아놓은 상태거든요. 게다가 제가 요새 공화당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이 바로 J D 밴스, 트럼프 주니어 같은 다음 세대 신우파들인데, 이들은 트럼프와 또 다르게 정말 이데올로기적으로 순도 높은 포퓰리스트예요. 트럼프가 엉망진창이고 본능적인 포퓰리스트라면, 이들은 성차별주의조차 가부장제 2.0이라는 나름의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어요. 일리아드·오디세이 영웅들, 구약 성서의 다윗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가부장이 이 사회 기둥이 돼야 한다는 식의 얘기를 해요. 신우파들이 앞으로 의회에서 어떤 법안을 주도해 나갈지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옵니다. 그 과정에서 2017년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일어난 극우 폭동 같은 일이 또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 트럼프 2기 외교 정책은 어떻게 될까요. 미국 우선주의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외교의 핵심은 더 이상 자유주의 패권국가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 같은 경향은 최근 미국 밀레니얼들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반대 시위에서도 드러났죠. 미국의 기성세대는 승리의 세대예요. 냉전에서 승리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신자유주의 방식대로 세계를 변혁시킨 세대죠. 반면 밀레니얼들은 패배의 세대입니다. 자라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하고, 이라크 전쟁이 수렁에 빠지는 걸 지켜봤죠. 이들이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세계관은 기성세대와 완전히 다릅니다. 지금은 1970년대 외교 상황과 굉장히 유사해요. 그때는 베트남 전쟁과 스태그플레이션 때문에, 지금은 이라크 전쟁과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미국 패권이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구조적 유사성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1970년대에는 리처드 닉슨이라고 하는 이단적인 현실주의 대통령이 나타났던 거고, 지금은 트럼프가 나타난 거죠. 이런 현실주의적인 대통령이 나타났을 때 외교 정책의 특징은 반공·민주주의 같은 모든 이념과 가치 의제가 사라지고, 말 그대로 ‘강대국 정치’가 펼쳐진다는 겁니다. 닉슨 외교의 트레이드마크인 데탕트도 결국 미·중·소 강대국 간의 체스게임이었어요. 미국은 주적인 소련을 견제할 수만 있다면 이데올로기가 완전히 반대인 문화혁명 와중의 마오쩌둥과도 손잡을 수 있었던 겁니다.”

이념 싸움 아닌 원하는 것 얻어가는 스텝

- 트럼프의 현실주의 외교 관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떻게 될까요.

“닉슨 시절에 미국 최대 주적이 소련이었다면, 지금은 중국이에요. 닉슨이 미·중·소 삼각관계에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손잡았다면, 트럼프는 러시아 힘을 빌려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갈 겁니다. 한국 같은 중소국 입장에서는 강대국들이 세력권 조정 협상에 들어가는 이 과정이 가장 무서운 거예요. 예를 들어 닉슨은 미·소 간 냉전 구도에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나라에 왜 우리가 쓸데없이 힘 빼고 있느냐면서 월남을 그냥 버렸죠. 돌이켜보면 한국전쟁 때도 그랬어요. 반전 여론이 높아지자 공화당의 아이젠하워가 전쟁을 끝내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됐고, 실제 바로 끝냈죠. 지금 우리 시대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딱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미국이 러시아를 자기 편으로 끌어오는 데 방해될 것 같으면, 예전에 월남을 버렸듯 우크라이나도 바로 버리는 카드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 트럼프 재집권이 미·중관계를 지금보다 더 악화시킬 것으로 보시나요. 신냉전 구도가 더욱 심화될까요.

“일시적으로는 당연히 무역전쟁 등 험악한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트럼프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서 정말 관세를 그렇게 올릴 수 있다고 봐요. 그러나 여기서도 현실주의적 접근은 신냉전하고는 좀 달라요. ‘역사의 변곡점’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권위주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던 바이든 시절이 오히려 신냉전에 더 가까웠죠. 반면 트럼프는 바이든과 달리 이념적 싸움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다음 스텝으로 가는 과정이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저는 대만도 우크라이나처럼 위태로운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대만은 시진핑에게 자신의 목이 걸린 핵심 이익이지만, 트럼프에겐 아니죠. 트럼프는 대만의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대만까지 날아갔던 낸시 펠로시 전 미 하원의장처럼 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 트럼프나 J D 밴스나 지금 대만에 대해서는 TSMC와 반도체 산업 얘기만 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미국이 대만에서 쉽게 손 뗄 일은 없겠지만, 강대국끼리 협상 국면에 접어들면 대만 중립국화도 가능할 수 있다는 거죠. 트럼프에게는 대만도 타협(settlement)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까요.”

우크라 전쟁 마무리 후 북한 문제 다룰 듯

- 한반도는 어떻게 될까요.

“트럼프가 지금 같은 패러다임 변화에 가속페달을 쭉 밟으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 아마 ‘제2의 닉슨 쇼크’가 될 것 같아요. ‘아시아인의 안보는 아시아인의 손으로’라면서 월남에서 철수하고, 주한미군 7사단을 철수시켰던 닉슨 때처럼 한국은 ‘방기’의 공포에 시달리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대만을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제2의 닉슨 쇼크가 왔을 때 가장 큰 충격은 대만에 있을 겁니다. 대만을 놓고 미·중이 타협하는 방향으로 갈수록 한국 내에서는 예전 월남을 보면서 느꼈던 공포가 되살아날 거고요. 그런 상황에서는 자체 핵무장 등 과거에 극단적이라 생각했던 여러 주장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 2기 트럼프가 북핵 문제에는 어떻게 접근하리라 보시나요.

“이전 바이든 정권에서보다 북핵 문제 우선순위는 상승할 것 같습니다. 트럼프에게는 북핵 문제가 상대적으로 쉬운 이슈로 인식될 테니, 대통령 마지막 임기의 레거시로 남기려고 하겠죠. 우크라이나 문제를 마무리 지은 후 동아시아 세력권 조정 맥락에서 대북 문제에 접근할 가능성이 커 보여요. 워싱턴 조야에서 이미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불가능하다는 회의론이 팽배한 상황인 데다 트럼프 2기에는 존 볼턴 같은 네오콘의 견제도 없으니 핵탄두를 동결시키는 수준에서 봉합하려는 군비통제론이 부상할 것으로 보입니다.”

- 그간 바이든 노선에 100% 동기화율을 보였던 윤석열 정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의 압도적 패권 질서는 정부 수립 이래 한 번도 변한 적 없는 한국 외교의 기본 전제였어요. 그런데 트럼프 시대로 오면서 그 기본 세팅이 뒤흔들리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구냉전 시대 외교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어요. 낭만화된 자유주의적 이미지가 많지만, 자세히 보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조차 국익과 관련해서는 미국과 긴장관계를 형성한 적이 많았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방위조약과 관련해 미국을 압박하려고 미군 동의 없이 거제도수용소 포로들을 대거 석방하는 배수진을 치기도 했죠. 프랑스와 서독도 소련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했지만 각자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나름의 전략을 펼쳤어요. 구냉전 시대에도 그랬는데, 하물며 지금의 탈단극 시대에는 더 말할 것도 없죠. 한국도 미국과 협력하면서도 필요할 땐 거리를 두고 독자적 전략을 펴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향신문

정유진 논설위원


정유진 논설위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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