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쏙 취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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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볼 수 없는 영화…'마리우폴에서의 20일'
칼럼을 쓸 영화라면 보통 두 번 정도는 봅니다. 어떤 영화는 특정 대목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생각이 잘 안 나더라도 그냥 써야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 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요즘 영화나 드라마가 잔인한 장면이 좀 많은가요? 극사실적인 전쟁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글래디에이터2》도 잔인한 폭력씬 때문에 1편과 달리 '청불' 등급을 받았습니다. 그런 영화들에 어느 정도 길들여졌지만, 직접적인 살육 장면도 없는 이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가 더 보기 힘들었습니다.
일 때문이 아니라 제가 순전히 좋아서 두 번 이상 본 영화 목록 중에는 뤽 베송 감독의 《제5원소》라는 SF 블록버스터도 들어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지구를 파멸시킬 괴행성을 막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원소가 결합해야 하는데, 물·불·흙·바람의 네 가지 원소 외에도 ‘사랑’이라는 제5원소가 필요하죠. 이 영화의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제5원소인 외계인 ‘릴루’로 나오는 밀라 요보비치가 지구의 역사를 마치 A.I.처럼 영상으로 딥 러닝하다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입니다. 릴루는 “생명을 구한들 무슨 소용이죠? 어차피 다시 파괴할 텐 데”라고 말하죠. 지구의 역사,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였던 겁니다.
릴루를 연기한 밀라 요보비치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모델이자 배우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밀라 요보비치는 “고향이 파괴되고, 가족들은 난민이 되고, 그들의 삶이 불탄 파편 속에 놓이는 걸 보면서 가슴이 찢어졌다”고 말했습니다. 마치 릴루처럼.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도 우크라이나 태생입니다. 올해 수상자인 한강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력한 시적 산문”으로 업적을 인정받았듯이, 스베틀라나는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보여주는 기념비 같은 작품”을 써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사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시인이나 소설가가 아닙니다. 저널리스트입니다.
저널리스트로서 스베틀라나는 이른바 ‘목소리 소설’이라는 스타일을 개척했습니다. 전쟁과 재난을 체험한 이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구술(口述)을 바탕으로 논픽션 문학을 써나갑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수많은 러시아 여성들의 증언을 채록한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쟁의 뭔가를 말로 표현하고 전달하려 시도할 때 이들은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들은 이야기하려 하고, 다른 이들은 이해하려 하지만, 모두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초기, 러시아의 침공으로 포위된 도시 마리우폴의 <일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을 보면서 이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떠올랐습니다.
“이야기하려 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만, 모두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때, 영상 매체가 힘을 발휘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 전쟁과 미디어의 역사에서 <로버트 카파>같은 사진가로 상징되는 ‘비 텍스트 기록 매체’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진도 여전하지만, 요즘은 영상이 더 큰 파급력을 보여줍니다. 그걸 AP가 해냈습니다.
개전 초, 러시아의 공격이 거세지면서 서방 언론이 다 떠난 마리우폴에 유일하게 목숨 걸고 남은 AP통신의 기자들은 민간인 피해자들의 입을 대신합니다. 러시아의 공습으로 심정지 상태에서 실려온 아이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던 의료진은 이를 촬영하던 AP의 기자들에게 외칩니다. “이 망할 놈들이 민간인들을 어떻게 죽이는지 찍으세요. 푸틴 그 XX한테 이 아이의 눈을 보여주세요. 여기 울고 있는 의사들도 놓치지 말고요. 그 망할 놈한테 똑똑히 보여주세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올해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은 영화인이 아닙니다. 저널리스트입니다. 인터넷과 전화가 끊겨 고립된 도시에서 그가 위성 전화로 겨우 겨우 전송한 조각 조각난 민간인 피해 영상은 유수의 방송 미디어를 타고 세계 각지에 전파됩니다. 축구를 하다가 폭격을 당해 다리가 날아가버린 소년, 영안실이 부족해 다용도실에 보관된 시신들, 골반뼈가 부스러진 채 들것에 실려 이동하는 임신부, 전기·수도·난방 없이 운영되는 와중에 폭격마저 맞는 병원, 마을 공터에 길게 참호처럼 판 구덩이에 아무렇게나 한데 묻히는 시신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장면들을 글로 자세히 묘사하는 건 부질없어 보입니다. 아니, 그렇게 할수록 전쟁은 더 클리셰(cliche)화 하는 것만 같습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말대로 전쟁 대신 칼럼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스베틀라나의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그들의 울음과 비명을 극화(劇化)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의 울음과 비명이 아닌, 극화 자체가 더 중요해질 테니까. 삶 대신 문학이 그 자리를 차지해 버릴 테니까.”
전쟁은 전쟁. 일상은 일상일까요. 이 영화에는 일상과 전쟁의 구별이 없어서 더 공포스럽습니다. 폭격으로 부서진 집을 보며 오열하는 한 여인을 찍던 기자는 '계속 촬영해야 할지, 멈추고 달래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백합니다.
전쟁터가 된 거리에서 취재진은 욕을 먹어가면서도 인터뷰 대상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확인하고, 아이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의료진에게 “지금 기분이 어때요?”, “지금 느끼고 있는 걸 말해주세요”라고 묻습니다. 직업 정신입니다. 그러나, 잔인한 질문입니다. 그래도, 전쟁보다 잔인하지는 않습니다. 기자들도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고통을 기록해야만 합니다.
이들이 전송하는 영상에는 “편집자 주의사항 ‘잔인한 장면 주의’”라는 메모가 붙어있습니다. 기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통스러울 겁니다. 지켜보기 고통스러울 광경이죠. 하지만 보기 고통스러워야만 합니다.”
미디어에 의해 전쟁이 생중계되다시피 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전쟁에 무감각해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매일 뉴스 화면에서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Gaza)지구 전쟁은 더 이상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지 않습니다. 기술적으로 전쟁 상태에 있는, 세계 유일의 휴전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조차 그렇습니다. 호전성을 기르거나 전쟁 준비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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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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