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
타인이 얼마나 낯선가. 초등학교 입학해서 3월2일 처음 만난 낯선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웠던가. 내가 그린 그림, 내가 부른 노래, 내가 쓴 글에 대해 냉정하게 낮은 점수를 준 학교 선생님이 얼마나 야속했던가. 내 부모형제는 언제나 나에게 따뜻했는데 타인들은 늘 차가웠다. 양친과 친척 너머의 타인들을 내쪽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우린 친구를 사귄다. 친(親)은 가족이고 가족같은 것이고 정겨움이다. 친구를 많이 만들면 나의 유사가족 '패밀리'는 커져간다. 다른 또래의 친구들도 사귀어 호형호제 하면서 패밀리를 더욱 키워나간다. 우린 타인의 낯섬이 두려워 세상에 따뜻한 패밀리 공간을 만들어두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80억명이 넘고 내가 만들 수 있는 친(親) 즉, 패밀리의 범위는 최대 1000명이다. 더는 이름을 외우기도 어렵고 시간도 없어서 가깝게 친교할 수 없다. 정으로 만들고 유지하는 패밀리는 고약한 특성이 하나 있는데, 조금만 관리해주지 않으면 유대가 약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패밀리를 유지하기 위해 우린 매일 함께 식사를 하고 매일 함께 술을 마시고 매일 함께 운동과 등산을 한다. 조금만 접촉이 뜸해지면 다시 낯선 타인 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패밀리에 의존해 일하는 사람은 식사와 술자리로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다. 하지만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패밀리는 최대 1000명이다.
패밀리 너머에 있는 타인들도 내편으로 만들 방법은 없을까. 타인은 낯설기도 하고 차갑지만 악마가 아니고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계산이 있다. 타인의 마음을 잡는 것은 정(情)이 아니라 거래다. 내가 맛있는 붕어빵을 팔면 타인은 1000원을 기꺼이 준다. 내가 뭔가를 도와주면 상대도 같은 가치 즉 '등가'(等價)의 도움을 나에게 제공한다. 이런 거래를 계속 이어가다보면 신뢰가 쌓인다. 단골 거래처가 되는 것이다. 거래를 공정하게 한다는 소문이 나면 거래처가 수천, 수만으로 늘어난다. 정으로 만들 수 있는 패밀리는 최대 1000명이지만, 공정한 거래로 만들 수 있는 거래처는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다. 그래서 최대 1000명인 패밀리는 공정한 거래로 묶인 10만명, 100만명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사적 패밀리가 공적 거래 연합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형님, 아우, 친구 관계로 엉켜있는 조직폭력이 공적 법체계로 묶인 거대한 국가체계에 맞설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정(情)으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아직 근대화가 완성되지 않은 한국사회에 너무 많다. 유럽도 그랬다. 과거 유럽도 세상을 사(私)의 정(情)으로 묶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을 사상적으로 끊어낸 사람이 마키아벨리였다. 그는 공과 사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고 했다. 이후의 근대화는 공의 공간을 확대해가는 과정이었다. 과거와 단절하고 근대적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는 좁은 패밀리를 뛰어넘어 낯선이들과 '거래'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외교는 더욱 그렇다. '거래의 기술'을 쓴 트럼프 당선인은 앞으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무엇을 기대할까. 정이 넘치는 친교일까, 등가의 거래일까.
김동규 (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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