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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마을 축제, 문화유산, 노점상 [한승훈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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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제42회 남이 장군 사당제의 장군 출진 행렬이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용문동에 위치한 남이 장군 사당을 출발해 용문시장 일대를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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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종교학)



예로부터 음력 10월을 ‘상달’이라고 한다. 1년 중에 가장 풍요롭고 성스러운 시기라는 의미다. 그래서 ‘시월 상달’은 대보름, 단오 등과 더불어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 축제가 활발하게 열리는 기간이기도 했다. 동제, 동신제, 당제, 당굿, 당산제, 성황제, 산신제, 부군당제, 국사제, 장승제, 거리제, 탑제, 풍어제, 해신제, 골맥이제, 별신굿 등 그 이름은 지역마다 달랐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 축제는 일반적으로 종교적인 성격이 강했다. 마을의 수호신에게 공동체의 평안과 부귀를 비는 의례가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형식은 마을 대표가 유교식 제사를 지내는 형태, 무당이 주도하는 무속식 굿의 형태, 혹은 둘 모두가 이루어지는 형태 등 다양했다.



근대 이후로는 산업화, 도시화에 따른 생활 양식의 변화와 국가의 ‘미신 타파’ 정책 등으로 이런 마을 축제는 상당 부분 축소되고 소멸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문화유산으로서 보존의 대상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축제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제사 및 굿 의례, 행진, 공동체 놀이, 악기 연주나 춤 등이 그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런 사정 때문에, 과거 동계나 어촌계 등 마을 조직이 주도하던 축제들은 이제 문화유산 관련 기구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보존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필자는 올해 상달을 맞아 서울과 지방의 몇몇 마을 축제들을 둘러보고 있다. 원래도 답사를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몇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하나는 무속과 민속 종교를 다루는 강의를 진행하면서 학생들에게 굿을 실제로 보여줄 좋은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오늘날 개인이 의뢰하는 무속 의례는 대부분 주거 지역과 멀리 떨어진 굿당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외부인의 참석이 어렵다. 그래서 큰 규모의 굿이 공개적으로 열리는 마을 축제는 한국 종교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살아 있는 교재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최근 국가유산청이나 국립무형유산원의 용역을 몇차례 맡으면서 정부의 문화유산 정책이 민속 종교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방문한 올해의 마을 축제 가운데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서울 용산구 용문동의 남이 장군 사당제였다. 효창공원역과 용문시장 인근에 있는 사당에는 역사적 인물이자 이 마을의 수호신인 남이 장군 신의 그림을 포함해 25점의 무신도(巫神圖)가 봉안되어 있다. 음력 9월 그믐날에는 남이 장군의 부인을 모신 산천동 부군당에서 연꽃을 가져오는 ‘꽃등 행렬’이 있다. 그리고 다음날인 10월1일 오전에는 사당에서 유교식 대제가 이루어진다. 이어서 남이 장군의 출정을 재연하는 기마 퍼레이드 행렬이 인근 도로를 행진하고, 오후에는 무당들이 주도하는 당굿이 시작된다. 이 굿은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특히 올해에는 지난 9월 별세한 당주이자 예능보유자인 이명옥 만신을 추모하는 절차가 포함되어 눈물과 웃음이 공존하는 행사가 되었다.



필자는 동행한 일본인 연구자에게 일본의 축제인 마쓰리와는 어떻게 다른 것 같냐고 질문했다. 미처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데키야(的屋)가 없네요?” 데키야란 일본 신사의 축제 때 설치되는 노점상을 말한다. 한국의 지역 특산물 축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판들과 흡사하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을 축제들에는 정작 마을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 주민들은 해마다 용산의 거리를 지나가는 남이 장군의 기마행렬에 호기심을 보이지만, 공연 형식으로 진행되는 제사나 굿 말고는 먹거리도, 즐길 거리도 부족한 것이다.



물론 일본 축제의 노점에는 나름의 역사 문화적인 배경이 있으며 오늘날에는 상업성 논란도 있다. 정책적 관심이 원형 보존에 있으며 공적인 보조가 들어가는 한국의 마을 축제와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마을 축제에서 ‘원형’이라는 것이 과연 절차나 법식을 지키는 데에만 있을까? 종교적 성격의 축제라고 해도, 그것은 마을의 경제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총체적인 의미를 가진다. 도시의 시장이나 옛 장터 근처에서 이루어지던 공동체 축제에 과연 상업적 요소들이 없었을까? 상식적으로도, 지역 주민들의 증언을 들어보아도 그랬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어쩌면 우리는 전통적인 마을 축제를 최대한 변형시키지 않고 지속시키는 데 역량을 집중한 나머지, 그 살아 있는 전통으로서의 생명력을 억제,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역의 상인들과 예술가들이 의례가 이루어지는 제당 주변에 부스를 차리고, 주민과 관광객이 모여드는 형태의 축제가 21세기의 문화유산이 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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