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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트럼프, 김정은, 그리고 ‘다섯살’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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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9년 6월30일 판문점 남쪽 자유의 집에서 성사된 북-미 대화에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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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의 신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네오콘에서 트럼프주의자로 전향한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과 마이클 왈츠 하원의원을 국무부 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 ‘듣보잡’ 방송진행자 피트 헤그세스를 국방부 장관, 반전평화주의 성향의 털시 개버드를 국가정보국 국장, 백신 음모론자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를 보건복지부 장관, 미성년자와 성관계 혐의를 받는 맷 게이츠를 법무부 장관에 지명했습니다. 잡탕 인사이지만 공통점은 트럼프주의자입니다. 그렇다면, 트럼프주의는 과연 무엇일까요?



잡탕 인사가 보여주듯이 트럼프주의는 잡탕주의입니다. 거래주의, 고립주의, 포퓰리즘, 보호주의, 권위주의, 미치광이 전술, 현실주의, 군사력 우선주의, 혐전주의, 힘에 의한 평화, 후견주의 등이 버무려진 잡탕입니다. 하지만 그 의도는 하나로 귀결됩니다. 미국의 패권을 비용을 치르지 않고 유지하겠다는 것입니다.







북, 핵무력·북러동맹 다 챙겨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국제질서를 설계하고 유지해온 패권 국가입니다. 패권 유지에는 혜택도 있지만, 비용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한테 군사력과 달러는 국익을 챙기는 도구이나, 동맹국의 안보나 경제, 해로 보호 등 국제질서의 유지를 위해 투입됩니다. 한국은 미군 주둔으로 안보를 지키고, 미국의 원조와 개방된 미국 시장 진출로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트럼프의 미국은 이제 그런 비용을 치르지 않겠다는 겁니다. 한국이 미군 주둔 비용을 내고,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 고율 관세를 물고, 한국 시장을 미국에 개방하는 겁니다. 미국의 패권의 도구인 군사력과 달러를 다른 나라를 위해 투입하는 대신에 다른 나라들이 그 비용을 부담하라는 것입니다.



트럼프가 줄곧 주장해온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은 그 시금석입니다. 이 전쟁은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의 세력권 전쟁입니다. 미국이 주도한 나토 확장과 ‘우크라이나는 자신의 앞마당’이라는 러시아가 충돌했습니다. 미국은 자유와 주권을 명분으로 우크라이나에 지금까지 1천억달러 넘게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문제라며 그 지원을 끊고 종전하겠다고 합니다.



트럼프가 이 전쟁에 회의적인 것은 미국의 패권에 더 위협적인 중국과의 대결에 집중하겠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트럼프 1기 정권이 출범할 때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개인적 호감을 보인 트럼프가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해서 ‘반중 미-러 협력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논란 등으로 양국 관계 개선은 무산됐고, 조 바이든 행정부 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양국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됐습니다.



이 전쟁으로 미국이 주도하던 국제질서에 큰 균열이 생겼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연대가 굳어지고,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라는 비서방 모임이 커졌습니다. 중·러는 미국 주도 일극 질서인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대체하는 다극화 질서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특히, 러시아와 북한은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해 서방에 맞서는 단단한 동맹 관계로 들어갔습니다. 최근 논란이 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군 파병’이 대표적입니다.



트럼프 취임을 전후해 종전 협상이 구체화하고, 미국과 러시아는 머리를 맞댈 것입니다. 양국 관계에 변화가 예상됩니다. 러시아는 중국과 연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나, 트럼프의 미국과도 잘 지내려고 할 것입니다. 러시아는 미·중·러 관계에서 일종의 균형자 역할을 모색하려 할지도 모릅니다.



러시아와 단단한 동맹 관계로 들어간 북한은 최대 수혜자입니다. 북한은 이미 이 전쟁을 계기로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가장 유리한 지정학적 입지를 굳혔습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파탄 이후 미국과 관계 개선을 포기하고 핵무력 증강으로 질주한 북한은 이 전쟁으로 중·러가 주도하려는 다극화 공간에 편입됐습니다. 서방의 제재에 맞선 러시아와 중국이 협력해 서방과 절연된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던 가운데, 북한은 북-러 조약으로 든든한 동아줄을 잡았습니다. 북한은 한 손에는 핵무력을, 다른 손에는 러시아 등과의 경제협력까지 쥐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대북한 제재를 무력화해주고 있습니다.







윤석열 ‘즉강끝·가치연대’의 파국





트럼프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칭찬하며 관계 개선을 시사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종전이 되면, 트럼프는 러시아를 고리로 김정은과의 접촉도 예상됩니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이제 ‘을’이 아닙니다. 북한은 미국과 ‘갑 대 갑’으로 대화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런 북·미의 갑 대 갑 관계가 북한의 요구 조건을 높여서 협상을 힘들게 할지, 혹은 양쪽에 현실적인 자세로 순항하게 할지는 미지수입니다.



김정은의 북한은 한국과는 상종도 않겠다는, 남북한은 적대적인 두 국가라는 ‘두 국가 체제’를 공식화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대북 전단을 날리고 ‘즉강끝’(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을 외치는 대결주의로 질주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관계는 파탄났습니다. 윤 정부의 이런 대결 질주는 바이든의 ‘가치연대’에 올인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 윤 정부는 그런 가치연대는 개나 주라는 트럼프와 마주해야 합니다. 윤 정부를 제치고 북한과 직접 거래하거나, 혹은 그러겠다고 위협할 수 있습니다. 지지율이 바닥인 윤석열 대통령이 그런 트럼프에게 협상의 지렛대가 있을까요? 주한미군 비용, 시장 개방 문제 등에서 발가벗겨질 수 있지 않을까요? 동아시아 지정학 격변에서 한국은 돈은 돈대로 내고 미아가 되지는 않을까요?



요즘 화제인 명태균이 윤 대통령을 두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다섯살짜리 애가 총을 들었다. 그러면, 자기도, 부모도, 다른 사람도 죽일 수 있다. 우리 대통령은 정치를 한 적이 없다. 다섯살짜리 꼬마가 지금 총을 들고 있는 격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트럼프의 신세계에 오신 걸 다시 환영합니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트럼프를 만나겠다며 골프채를 휘두르는 호구 단역으로 출연할 윤석열도 응원해주세요.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함께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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