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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방송서 사라진 개그맨 최성훈의 ‘귀향’…20년만에 나타난 이유 [인생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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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 붐’에 옛날TV 유행하며 누리꾼들이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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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인기 코미디언 최성훈 씨가 최근 일산 모처에서 기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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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선택을 ‘귀향’이라고 표현했다. 20여 년 인생 공부하다 결국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일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최성훈 씨(60)는 90년대 방송가를 주름잡던 코미디언이다. 리얼리티 예능 MC의 원조다. 인기 가도를 달리던 그는 2000년대 초반 돌연 방송계를 떠났다. 그리고 환갑에 이르러 다시 대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연예인’으로 살던 그를 누리꾼들이 소환했다. ‘복고 붐’이 일면서 옛날TV가 SNS에서 유행한 게 발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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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옛날 예능 빽능’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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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SBS ‘좋은세상 만들기-고향에서 온 편지’에서 이름이 ‘언년’인 세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최성훈. (SBS 옛날 예능 빽능’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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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씨는 1998년 농촌 예능을 진행했는데, 이 방송이 몇 년 전부터 SNS 숏폼 콘텐츠로 인기를 끌었다. 댓글에는 “진행자 근황이 궁금해요. 요즘 뭐하고 지내나요?” “방송에 왜 안 나와요?”라는 의문이 줄을 이었다. 맞물려 KBS 전국노래자랑을 이끌던 송해 옹이 작고하면서 최 씨를 찾는 목소리는 커졌다. 최 씨는 시골 노인들의 거침없는 입담을 끌어내는데는 ‘일인자’였다.

“내가 정말 다시 할 수 있을지 숱하게 고민했어요.” 누리꾼들의 요청은 잠들어 있던 그의 본성을 깨웠다. 최 씨도 언젠간 못다 이룬 일을 마무리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타잔이 10원짜리 팬티를 입고~”히트송…헬기 타고 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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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MBC ‘오늘은 좋은 날-내일은 빛나리’ 코너에서 타잔송을 부르는 최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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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MBC 특채 개그맨인 최 씨는 같은 해 시작한 MBC 간판 예능 ‘오늘은 좋은 날’에서 주요 코너를 잇달아 성공시켰다. 출연뿐 아니라 기획, 대본, 편집까지 도맡아 하는 유일한 희극인이었다.

‘내일은 빛나리’에서는 ‘타잔송’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타잔이 10원짜리 팬티를 입고”라는 타잔송은 학부모 항의를 받을 만큼 ‘초딩’들에게 인기였다. 다른 화제작 ‘소나기’에서는 신인 강호동과 콤비를 이뤘다. KBS2 ‘슈퍼선데이’ 농촌 시트콤 ‘금촌댁네 사람들’(1994년), MBC 어린이 프로 ‘뽀뽀뽀’ 등 방송 3사를 종횡무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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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SBS ‘좋은세상 만들기-고향에서 온 편지’를 진행하는 최성훈이 상추를 덥석 뜯어 먹었다가 소변이 묻은 사실을 안 뒤 놀라고 있다.  (SBS ‘옛날 예능 빽능’ 유튜브 갈무리)


1998년에는 SBS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고향에서 온 편지’로 또 한번 히트했다. 국내 최초의 농촌 리얼버라이어티다. 시골 어르신들의 필터링되지 않은 ‘비방용’ 멘트는 시청자 배꼽을 빼놨다.

“시간 없어서 헬기 타고 다녔어요. 하루에 수천만 원씩 들어왔어요. 그땐 돈의 중요성을 몰랐어요”

“많은 수업료 내면서 인생 공부”

그렇게 잘 나가던 최 씨는 2002한일월드컵 무렵에 TV에서 모습을 감췄다. 예능을 뒤흔들던 기발한 발상이 역설적으로 그를 방송에서 멀어지게 했다.

“뭔가 좀 새로운 걸 하고 싶어 하던 차에 방송 회식에 갔는데, 노래방 반주 소리가 너무 별로인 거예요. 악기 소리가 아니라 ‘미디 음악’이었어요. 그래서 가수들이 라이브 할 때와 똑같은 반주를 만들어보자 생각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노래방 음원 사업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많은 음원을 실물 악기로 만드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거니와 남녀 키와 템포를 조정하는 문제, 믹싱하는 문제 등 기술적으로 풀어야 할 난관이 산재했다. 그는 핀란드 노키아 출신 전문가를 수소문해 영입하고 본인도 그 분야 공부에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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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인기 코미디언 최성훈 씨가 최근 일산 모처에서 기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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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는 내가 자신있고 메커니즘을 잘 아는데 사업은 안 해봤잖아요. 직원이 100명 가까이 되는데 모르면 안 되잖아요. 거기 미쳐서 하다 보니까 연예계는 자연스럽게 은퇴 아닌 은퇴가 돼버렸죠. 제가 노래방 반주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어요.”

음원 사업 외에도 한우집을 비롯해 다른 여러 가지 사업에도 도전했다. 그러면서 스트레스 누적으로 건강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생소한 것을 하니 엄청 스트레스 받고, 당뇨도 심하게 오고, 대상포진도 오고, 안 좋은 건 다 몰려왔어요. 병원에 입원 하며 10여 년을 고생했어요. 세상이 참 뜻대로 안된다는 걸 느꼈어요”

지금은 건강을 되찾은 그는 “진짜 많은 수업료를 내면서 인생 공부했다”고 돌아봤다.

“연예인들이 귀가 얇아서 누가 뭔 얘기하면 엄청 잘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음식점도 연예인이 하면 무조건 손님 올 줄 알죠. 처음엔 소문이 빨리 나긴 하지만 빨리 망해요. 맛없더라 소문나면 끝이에요. 본인이 요리 배우지 않으면 요리사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게 다반사에요.”

“말수 없던 어르신, 불붙여주니 개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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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훈이 지난 9월 시작한 유튜브 채널 ‘고향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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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 두 번 바뀐 뒤에야 본업으로 돌아온 그는 유튜브가 자기 스타일에 딱 맞는 플랫폼이라고 했다.

“한 10년 전쯤부터 고향 어르신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요. 그런데 용기가 안 났어요. 시청자들이 반겨줄까? 댓글 보고 상처받으면 어쩌지? 돈 떨어졌나보네 생각 하면 어쩌지? 사실 저는 비연예인이잖아요. 방송 20년을 쉬었는데 되겠어요?”

그런 두려움 속에서도 그를 찾는 시청자들의 댓글에 용기가 생겼다.

“방송 업계가 확 바뀌었더라고요. 사람들은 더 이상 TV를 안 봐요. 고향 프로그램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대본에 없는 돌발 발언을 하는 게 재밌는 건데, TV방송에선 여과 없이 내보낼 수 없었잖아요. 유튜브는 그게 되더라고요.”

바로 그게 최 씨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어르신들의 흥을 살리는 것. 카메라 앞에서 긴장해 말 못 하던 노인들도 최 씨가 몇 마디 거들고 나면 180도 바뀌었다.

그렇게 시작한 최성훈의 유튜브 채널 ‘고향 앞으로’는 이제 2달 됐다. 25년 전엔 30대 젊은이였던 최 씨는 이제 환갑의 나이로 어르신들을 찾아간다.

“첫 촬영은 정말 힘들었어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특히 요즘 어르신은 예전에 비해 10년은 젊어지셨어요. 말투도 스타일도 노인이 아니에요. 옛날엔 한껏 멋 내고 나온 게 한복이었는데 요즘은 청바지 입고 다녀요.”

그래도 변함없는 건 시골 어른들의 ‘거침없는 말’이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저는 대본 하나 없이 해요. 이 얘기 저 얘기해 보고 그분이 잘하는 것에 불을 지펴 드리니 입담이 살아나더라고요. 그렇게 점잖던 어르신이 속사포처럼 쏟아내니 ‘저 사람이 저렇게 웃겼나?’ 하고 주변에서 놀라요.”

“시골 어른들의 정서 영상으로 남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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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오리 할머니’와 며느리. 최성훈이 다시 찾아간 충남 서천 필당 마을. 사진 위=26년 전 ‘고향에서 온 편지’에 출연했던 ‘오리 할머니. 아래=최근 유튜브 채널 ‘최성훈의 고향 앞으로’에 출연한 오리 할머니의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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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씨가 고향 프로그램을 다시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직 남아있는 시골 정서를 후세에 영상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무엇보다 컸다. 일종의 공익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전에 방송에서 만난 어르신 중에 두세 분이 살아 계셨어요. 전북 고창에 갔는데, 할머니가 누워 계시더라고요. ‘저를 기억하세요?’ 물었더니 알아보시는 거예요. ‘기억한다. 고맙다’ 하시는데 눈물이 났어요. 뭉클했어요. 사실 지금 하는 건 다 적자지만 힘을 얻어요. 어르신들의 지금 모습을 후세에 남기고 싶어요.”

최 씨는 이벤트가 방송에서 그치지 않고 평소 젊은이들이 가족 단위로 시골을 찾아 노인들과 어울려 지낼 마당을 지자체에서 마련해 줬으면 한다고 욕심을 밝혔다.

“시골은 노인들이 떠날 날만 기다리며 그들끼리 의지하고 지내는 요양원이 됐어요. 바닷가나 산중 마을 경치가 얼마나 좋아요. 널린 게 노는 땅인데, 지자체에서 전기 넣어주고 샤워 시설만 해주면 돼요. 사람들이 차박을 하든 텐트를 치든 놀러오게 만드는 거에요. 그럼 어르신들이 할 일이 생기잖아요. 상추 뜯어다 주고, 모닥불 피워주고 콩 구워 주고 이렇게 연결해 주는 거예요.”

그는 시골 노인들에게 살아갈 목적을 심어주는 게 목표라고 했다. “젊은 가족들이 놀러 가면 누구네 집 할머니와 얘기도 좀 하고, 할머니는 다음 주에 누가 올까 궁금해하고, 돌아간 뒤에는 잘 계시냐고 연락도 하고, 좋은 거 있으면 서로 보내주고 이런 커뮤니티가 형성 되잖아요. 그런 그림을 만드는 게 제 바람입니다.”

■ ‘인생2막’은 삶의 전환기를 맞아 새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반환점에 도약해 제2의 꿈을 펼치고 계신 분, 은퇴했지만 재능을 살려 사회에 기여하는 분, 생소한 직업에 도전한 분의 다양한 사연을 기다립니다. (ddamansa@donga.com)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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