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된 독일 철강산단, 문화공원 변신
냉각수 스케이트장부터 코크스 공장 수영장
이색 체험 프로그램에 年 방문객 170만명
뒤스부루크 공원부터 아우토슈타트까지
산단에 문화입혀 관광 효과 톡톡히 누려
독일 에센에 있는 졸버레인 산업단지 아이스링크장. 과거 석탄공정에 이용된 냉각수가 흐르던 길이었지만, 현재는 지역주민과 관광객이 이용하는 레저 시설로 탈바꿈했다. 사진=졸버레인 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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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독일 에센의 졸버레인 탄광 산업단지에서 만난 한스-위르겐 칠케씨(69)는 과거 자신이 일했던 공장 옥상에서 추억에 잠긴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옥상 아래에는 나무와 공원이 오래된 공장 사이사이 들어서 있었다. 곳곳에 남아있는 굴뚝이 아니라면 산단이 아니라 국립공원으로 착각할만한 전경이었다. 칠케씨는 파란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을 한참 바라보다 “이렇게 아름답게 바뀔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나지막이 얘기했다.
지난달 15일 찾은 독일 에센의 졸버레인 탄광 산업단지에서 한스-위르겐 칠케씨(69)가 본지 기자와 대화하고 있는 모습. 그는 유년 시절 이곳에서 일하던 석탄 광부였다. 현재 졸버레인 탄광은 녹지와 문화프로그램이 조성된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사진=송승섭 기자 tmdtjq8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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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버레인 산단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연간 170만명이 찾는 유럽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다. 노후 산단을 문화관광지로 개조한 첫 사례로, 1년에 수백개의 문화행사와 투어 프로그램이 열린다.
냉각수 통로는 빙상장, 공장 부지는 수영장 대변신
지난달 15일 찾은 독일 에센의 졸버레인 탄광 산업단지. 오래 전 환경오염과 산업쇠퇴로 문을 닫은 산단 부지에 녹지를 조성하고 문화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사진=송승섭 기자 tmdtjq8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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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칠케씨가 이곳에 태어날 때만 해도 졸버레인 산단은 독일과 유럽의 최대 광산 거점으로 불렸다. 칠케씨의 아버지는 에센 졸버레인 산단에서 31년간 석탄을 캐던 광부였다. 칠케씨 역시 15살부터 10년간 석탄광부로 갱도를 오르내렸다. 당시 일대의 공기질은 최악이었다. 칠케씨는 “어렸을 때 파란 하늘을 본 적이 없었고 유황 때문에 하늘은 황토색이었다”면서 “우리 집은 공장 바로 앞에 있었는데 매연이 너무 심해 어머니가 늘 손수건을 얼굴에 두르고 다녔다”고 회고했다. 사람들이 즐겁게 노는 지금의 산단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이유다.
약 100㏊에 달하는 졸버레인 산단은 1847년 문을 열었다. 검은 황금이라 불렸던 석탄 생산량은 하루 평균 2만톤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1972년 한국의 파독광부 8000명이 일했던 탄광도 이곳이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환경오염 문제가 불거졌고 석탄 수요까지 줄면서 산단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결국 1986년 12월23일 마지막 석탄채굴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96개의 건물과 200개에 달하는 공정시설, 2.7㎞의 컨베이어벨트, 13.2㎞의 파이프가 그대로 버려졌다. 지역주민들까지 떠나면서 말 그대로 ‘버려진 산단’이 됐다.
졸버레인 산단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논의는 1989년에야 시작됐다. 주 정부는 10년간 일대 산단시설을 재개발하는 ‘국제건축박람회 엠셔파크’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애초 지역 정치인들 사이에는 졸버레인 산단을 철거하거나 매각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환경개선에 비용이 들고 녹슨 강철이 흉물스럽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이 철거를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철거보다 보전이 더 저렴하다는 연구용역 결과까지 나오자 결국 주 정부는 유지·보존을 결정했다.
독일 에센에 있는 졸버레인 수영장. 코크스 공장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지역주민과 관광객이 이용하는 레저 시설로 만들었다. 사진=졸버레인 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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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된 산단은 복합문화단지로 탈바꿈했다. 냉각수가 흐르던 1㎞의 거대한 물줄기는 한겨울 아이스링크장으로 바꿨고, 코크스공장 앞 자투리 공간은 한여름 수영장으로 조성했다. 갱도의 석탄을 끌어 올리던 거대한 권양탑은 졸버레인의 랜드마크로 만들었다. 리모델링 때는 세계적인 건축가들도 초빙했다.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는 석탄 세척공장을 ‘루르 박물관’으로 개조했다. 공장 구조물과 기계 80%를 그대로 유지해 생생한 현장을 보존했다.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는 거대한 굴뚝이 있는 보일러시설을 ‘레드닷 디자인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산단 문화행사만 年 250개, 관광객 효과 '톡톡'
지난달 15일 방문한 독일 뒤스부르크의 주립공원. 버려진 철강 산업단지에 녹지를 조성하고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어 매년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을 이끌어냈다. 옛 철강 공장 사이로 나무가 심어져 있다. 사진=송승섭 기자 tmdtjq8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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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독일에서는 노후산단에 문화공간을 만드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독일 뒤스부르크의 주립공원이 대표적인 예다. 뒤스부르크 산단은 독일 최대 철강기업 ‘티센’의 본거지로 20세기 중반까지 세계 철강의 중심지였지만, 경쟁력을 잃으면서 1985년 문을 닫았다.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재건논의가 이어졌고 1991년 조경전문가 피터 러츠 교수에 의해 문화공원으로의 변신이 시도됐다. 2008년까지 25억유로(약 3조75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해 120여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본지 기자가 둘러본 공원은 거대한 철강구조물과 우거진 숲이 조화를 이루는 이색적인 모습이었다. 철강소 구조물은 따로 인공적인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 원래의 녹슨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옛 건물은 전시용이 아니라 대부분 직접 올라가 볼 수 있는 전망대로 활용하고 있었다. 철강공장들을 미로처럼 연결한 계단이나 파이프 위를 탐험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색적인 체험이 가능하다 보니 유럽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린다. 현재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매년 100만명이 넘는다. 철강공장 계단을 오르던 중 만난 카롤리나 후세이노바양(14)도 그중 한명이다. 폴란드에서 부모님과 함께 왔다는 그는 “우리도 비슷한 공장은 있지만 이렇게 공원으로 만든 게 놀랍다고 생각해서 가족과 왔다”고 말했다.
지난달 15일 방문한 독일 뒤스부르크의 주립공원. 버려진 철강 산업단지에 녹지를 조성하고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어 매년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을 이끌어냈다. 옛 철강 공장 사이로 나무가 심어져 있다. 사진=송승섭 기자 tmdtjq8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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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250여개에 달하는 다양한 자연·문화행사가 이곳 노후산단에서 열린다. 180㏊의 산단부지 안에 숲을 가꿔 등산과 하이킹 코스를 만들었다. 용광로를 이용한 다이빙대와 공장외벽을 이용한 암벽등반 시설도 있다. 낮에는 아이들을 위한 보물찾기 게임이 진행되고, 밤에는 횃불을 들고 공장을 둘러보는 이색투어가 있다. 지역 상인들과의 상생을 위해 위한 ‘여름시장’과 ‘조명시장’도 매년 열린다.
독일 뒤스부르크 주립공원은 버려진 철강 산업단지에 녹지를 조성하고 문화 프로그램을 만든 장소로, 매년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다. 사진은 주립공원에서 진행하는 야간 횃불투어. 사진=뒤스부르크 주립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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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주민의 만족도도 높다. 뒤스부르크 공원에서 만난 킴 쿤씨는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종종 공원을 찾는다. 그는 “재밌는 행사가 자주 열리고, 횃불 투어가 특히 재밌다”면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집 근처에 있어서 좋다”고 전했다. 만프레드 아이젠후트씨도 “쾌적한 산책로가 있어서 근처에 사는 부모님도 자주 찾는 곳”이라면서 “헝거게임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최근 더 유명해졌다”고 언급했다.
볼푸스부르크에는 ‘아우토슈타트’가 알려져 있다. 폭스바겐이 본사와 출고장 부지를 테마파크로 만든 관광지다. 25만㎡ 규모 부지에 4억3000만유로(약 6450억원)을 투자해 2000년 6월 개장했다. 자동차 문화공간으로 바뀐 이후 아우토슈타트 방문객의 연간 평균 방문객은 약 200만명으로, 총 누적 방문객은 3600만명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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