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형준 정치부 차장 |
“기자회견의 목적이 해명인지, 사과인지, 어쨌든 임기 절반을 채우겠다는 건지 모르겠더라.”
서울 소재 대학의 한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의 7일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 대해 “사과도 드리고 감사도 드리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라며 이같이 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사과의 배경과 이유를 묻는 기자회견 첫 질문에 “임기 2년 절반을 돌아보고 국민들께 감사 말씀과 사과 말씀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라며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국민들께 사과드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국민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0%대 국정 지지율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김건희 여사 문제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첫 스텝이 꼬이면서 사과 관련 질문은 기자회견 내내 쏟아졌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이 무엇에 대해 사과를 했는지 (국민들이) 어리둥절할 것 같다’는 질문에 대해선 “기자회견을 하는 마당에 그 팩트를 가지고 다툴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딱 집어서 (얘기)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 사과를 드리겠다”고 답했다. 증거를 가져오라는 뜻처럼 들렸다.
윤 대통령과 명태균 씨의 통화 육성 녹음파일에 대해선 본인은 2022년 5월 9일 취임 전날 명 씨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은 일이 있다고 설명했는데 참모들이 이를 빼고 입장문을 냈다고 했다. ‘거짓 해명’ 논란은 참모들의 실수였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그러면서도 윤 대통령은 “명 씨와 관련해서 부적절한 일을 한 것도 없고, 또 감출 것도 없다”고 했다.
‘김건희 여사 라인’에 대해서는 “굉장히 부정적인 소리로 들린다”며 인사 조치 여부는 답변을 피했다. 특검 수사팀장 출신인 윤 대통령은 특검 제도가 “삼권분립 체계에 위반된다”고 했고 김 여사 특검은 “인권 유린”이라고도 했다.
두 시간 넘게 쏟아진 26개 질의응답 중 12가지가 김 여사 관련 질문이거나 사과에 대한 질문이었다. 대통령실은 당초 ‘무제한 질문’이나 ‘끝장 토론’을 예고했지만 질문은 26개에 그쳤다. 하지만 140분 넘게 현장에 있던 기자들도, 이를 지켜본 국민들도 뒤끝이 개운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명 씨가 주변에 했던, 국정 개입이 의심되는 대목들은 사실이라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윤 대통령의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는 말은 어떻게 나온 건지….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고, 사이다 마신 느낌은커녕 고구마를 삼킨 것 같은 회견이었다.
윤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처음부터 명확하게 김 여사 문제와 명 씨와의 통화 육성 녹음파일 논란 등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면 어땠을까. 회견 날짜가 급하게 잡히긴 했지만 윤 대통령은 담화문 사전 회독도 하고 예행연습도 거쳤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참모들이 구체적이고 명확한 사과와 해명을 하도록 바로잡았다면, 답답함은 덜했을 것이고 국민들이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을지 모른다. 내용은 없고 형식적 사과에 그쳤다는 평가도 없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밝힌 대로 대국민 사과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국민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것”이라면 왜 이렇게 사과는 떠밀리듯 이뤄졌고 억지 춘향식으로 해야 했는지, 대통령의 고집인지 참모들의 무능인지 의문만 남긴 회견이었다.
황형준 정치부 차장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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