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하고 있다. /오사카(일본)AP=뉴시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젠 사장님이 언제 불쑥 중국에 오실지 모르겠네요."
중국 정부의 갑작스런 한국인 비자 면제 조치로 현지 우리 기업들의 풍경부터 바뀌었다. 얼마 전 만난 기업 법인장 A는 "대표이사가 오전에 불현듯 '오후에 회의를 할 테니 준비해 놓으라'며 베이징에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전엔 비자 신청부터 발급까지 최소 사흘은 걸렸으니 상사가 온다면 준비할 시간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항상 긴장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또 다른 기업의 법인장 B는 갑자기 내달 초 중국 현지 사업장을 순시하겠다는 오너 내외를 맞이하게 됐다. 직접 지시한 새 중국 사업에 유달리 애정을 쏟고있는 오너는 몇 달 전에도 자체 행사 참여 차 중국에 다녀갔다. 비자 면제 소식을 듣고는 다시 온단다. 같은 사업장을 또 안내하게 된 이 법인장은 "코로나19 이전엔 의전이 주요 업무였다던데, 말로만 듣던 상황을 경험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 비자면제 조치 여파는 비단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교민사회는 예정에 없던 친지나 지인들의 중국 방문 소식에 떠들썩하다. 현지 한인 커뮤니티에는 한국에서 온다는 친지나 직장 동료를 안내하기 위해 동선을 문의하거나 관광지 상황을 공유하는 빈도가 두드러지게 늘어났다. 한국인 입국 비자만 사라졌을 뿐인데, 없었던 활기마저 느껴진다.
중국을 찾는 한국인 숫자는 비자 면제 이전부터 시나브로 늘어나고 있었다. 통계가 말해준다. 올 1~9월에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 입국자 수는 212만명으로 집계됐는데,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92%나 늘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287만명 회복이 목전에 있다.
중국 정부가 전격 비자를 면제하기로 한 것도 이를 감안한 조치다. 당장 눈에 띄는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외교 수단이 바로 비자면제다. 더구나 중국은 일본인 입국자가 올해 들어 200% 이상 늘어나고 있는데도 일본에는 비자 허들을 그대로 뒀다. 관광객 모객 조치일 뿐이라고 폄하하기엔 '한국 맞춤형' 외교 메시지 느낌이 매우 강하다.
비자 면제를 계기로 현지 우리 기업들 사이에선 한중 관계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그만큼 오랜 기간 한중 관계가 냉각돼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여전히 제1의 무역대상국이다. 그럼에도 경직된 양국 관계 속에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극도로 위축돼 있다. 정상적 기업 활동에도 '친중 기업' 낙인이 찍힐까 전전긍긍이다. 언제 현지 사업을 걷어치워도 이상하지 않은 기업들이 적잖다.
이런 가운데 중국에서 먼저 유화적 제스처를 던졌다. 아그레망(주재국 동의)이 이뤄지면 곧 김대기 신임 중국 대사도 부임한다. 한중 관계를 개선할 기회다. 우리가 전향적 메시지를 내놓는다면 양국 관계도 급물살을 탈 수 있다.
중국이 먼저 손을 내민데는 트럼프 2기를 앞둔 절박함이 영향을 줬다. 트럼프 2기 태평양권역 외교 전선은 지금의 평면적 상황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될 터다. 예측이 어려운 '입체적' 상황 속에 모든 대외 변수가 살아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죽은 카드였던 북한도 트럼프 행정부에선 유력한 카드가 될 수 있다. 대만이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하기도 전 TSMC를 앞세워 먼저 대중 규제 나팔을 불기 시작한 건 이 때문이다.
세계는 트럼프 1기에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걸 배웠다. 관세 폭탄은 한국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천문학적 방위비 압박도 예고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반도체 및 배터리 공급망 등 모든 카드를 놓고 외교전을 펼쳐야 한다. 손에 쥔 카드는 많을수록 좋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그 중 하나다. 정부와 김대기 신임 대사가 중국 정부에 던질 메시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주길 바라는 것은 이 때문이다.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