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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기자수첩] 경제전망은 '숫자 맞히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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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김동찬 금융부 기자


"도대체 오차가 이렇게 큰 이유가 뭡니까."

지난달 말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벌어진 일이다. '성장률 예측에 실패했다'는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정확한 숫자를 맞히지 못할 경우 시장의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비판이다. 여야를 막론한 의원들의 추궁에 이창용 한은 총재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한은의 예상은 엇나가고 있다. 지난 4월 발표된 1·4분기 성장률 속보치(1.3%)는 당초 예상치(0.6%)를 두 배 넘게 웃돌았다. 지난달 공개된 3·4분기 성장률도 기존 예상(0.5%)과 비교하면 5분의 1 토막이 났다. 전망 모형의 정확도에 물음표가 달린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경제전망은 단순한 숫자 맞히기가 아닌, 일종의 스토리텔링이다. 한은이 경제전망과 그 전제, 이유 등을 상세하게 공유할수록 가계·기업 등 각 경제주체는 한은의 결정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경제여건이 달라짐에 따라 통화정책이 어떻게 변화할지 체계적으로 예측하게 된다. 중앙은행이 많이 공유할수록 시장과 정책 간의 연결고리가 긴밀해지는 것이다.

핵심은 소통이다. 외부요인이 바뀌면 전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전망 오차가 확대됐다는 것은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오차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더 많이 소통하는 것이 전망의 '진짜' 목적이다.

주요국 중앙은행은 예측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적극적인 전망에 나섰다. 지난 2007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경제전망 발표 횟수를 연 2회에서 4회로 늘리고, 경제전망요약(SEP)을 도입했다. 영란은행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물가상승률 등의 주요 경제지표에 대한 분기별 전망경로를 공개하고 있다. 지난 8월부터 한은이 분기별 전망을 새롭게 제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때문에 단순히 전망이 '틀렸다'는 것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전망은 자연과학이 아니다. 1970년대 영국 재무장관 데니스 힐리는 경제전망을 '부분밖에 알려지지 않은 과거로부터, 알려지지 않은 현재를 통해, 알려야 알 수 없는 미래를 추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망을 위한 전망'을 한다면 분기 전망이 아니라 연간 전망만 하면 될 일이다.

다시 국감장이다. 이 총재는 "전망을 더 개선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답했다. 한은이 경제분석 프로세스를 더욱 고도화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한은이 단순한 '계산기'가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비판은 예측과 실제 데이터가 어긋났음에도 한은이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을 때 이뤄져야 한다. 숫자 맞히기에 지친 한은이 다시금 소극적인 전망에 나선다면 시장의 혼란은 오히려 더욱 커진다.

eastcold@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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