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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이슈 시위와 파업

"차라리 폐교하라" 과잠 시위…동덕여대 '남녀공학 전환'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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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여대가 남녀공학 전환 논의에 착수하자 이에 반대하는 학생 1000여명이 이틀째 총장실이 있는 본관을 점거하고 캠퍼스 곳곳에서 규탄 시위에 나섰다.

12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캠퍼스 교문 앞엔 남녀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설치한 근조 화환 수십 개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화환엔 “공학 전환 완전 철회”, “민주 동덕은 죽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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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동덕여대 학생들이 학교 건물 출입구를 폐쇄하고 점거 시위에 나섰다. 김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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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앞에선 김명애 동덕여대 총장을 겨냥해 “차라리 명애(명예)롭게 폐교하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과 점퍼 수백여벌을 벗어 땅바닥에 널어놓는 ‘과잠 시위’도 이뤄졌다. 캠퍼스 바닥과 건물 벽에는 철회를 촉구하는 문구가 스프레이로 적혀 있었고, 곳곳엔 대자보와 전단이 붙었다. X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엔 ‘#소멸할지언정_개방하지_않는다’란 태그를 단 시위 참여 인증샷도 줄줄이 올라왔다.

학생들은 이날 학과 수업을 전면 거부하는 등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날 오후 2시 30분쯤 운동장으로 집결한 500여 명의 재학생은 “철회하라”를 외치며 교직원들이 모인 건물로 향했다. 이들은 ‘학내 민주주의가 죽었다’는 의미로 검은색 옷을 맞춰 입었다. 이 과정에서 100주년 기념관 건물 안에 45분여간 갇힌 사무처장 등 교직원 일부가 112 감금 신고를 하면서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SNS엔 동덕여대에서 칼부림을 벌이겠다는 예고 글이 올라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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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여대 교문 앞 조용각 동덕여학단 이사장 흉상에 달걀·페인트이 뿌려져 있다. 김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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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위는 전날 학교에서 남녀공학 전환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학생들이 대거 반발하며 촉발됐다. 학생들은 남녀공학 전환 논의가 학생들과의 소통 없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점을 지적하며 밀실 논의가 아니냐는 입장이다. 이에 총학생회는 전날 오후 5시부터 총장실 점거에 들어간 데 이어 논의 철회를 요구하는 필리버스터를 진행 중이다. 이들은 “차별이 존재하는 한 안전한 논의의 장을 마련해주는 여대가 사라져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시위에 참가한 재학생 이모씨는 “과거 주요 사안마다 학교 측이 학생과 소통 없이 날치기 통과를 해왔다 보니, 서로 간 신뢰 부족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동덕여대 측은 이날 오전 김명애 총장 주재로 긴급회의를 열고 사태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대응책을 논의했다. 이 회의는 학생들의 소요 사태에 대비해 학교 외부에서 진행됐다.

학교 측은 이날 총장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지난 9월 말 중장기 대학발전계획을 수립하는 대학비전혁신추진단 회의에서 디자인 대학과 공연예술 대학의 발전 방안 가운데 공학전환 방안이 포함됐고, 이에 대해 의견수렴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됐다”며 “오늘(12일) 교무위원회를 열고 모든 구성원과의 의견 수렴 절차를 계획하려 했다”고 밝혔다.

이어 “공학 전환은 학교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없으며, 구성원들의 의견수렴과 소통은 필요한 절차”라며 “그러나 아직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았는데 폭력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 매우 비통하게 상각하며, 대학에선 본 사안에 대해 심각하게 바라보고 엄중한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대학의 남녀공학 전환은 교육 당국의 인가 없이 대학 자율로 결정 가능하다. 현재 전국 4년제 여대는 동덕여대·이화여대 등 총 7곳이다. 숙명여대는 모금 운동을 벌이고, 한양여대도 총학생회 명의의 지지 성명을 발표하는 등 다른 여대에서 동덕여대에 연대하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성신여대도 2025년부터 국제학부에 외국인 남학생을 모집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총학생회에서 서명 운동을 벌이는 등 반발하고 있다.

여대의 공학 전환은 최근 학령인구 감소로 신입생 모집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진 사회와 맞물린 이슈다. 앞서 2015년과 2018년에 각각 덕성여대·성신여대도 남녀공학 전환을 검토하다 대학 재학생과 동문회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학령인구 감소에 직격탄을 맞은 대학가에서 갈등이 잇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서 상명여대는 1996년 상명여대는 상명대로, 성심여대와 효성여대는 각각 가톨릭대와 대구가톨릭대로 통합되면서 공학으로 전환됐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 교수는 “인구 감소의 현실에 여대 경쟁력 등 운영상 어려움이 크다”며 “과거와 달리 오늘날 여성 교육기관으로서 존재 이유와 목표를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권김현영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기획연구위원은 “지방대 소멸 위기를 논하는 때에 수도권 여대의 공학 전환이 과연 생존 전략이 될 수 있을까 싶다”며 “오랜 기간 여성 교육 기관으로서 지켜온 여성 교육에 대한 철학과 프로세스를 유산으로 지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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