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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방점 잘못 찍은 “힘에 의한 평화”…“이러다 전쟁” 불안감만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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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얼음판 된 남북관계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을 관통하는 핵심 기조는 ‘힘에 의한 평화’이다.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북한의 위협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에 공을 들였다. 정부는 한·미가 ‘핵 기반 동맹’으로 격상됐다고 선언했다.

‘담대한 구상’ 등 강경책 일관
북 핵무기 고도화 명분 제공
한·미·일 ‘과속 밀착’도 패착
중·러에 북 가치만 높여놔

우크라에 살상무기 지원 땐
남북 ‘대리전’ 위험까지 초래

그러나 시민들은 “이러다 전쟁 나는 거 아니냐”며 불안감을 호소한다. 한반도가 핵과 핵이 대치하는 군비경쟁 장으로 전락하면서 ‘안보 딜레마’ 악순환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은 러시아와 군사동맹에 가까운 조약을 체결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1만여명을 파병했고,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 남북 대리전 위험성도 제기된다. ‘힘’만 남고 ‘평화’는 실종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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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넘볼 수 없도록 우리의 힘을 키우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유일한 길임은 인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10월1일 국군의날 행사 기념사)

대북 독자제재 21차례나 발표

“만약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기도한다면 우리 군과 한·미 동맹의 결연하고 압도적인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날이 바로 북한 정권의 종말이 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0월1일 ‘국군의날’ 기념사 중 한 대목이다. 이 문장엔 정부의 대북 인식이 응축돼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했다. 지난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을 “가짜 평화”라고 평가절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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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북한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도 대북 압박에 방점이 찍혔다. 강력한 한·미 동맹으로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고 대북 제재 등으로 핵 개발을 단념시켜서, 북한이 대화로 나올 수밖에 없는 전략적 여건을 조성한다는 내용이다. 한·미 정상은 지난해 4월 워싱턴 선언을 통해 확장억제 강화에 합의했다. 지난 7월에는 ‘한·미 핵억제 핵작전 지침’을 승인했다. 윤 대통령은 “한·미가 명실상부한 핵 기반 동맹으로 격상됐다”고 밝혔다. 대북 억제를 위해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이 재개됐고, 미국 전략자산이 여러 차례 한반도에 전개됐다. 윤 대통령은 미 핵추진항공모함 등에 직접 승선해 대북 경고 메시지를 발신하기도 했다. 이번 정부는 대북 독자제재를 21차례나 발표했다. 앞선 정부들이 발표한 독자제재는 총 5번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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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다스릴 수 있고 억제할 수 있는 강력한 힘으로 고수하는 평화만이 믿을 수 있고 안전하고 공고한 평화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10월31일 신형 ICBM 시험발사 지도 현장)

반면 북한을 향한 대화의 문은 사실상 걸어 잠갔다. 정부는 “북한과 언제든 대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행보는 북한을 굴복시키겠다는 쪽에 무게를 두면서 대화 의지가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 출범 후 남북 당국 간 대화·접촉은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남북 연락 채널 또한 모두 끊겼다. 게다가 정부는 지난 6월 남북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전면 정지했다. 우발적 충돌이 확전할 위험이 커진 것이다.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방관하는 사이 북한은 오물 풍선으로 맞대응했다. 남북이 “정권 종말” “온 족속이 괴멸” 등 거친 언사를 주고받으며 높아진 긴장은 만성화됐다.

정부의 대북 강경책에도 북한은 전술핵 탑재가 가능한 초대형 방사포, 극초음속미사일, 전략순항미사일 등 각종 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북한은 지난 10월31일에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9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북한은 “미국 주도의 동맹 관계가 핵에 기반해 그 본질과 성격이 변화했다”며 한·미의 핵 기반 동맹을 오히려 핵무력 증강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북한의 7차 핵실험설도 끊이질 않는다. 한반도에서 핵과 핵이 대치하는 형국인 셈이다.

미·일·중·러 담은 ‘외교 전략’ 부재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 합의로 대표되는 한·미·일 협력 강화에도 적극 동참했다. 한·미·일은 지난 6~7월 최초로 다영역 군사훈련을 실시한 데 이어 3국 군사협력을 제도화하는 ‘안보협력 프레임워크’도 체결했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협력은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정부가 가치외교라는 깃발 아래 급속도로 3국 협력에 올라타면서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국 및 러시아와 관계가 얼어붙은 것이다. 미국이 구상하는 3국 협력은 중·러를 압박·포위하는 성격이 강하다. 중·러가 한·미·일 밀착을 견제할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상승하는 역효과를 낳은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정부가 북한을 대화로 견인할 종합적인 환경 조성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전문가들은 꼬집는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정부 입장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대화로 나오게 만들거나 도발을 하지 않도록 견제·압박할 수 있는 카드”라며 “북한 문제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타협을 끌어내는 외교가 실종된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북·러 밀착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북·러 군사협력의 동력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미·일 군사협력이라는 것이다. 북·러 정상은 지난해 9월과 올 6월 정상회담을 개최한 뒤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했다. 지난달 들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가시화되기도 했다. 추후 북한이 파병의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ICBM 재진입과 핵추진잠수함 건조, 군사정찰위성 발사 등과 관련한 첨단 군사 기술 및 장비를 이전받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제성훈 한국외대 교수는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 또는 전략적 자율성을 심각하게 제한했다”며 “안보 딜레마를 심화하는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면서 국민의 안보 불안을 가중시켰다”고 말했다. 제 교수는 또 “한·미·일 협력에 대한 지나친 과신에 외교안보 정책의 기반을 두면서, 한반도 주변의 다른 강대국 간 갈등에 자진해서 적극 개입하고 남북 대결 구도까지 심화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은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북한과 대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이 북·미 사이서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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