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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삶] "누굴 유혹하려 짧은치마냐? 넌 처맞아야"…남친문자 하루 400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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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귀 못알아듣는데 도대체 아이큐 얼마냐", "얼굴엔 선크림만 발라라"

교제폭력, 전문가와 조기 상담해야…김도연 데이트폭력연구소장 인터뷰

[※ 편집자 주=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장의 인터뷰 기사는 세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이번 기사는 첫 번째로, 교제 폭력 중에서 생활 통제와 정서적 폭력을 주로 다뤘습니다. 다음 주 초에 나가는 두 번째 기사는 살인과 성폭력 등의 물리적 폭력, 그다음 주 초의 세 번째 기사는 구조적 문제와 해결 방안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삶]은 자서전적 인터뷰여서 성장기 스토리와 개인의 사생활, 개인 사진 등이 많이 들어갑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장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촬영]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너 같은 사람은 기생충이야", "너는 도대체 아이큐가 얼마냐",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냐", "너는 처맞아야 정신 차린다", "네 주제에 어디서 나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니", "저번에 보니까 너의 부모도 가방끈이 짧은 것 같더라", "네가 그런 가정에서 자랐으니 뭘 제대로 배웠겠냐", "입술은 누굴 유혹하려고 진하게 칠했냐", "긴 치마도 안되고 바지만 입고 다녀라."

이는 교제 폭력 중 생활 통제와 정서적 폭력 내용들이다.

김도연(54)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장은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교제 폭력 가해자들은 심각한 수준의 모든 욕설을 다 한다"면서 "연인에게 10시간 동안 전화와 문자 메시지로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는 "욕설 문자가 하루에 200통은 기본이고 300∼400통에 이르기도 한다"면서 "부재중 전화도 수백통씩 쌓이니 피해자의 생활이 마비된다"고 했다.

김 소장은 "이런 생활 통제와 정서적 폭력이 나타나면 하지 말라고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하고, 고쳐지지 않으면 빨리 헤어져야 한다"면서 "연인이 또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도 흔들리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이별 과정은 쉽지 않기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알리고 전문가와 상담하는 게 좋다"면서 "생활 통제와 정서적 폭력 단계에서 빨리 헤어지지 못하면 살인을 포함한 물리적 폭력을 당할 수도 있다"고 했다.

1970년 인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한 김 소장은 대학 학부에서 심리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는 임상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2014년 한국청소년자살예방협회를 창립해 정서적으로 힘든 청소년들을 도왔다. 2016년에는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를 만들어 교제 폭력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지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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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시절 김도연 소장과 외할머니
[본인 제공]


-- 고향은 어디인가.

▲ 인천에서 태어났다. 세상에 나온 지 100일도 안 돼서 외할머니가 데리고 가서 키웠다. 외갓집도 인천에 있었다.

-- 왜 외갓집에서 살았나.

▲ 어머니에게 우울증이 있었다. 사흘간 진통 끝에 출산하셨는데 병약한 상태에서 산후 우울증이 온 듯하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만 나를 데리고 있겠다고 하셨는데, 결국 그 기간이 나의 성장기 전체가 됐다. 남동생은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 성장기에 어머니를 자주 봤나.

▲ 엄마는 친정에 자주 오셔서 나를 보고 가시곤 했다. 나를 보러 올 때마다 잘해주셨다. 항상 칭찬해주시고, 어떤 말이든 경청해주셨다. 예쁜 옷과 신발을 사 오셨고, 사진도 많이 찍어줬다. 엄마와 떨어져 살아도 나는 중요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운동회를 비롯한 학교 행사에도 다른 일을 제쳐두고 오셨다. 작은 추억이라도 만들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

--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실 때 같이 가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태어나자마자 외갓집으로 왔으니 외할머니한테 단단하게 애착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 어머니로서는 자식을 직접 키우지 못해 많이 속상했을 듯하다.

▲ 엄마는 내가 부모와 떨어져 자라게 된 것에 대해 늘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20대로 성장한 나에게 엄마는 "너는 아픈 손가락이어서 더 애틋하고 사랑을 많이 주고 싶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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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에서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한 어린 시절 김도연 소장
[본인 제공


-- 성장기에 아버지는 가끔 만났나.

▲ 아버지는 내성적인 분이었다. 내 친구가 우리 집에 와서 "아빠가 밖에 와 있으니 나가보라'고 전해주곤 했다. 나가보면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셨다. 나란히 앉아 있는데,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대부분의 아버지는 오랜만에 자식을 만나면 다정한 말투로 "어떻게 지내느냐", "힘든 일은 없느냐"고 물어보는데 나의 아버지는 그냥 가만히 옆에 앉아 계셨다. 나도 내향적인 성격이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가끔 선물을 주고 가셨는데 유난히 기억나는 것은 빨간 스케이트였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스케이트를 직접 신겨주시면서 지긋이 나를 쳐다보셨다. 나는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아버지는 왜 처가에 들어오지 않고 문밖에서 딸을 만났나.

▲ 외할머니가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결혼도 반대하셨다. 본인의 딸이 고생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가난한 집의 차남이었는데, 형제들이 많았기에 할머니가 그렇게 생각하신 듯하다. 어머니는 본인의 뜻을 굽히지 않고 결혼했고, 그 결과는 할머니의 예상대로였다. 외가는 어머니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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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소장의 외할머니가 경찰관으로 일할 때 모습(오른쪽 정복차림,왼쪽은 동료)
[본인 제공]


-- 아버지가 경제력이 없었나.

▲ 아버지는 회사원이었는데, 월급을 받아도 친가에 도움을 줘야 했다. 게다가 아버지는 음악을 좋아했고 술을 많이 드셨다. 이러니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다.

-- 결혼 후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는 어떠했나.

▲ 어머니는 여리고 섬세한 성격이었다. 시 쓰는 것을 좋아하고 잘해서 지자체가 주최하는 문학 행사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어머니는 풍부한 사랑이 필요한 분인데,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말이 없었다. 어머니가 외로움을 많이 느꼈고 힘들어하셨다.

-- 외갓집의 가정 형편은 어떠했나.

▲ 외할머니 쪽으로 윗대부터 부자였다. 나는 성장기에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할머니의 사랑도 많이 받았다. 남동생이 "나도 누나처럼 외할머니와 함께 살면 안 될까?"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동생은 어린 마음에 나를 부러워한 것인데, 반대로 나는 외로움을 느꼈다.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고 가는 아이들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어떤 분인가.

▲ 두 분 모두 경찰관이었다. 외할머니는 외향적인 성향인 데다 리더십이 뛰어나서 퇴직 경찰관들의 친목 단체인 경우회(인천지역) 회장을 맡으셨다. 외할머니는 이 단체를 통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셨는데, 나를 데리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늦가을에는 집 마당에 배추 수백 포기를 쌓아놓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김장했다. 동네의 취약 계층에 나눠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타인을 사랑하고, 협업하고, 앞장서서 이끌어가는 것을 배웠다. 여성도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 본인은 사람들을 돕는 심리 전문가가 됐는데, 할머니의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 하나.

▲ 중고교 학창 시절부터 나는 외로운 친구들을 돕는 것을 좋아했다. 고민 상담도 많이 해줬다.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니 많은 아이가 나를 찾아왔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교제 폭력 피해자에 대한 상담과 지원은 이런 연장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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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前) 연인 가족 살해 이석준 검찰 송치
한때 교제했던 여성의 집을 찾아가 가족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이석준이 2021년 12월 17일 오전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 교제 폭력이란 무엇인가.

▲ 교제 시작 단계, 교제 중, 이별 후에 발생하는 모든 폭력을 말한다. 심리적, 정서적, 언어적, 물리적, 경제적 폭력 등으로 나눌 수 있다.

-- '데이트 폭력'이라는 말 대신에 갈수록 '교제 폭력'을 사용하는 추세인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 현재의 연인 또는 과거에 연인이었던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심각한 경우가 많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면서 강도가 점점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런 폭력성이 '데이트'라는 단어가 갖는 낭만적 이미지 때문에 희석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여성가족부와 경찰은 2022년부터 '데이트 폭력' 대신에 '교제 폭력'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나도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라는 명칭을 '한국교제폭력연구소'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 연간 교제 폭력 신고 건수가 작년에 7만7천건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훨씬 많이 일어나고 있나.

▲ 신고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교제 폭력은 연간 40만∼50만건 정도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하루에 1천건 정도다. 신고율은 20% 미만일 것으로 생각한다.

--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는 이유는.

▲ 가해자가 사랑하는 사람 또는 사랑했던 사람이기도 하고, 보복을 당할 수도 있어서 신고를 꺼린다.

-- 작년 교제 폭력 신고 건수는 2020년의 4만9천건보다 50% 증가했다고 하는데, 교제 폭력 자체가 늘어나고 있다고 봐야 하나.

▲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 과거 보다 교제 폭력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서 신고가 늘어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비해 비혼과 미혼, 이혼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과거의 가정 폭력이 이제는 교제 폭력으로 분류되는 측면도 있다. 한편으로는 과거보다 사람들이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기 욕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는데, 이는 교제 폭력이 늘어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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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 의심' 여친 살해 50대 영장심사 출석
외도를 의심해 말다툼을 벌이다 여자친구를 살해한 50대 남성이 2024년 5월 2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 출석을 위해 청주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 교제 폭력의 첫 번째 단계가 연인의 생활을 통제하는 것인가.

▲ 생활 통제 대상은 옷차림, 화장, 머리모양, 말투, 휴대전화, 이메일, 사람과의 관계 등 다양하다. 피해자가 불편하다고 말해도 가해자는 계속 지적하고 압박한다. 이런 통제가 지속되면 피해자는 불안과 우울증을 겪고, 헤어진 이후에도 심한 트라우마로 고통받는다. 선진국에서는 이를 강압적 통제로 규정하고 처벌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가중 처벌의 요인이 된다.

-- 옷차림 통제 내용은 뭔가.

▲ 짧은 치마 대신에 긴 치마를 입으라고 한다. 치마의 색깔은 검정, 회색, 흰색으로 제한한다. 눈에 띄지 않는 색깔로 입으라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치마는 무조건 안 되고, 바지만 입으라고 한다.

-- 왜 치마를 못 입게 하나.

▲ 다른 사람이 자기 연인의 다리를 쳐다보는 게 싫기 때문이라고 한다.

-- 얼굴 화장 통제 내용은 뭔가.

▲ 화려하게 화장하지 말라고 한다. 얼굴 화장 중에 아이브로, 볼 터치, 마스카라, 립스틱 등 어떤 것이 가능한지 지정해주는 사람도 있다. 립스틱의 색깔이 진하면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누굴 유혹하려고?"라고 하면서 화를 낸다. 아예 화장 자체가 안되고 선크림이나 비비크림만 허용하는 남자도 있다. 비비크림은 얼굴색을 약간 밝게 하는 기초 화장품이다. 이러니 연인한테 이건 되는지 하나하나 물어보면서 화장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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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 폭력 피해자들 대상으로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김도연 소장
[본인 제공]


-- 언어적 폭력의 내용은 무엇인가.

▲ 욕설, 협박, 비하 등이다. 인권과 자존감을 깎아내린다. "너는 왜 이렇게 못생겼냐?", "너는 뇌가 없냐",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너처럼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을 어디서 만나느냐", "네 부모님이 너 같아서 너의 집이 그 모양이다", "당장 전화하지 않으면 너 죽이고 나도 죽는다" 등 욕설과 협박을 마구 한다.

-- 1시간 동안 욕설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10시간 동안 문자 보내고, 전화하고, 욕하는 사람도 있다. 하루에 문자 메시지 200통은 기본이다. 300∼400통이 오기도 한다. 부재중 전화는 하루에 수백통씩 쌓인다. 이러니 피해자 일상이 마비된다. 어떤 가해자는 상대방을 앉혀놓고 하루 종일 욕하고 협박하고 회유한다. 가스라이팅도 한다. "네가 문제이고 네가 잘못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말한다. 자기의 자취방 등에 감금하는 일도 있다. 피해자는 공포감에 사로잡히고 판단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런 일은 교제 폭력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 가해자가 마구 문자를 보내면 전화기를 꺼놓으면 되지 않나.

▲ 그러면 상대방이 더욱 흥분해서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회사 또는 집으로 찾아오거나 심지어 부모님 집으로 들이닥치기도 한다.

-- 길거리에서 폭언 등을 하는 사람도 있나.

▲ 어떤 여성은 길가에 서서 8시간 동안 그런 욕설을 듣고 있었다. 참다못한 그 여성은 행인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가해자는 "우리는 연인인데 그냥 좀 싸우고 있으니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가시라"고 한다. 행인이 이런 말을 들으면 신고하기 어렵다. 잠깐 그 장면을 본 것이기에 그 상황이 얼마나 지속됐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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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당, 교제폭력 가중처벌 촉구
인천 스토킹 살인 2심 선고일인 2024년 7월 17일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여성의당과 유가족이 교제폭력범죄 법정형 상향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 경제적 착취도 교제 폭력이라고 하는데, 그 구체적 내용은 뭔가.

▲ 돈을 꿔달라고 하고는 갚지 않는다. 신용카드를 달라고 해서 자기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그 금액이 처음에는 몇십만원으로 시작해서 수백만 원이 되고, 나중에는 수억 원으로 불어난다. 대출뿐 아니라 사채를 끌어다가 돈을 주는 사람도 있다.

-- 연인에게 왜 그렇게 많은 돈을 주나.

▲ 사랑하는 사람이 "빨리 빚을 갚아야 한다", "가게를 내야 한다", "우리 집에 문제가 생겨서 혼자 살 방을 구해야 한다"고 하면서 돈을 요구한다. 피해자가 어렵다고 하면 "내가 지금 형편도 어려운데 좀 도와줘라. 1년이면 크게 일어날 수 있어. 그러면 너는 직장 안 다녀도 돼. 그때 우리 결혼하자"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매달리면 외면하기 어렵다.

-- 피해자 부모님들은 이런 일을 모르나.

▲ 20대, 30대의 경우 부모님들이 신용카드 명세서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되는 일이 있다. 당연히 난리가 난다. 어렵게 부모 도움으로 헤어져도 빌려준 돈을 받기 어렵다. 빚더미에 앉게 되는 것이다. 경제적 착취는 30대 이하의 젊은 층보다는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에서 더 많이 일어난다. 가진 돈이 더 많기 때문이다.

-- 연인한테 경제적 착취를 당한 사람도 트라우마를 겪나.

▲ 인생이 다 꺼져버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누구도 만나려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 연인을 선택한다면 1순위로 보는 것이 상대방의 경제적 안정이다. 그들에게 연인의 외모나 스펙은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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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 폭력 상담 전문가 양성 교육을 하는 김도연 소장
[본인 제공]


-- 생활 통제, 정서적 폭력을 겪으면 바로 헤어지면 될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못하나.

▲ 생활 통제 단계에서 헤어지기가 어렵다. 짧은 치마를 입지 말라는 것은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어폭력을 비롯한 정서적 폭력 단계에서도 이별하기가 쉽지 않다. 가해자가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을 거다", "정말로 사랑한다", "한 번만 기회를 달라" 등의 말을 하면서 용서를 빌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연인에게 아직 사랑과 연민이 있고, 자신이 아니면 그 사람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흔들린다. 이런 식으로 정서적 폭력과 용서가 반복되고, 이는 물리적 폭력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가해자는 사과→애걸→맹세→협박→살인 등의 단계를 밟을 수 있다.

-- 연인으로부터 생활 통제, 정서적 폭력을 받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그렇게 하지 말라고 단호히 말해야 한다. 그런 행위가 불편하다고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런데도 고치지 않으면 빨리 헤어지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물리적 폭력단계로 넘어가면 훨씬 위험해진다.

-- 이별하는 것도 쉽지 않을 듯한데, 어떻게 해야 하나.

▲ 어려운 일이다. 상대방이 집착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혼자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전문가를 찾아 상담하는 게 좋다.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갑자기 피해를 볼 수 있으니 상황을 알고 있어야 한다.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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