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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수)

“이러다간 또 탄핵?”…이철희가 말하는 ‘성공한 탄핵’ vs ‘실패한 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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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운명 가르는 결정적 차이엔 ‘국민 의사’

“탄핵, 조심스럽고 절제된 방식으로 추진돼야”

동아일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운데)가 9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제2차 국민행동의 날’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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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이대로 못 살겠다’ 아우성인데, 국정농단 권력놀음에 취한 저들은 ‘이대로 영원히’를 외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9일 오후 6시 반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원내대표는 “촛불혁명으로 불의한 권력을 끌어내린 저력 있는 민주시민”이라며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행동하는 양심으로, 김건희 왕국을 끝장내자”라고 덧붙였다.

이 자리는 민주당 주도의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국민행동의 날’ 2차 집회였다.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까지 야5당이 함께 했다. 이날 오후 서울 도심에선 대규모 반(反) 윤석열 대통령 집회가 잇달아 열렸다. 앞서 오후 4시 세종대로 일대에선 민주노총 등이 참여한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가 ‘윤석열 정권 퇴진 1차 총궐기’를 열고 윤 대통령 퇴진 요구를 본격화했다.

소수 야당인 조국혁신당은 윤 대통령 탄핵을 공개적으로 외치고 있지만, 제1야당인 민주당은 아직 그와 같은 구호를 공식적으로 꺼내들진 않았다. 하지만 ‘탄핵’ ‘하야’ ‘임기단축’ 등 꽃놀이패를 들고 사실상 ‘정권 퇴진 운동’을 개시했다는 시각이 많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겪은 지 불과 7년, 국민들은 지지에서든, 우려에서든 “이러다가 또 탄핵 국면이 올 수 있다”라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이철희는 6일 펴낸 책 ‘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메디치)에서 “그가 하는 꼴을 보자니 탄핵만이 답인 듯 싶다”라고 운을 뗐다. 4월 총선 결과나 여론조사 지지율이 ‘바뀌라’라고 명령해도 ‘쇠귀에 경 읽기’ 하는 듯한 윤 대통령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자니 걸리는 게 적지 않단다. 무엇보다 아직 딱 부러지는 사유가 없고, 탄핵을 통해 얻게 될 결과도 마뜩하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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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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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진퇴양난이다. 딜레마에 빠져있다. 탄핵으로 나아가기도 부담스럽고, 탄핵을 접고 물러서기도 마땅찮다. (중략)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상황을 계속 방치할 순 없으니 국민으로선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 전 수석은 ‘합리적인 정치 논객’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탄핵의 정치학’이란 부제가 붙은 그의 책은 이런 딜레마 상황에 대한 차분한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 이 전 수석이 책 전반에서 강조하는 것은 ‘탄핵 제도는 본질적으로 정치적 절차이자 현상’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탄핵할 사유가 되느냐”, “탄핵할 만큼 그 사유가 무겁느냐”로만 접근한다. 그러나 국내외에서 대통령의 운명을 가른 사례들을 보면 탄핵 사유의 경중보다는 대중적 요구나 의회의 구도와 같은 정치적 맥락이 더 중요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 “탄핵 제도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탄핵을 시도하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아래와 같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만 규정돼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65조 ①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이 전 수석은 “탄핵 사유가 얼마나 헌법에 규정된 사유에 근접하는지에 대한 법적 평가와 더불어 얼마나 대중적 신뢰를 얻고 있느냐는 정치적 평가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 탄핵심판을 하는 헌법재판소는 법 위반 정도의 중대성을 따지게 된다. 이 전 수석은 여기서 탄핵 제도의 정치적 속성을 길어낸다.

“그 ‘중대성’을 확증하는 정량적 기준이 사실상 없다 보니, 정성적인 측면, 예컨대 국민의 안정적·초당적 지지 여부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국민이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했으므로 그를 부정하는 결정은 마땅히 국민의 뜻을 절대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꼭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탄핵은 정치적 동기에서 추진된다는 게 이 전 수석의 지적이다. 다만 국민의 지지나 저항과 같은 집단적인 정치적 이성이 발휘되며 그 시도의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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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수석은 여기서 ‘실패한 탄핵’과 ‘성공한 탄핵’을 결정짓는 다음의 체크리스트를 끌어낸다. 탄핵의 시발점이 되는 스캔들, 의회의 당파적 배열, 여당 또는 집권 연합의 분파적 배열, 대통령 리더십, 대중여론 등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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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의 당파적 탄핵이 실패로 귀결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와 ‘촛불 혁명’으로 명명되며 결국 헌재의 파면 결정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례를 대입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 “탄핵의 성패는 대중의 동의 획득에 달렸다”

이 전 수석은 “탄핵이 최고의 화풀이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라며 현재의 정치 상황을 개탄한다. “공직자가 중대한 잘못을 저질러 그 자리에 계속 두기 어려울 때 동원될 수 있는 장치로 고안된 것이 탄핵”인데 “지금은 적대적인 인물이나 미운 사람을 제거하는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탄핵 제도가 되레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현실을 말한다.

그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삼권분립의 작동 원리를 흔들며 대통령은 ‘전횡의 유혹’을, 국회는 ‘탄핵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 전 수석은 우선 “대통령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꼭 필요한 규범이 제도적 자제”라는 점을 짚었다.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 시도에 맞닥뜨린 출발점도 “두 대통령은 자제하지 않고 국회와 대립함으로써 탄핵 시도를 불러오기 좋은 지형을 조성하는 우”를 범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국회도 탄핵권을 남용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전 수석은 “탄핵 정치는 찬반의 진영 대결을 낳게 되고, 사회의 중요한 균열과 어젠다를 외면하게 만들고, 정서적 양극화를 낳는다”면서 “민주적 정당성을 부정할 만큼의 명백하고 직접적인 위법행위가 있을 때만 탄핵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을) 그 자리에 계속 두기 어렵다’라는 판단은 결국 어디에 근거해야 하는 것인가. 이 전 수석은 ‘국민의 의사’(‘민심의 파도’, ‘대중적 호응’, ‘사회적 저항’ ‘국민 신임’ 등으로 표현)라고 짚었다. 그는 “노무현 탄핵은 야당 연합에 의해 추동됐지만 광장의 지원을 받지 못해 당파적 연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또 “박근혜 탄핵에선 광장의 주도 하에 폭넓은 탄핵 연합이 구성된 반면 반탄핵 연합은 미미했다”라고 했다.

특히 2024년 11월 현재의 ‘탄핵 딜레마’ 상황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는 좀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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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1월 대구 달성군 유가읍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아 박 전 대통령과 환담 후 정원을 산책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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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수석은 “탄핵은 정당들로 구성된 의회의 권한이기 때문에 탄핵의 정당성은 초당파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 초당파성을 가늠하는 지표 중 하나가 여당 또는 그 일부의 지지 여부”라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 때는 탄핵을 계기로 달라진 국회의 지형 변화(2016, 2017년 당시 김무성, 유승민 의원의 새누리당 탈당 및 바른정당 창당)가 박근혜 탄핵의 정당성, 대중성을 확인해주는 지표였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탄핵 때에는 볼 수 없었던 여권의 분열이 있었다는 점이다.

“탄핵이 정치적 과정이기 때문에 선거나 정치 지형 변화 등을 통해 확인되는 국민 의사는 탄핵 과정(국회 내 탄핵소추안 발의~헌재의 탄핵심판)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탄핵의 성패는 탄핵 프레임이 대중의 동의를 획득하는지에 달려 있는데, 박근혜 탄핵은 당파적 갈등을 넘어서는 대중적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

결국 한국의 두 차례 탄핵에서 헌재도 국민 의사를 신중하게 살펴 결론을 내렸다. “‘당파적 탄핵’은 기각하고, ‘대중적 탄핵’은 인용”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어떻게 흐를지 알 수 없는 앞으로의 정치적 국면에서 이 전 수석의 통찰은 떠올려 볼 대목이다.

● “탄핵은 만능도 아니고, 전가의 보도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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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탄핵의 정치학’(메디치, 6일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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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수석은 노무현, 박근혜 탄핵 사례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모순적 사실을 확인시켰다고 했다. 하나는 탄핵이란 헌법적 처방을 통해 대통령제의 병폐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만큼 한국 민주주의가 공고해졌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탄핵이란 극단적 조치가 권력투쟁 수단으로 동원될 만큼 대통령도, 국회도 권력을 절제할 줄 모른다는 점이다.

“대통령 견제 수단으로서 탄핵은 만능도 아니고, 전가의 보도도 아니다. 탄핵 제도는 아주 예외적인 비행이나 범죄에만 조심스레 사용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일 뿐이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탄핵소추권의 남용, 탄핵의 일상화가 새로운 정치 현상이 됐다고 이 전 수석은 진단하다. 하지만 ‘탄핵 정치’는 사회를 더 양극화시키고, 황폐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그는 “대통령의 권한 남용이 독이듯, 의회의 탄핵권 남용도 독”이라고 결론 짓는다.

이 전 수석은 그럼에도 당부한다. 탄핵이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탄핵의 빌미는 대통령이 제공한다!’ 또 ‘대통령 권력이 제일 세다!’ 따라서 대통령이 절제하고 인내해야 한다. 그것이 의회의 탄핵권 남용을 제어하는 가장 강력한 방안이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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