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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美 대선의 노스트라다무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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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美 대선 트럼프 승리

선거 예측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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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플로리다의 웨스트팜비치 컨벤션센터에 몰려든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지지자들이 6일 새벽 트럼프 당선을 확정하는 폭스뉴스 보도에 환호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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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누가 잡을 것인가. 누가 우리의 지도자가 돼 어느 집단에 더 많은 자원을 나눠줄 것인가. 인간 사회에서 가장 결정적이고 흥미로운 문제다.

권력의 향배를 가늠하기 위해 인류는 많은 시도를 해왔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선 양의 창자를 잘라 피가 떨어지는 모양을 살펴 전쟁 승패를 예측했고, 중세 유럽에선 수정구슬에 비친 미래 왕의 얼굴을 보고자 했다. 지금도 선거철이 되면 공식적으론 여론조사가 돌아가지만, 지하 세계에선 용하다는 점집이 붐빈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지난 5일 치러졌다. 막판까지 접전과 혼전, 팽배한 갈등으로 점철된 역대급 안갯속 선거였다. 각국은 카멀라 해리스와 도널드 트럼프 각각의 승리를 가정한 대비책을 마련했고, 판돈을 건 대선 베팅 사이트가 실시간 널을 뛰었다.

지진 예측 모델로 대선을?

그런데 선거 반년 전부터 해리스가 당선될 것이라고 주장한 이가 있다. ‘미국 대선의 노스트라다무스’라 불린 앨런 릭트먼(77) 아메리칸대 역사학과 교수다. 그는 앞서 1984년부터 2020년 대선까지 10번의 대선 중 9번을 맞혀 승률 90%를 자랑했지만, 2024년 대선 예측이 틀리면서 승률은 82%로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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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부터 2020년까지 10번의 미 대선 중 9번의 결과를 미리 맞춘 앨런 릭트먼 아메리칸대 교수가 지난 9월 "카멀라 해리스가 당선된다"고 밝히는 모습. 이유는 '바이든 정권이 큰 실수를 하지 않아 안정적이고 여권 내 장악력이 강하다'는 것으로, 야당 후보 트럼프 변수는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결국 이 예측은 틀렸다. 릭트먼의 평가 지표 자체가 주관적이어서 과학이라 부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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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트라다무스는 이전엔 어떻게 맞았고, 올해는 왜 틀렸을까. 릭트먼은 계량 정치역사학 전공자다. 대선은 역사를 빅데이터화해 특정한 패턴을 찾아내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과학이라고 해왔다.

모델도 매우 단순하다. ‘대권 13개 열쇠(13 Keys to the White House)’ 항목 중 ‘아니다(False)’가 6개 이상이면 여당 후보가 패배한다는 것이다.<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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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릭트먼 미 아메리칸대 교수의 대선 예측 13개 지표. 철저히 현 집권 여당의 국정 장악력과 지속성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래픽=송윤혜


이 모델에서 해리스는 13개 항목 중 8개에서 유리한 점수를 받았다. ▶해리스를 여당 후보로 정할 때 당내 중대한 도전자가 없었고(2번) ▶유력한 제3의 후보가 나타나지 않았으며(4번) ▶미 경제가 3분기 GDP 성장률 2.8%에 실업률 4.1%로 양호하고(5번) ▶바이든 정부가 이전 트럼프 정부와 완전히 다른 정책을 펼쳤고(7번) ▶수백만 명이 거리에 나설 정도의 큰 사회적 소요가 없었으며(8번) ▶현직 대통령이 연루된 심각한 부패 스캔들이 없고(9번) ▶현 정부가 외교·군사적으로 중대한 실수를 하지 않았으며(10번) ▶야당 후보가 국민적 영웅이거나 정당을 초월한 카리스마를 가지지 못했다(13번)는 점이다.

이에 근거해 릭트먼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치매설 등으로 트럼프에게 여론 지지율이 크게 뒤지던 5월 “바이든이 11월 재선에 성공한다”고 했다. 바이든이 사퇴한 7월 말에도 “여당 후보가 당선된다는 상황에 변함이 없다”고 했고, 선거 전날에도 “해리스가 승리할 것”이라고 확언했다.

선거, 과학인 듯 과학 아닌

릭트먼은 이 모델을 러시아 지진학자인 블라디미르 케일리스-보록과 함께 개발해 1982년 발표했다. 케일리스-보록은 지표면 이동과 지하 압력 변화 등 전조를 감지해 지진을 예측하는 기법을 적용해 민주주의 선거 예측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소련 일당독재 아래선 적용이 어렵다며 뉴욕 출신 정치사학자인 릭트먼에게 협업을 요청했다.

이들은 미국에서 양당제가 정착되고서 치러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배출한 1860년의 대선 이래 120년의 패턴을 연구해 여당 재집권 여부를 가늠하는 공식을 도출했다.

이 모델은 1984년 대선부터 거의 내리 맞았다. 전설이 된 건 1988년 조지 H W 부시가 마이클 듀카키스에게 지지율에서 크게 뒤지는데도 당선을 맞히고, 2016년 모든 여론조사와 판세 분석이 힐러리 클린턴을 가리킬 때 유일하게 트럼프 당선을 예측한 점이다. 릭트먼은 코로나로 경제가 붕괴된 2020년 대선에선 “트럼프가 7개 문항에서 불리, 백악관을 떠나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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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정치 신인 도널드 트럼프가 맞붙은 2016년 미국 대선. 모두가 클린턴이 이길 것이라고 했지만 앨런 릭트먼 등 극소수만이 트럼프 당선을 예견, 여론조사 무용론이 나오면서, 다양한 선거 예측 모델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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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대선에선 틀렸다. 당선자로 점찍은 앨 고어가 전체 득표수에서 앞선 상황에서, 마지막 플로리다 재검표를 보수 성향 연방대법원이 중단시키며 조지 W 부시가 판정승을 거둔 것. 당시 릭트먼은 “투표 결과가 왜곡된 ‘도둑맞은 선거’로, 내 예측은 맞았다”고 했다.

릭트먼 예측 모델의 13개 평가 항목은 철저히 ‘현 정부 여당의 국정 장악력이 강한가, 국민이 편하게 먹고살 만한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릭트먼 교수는 “미 유권자는 똑똑하고 실용적이어서 여당이 일을 잘하면 재집권 기회를 주고, 그렇지 않으면 지지 정당을 바꾼다”며 “재집권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대통령이 잘 다스리는 것(govern well)”이라고 해왔다.

그러나 13개 항목엔 참과 거짓을 딱 떨어지게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계속되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의 외교·군사적 실패가 아닌지, 바이든의 치매 의혹이나 차남 문제가 중대한 스캔들이 아닌지, 트럼프의 인기를 국민적 카리스마로 볼 수 없는지 등이다. “판단 지표가 릭트먼의 주관에 좌우되는 유사 과학”(여론분석 전문가 네이트 실버)이란 비판이 있다.

선거 당일 CNN 출구 조사에서 유권자 58%가 “바이든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는 결정적 경제·사회적 위기가 없어도 정권에 대한 불만과 피로감이 클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지속하는 고물가와 빈부격차, 불법 이민자 급증과 마약 남용을 위기 요인으로 짚어내지 못한 것도 패착일 수 있다.

릭트먼 모델은 여론조사 추이, 야당 공약·메시지의 파괴력이나 양당 자금 조달 규모, 변화하는 인구 구성도 고려하지 않는다.

트럼프에 대한 총격 시도와 민주당의 뒤늦은 후보 교체 같은 막판 대형 변수, 해리스의 과거 사생활 논란, 힐러리도 넘지 못한 ‘여성 대통령’에 대한 심리적 장벽, 그리고 각종 사법 의혹에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분노와 결속력 등에 대한 정성 평가도 불가능하다. “정권의 안정성·연속성만 따지는 릭트먼 모델은 미국의 급변하는 극단적 정치 환경에 적용하기엔 수명이 다했다”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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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대통령 선거 개표가 진행되고 있는 6일 오후(한국 시각)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에서 딜러들이 개표 상황을 주시하며 업무를 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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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선은 예측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한국엔 이렇다 할 선거 예측 모델이 없다. 여론조사에 근거한 판세 분석만 가능하다. 특히 미국에선 경합주 등 핵심 지역이나 유권자별 가중치를 둬 여론 분석하는 기법이 광범위하게 활용되지만, 한국은 이런 가중치 부여를 여론 조작으로 간주해 법으로 금지한다. 선거 전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도 길다.

민주화 이래 누적된 몇 개의 선거 경험칙은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연대 필승론, “중원(이념적 중도 혹은 충청도)을 잡아야 한다” “투표율이 높으면 진보 정당에 유리하다”는 속설이 대표적이다.

“대선 1년 전 1위는 당선 안 된다”거나 “새로운 시대정신을 내세워야 한다” “구글 트렌드에 많이 언급되면 당선된다”는 말도 있다. 모두 변수와 예외가 많아 법칙으로 부르기엔 미흡하다.

‘여당 업적 평가’에 기초한 릭트먼 모델을 한국 모델에 적용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어렵다고 한다. “한국은 ‘바람’이 선거를 좌지우지한다”(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지적처럼, 후보의 도덕성 의혹이나 발언 논란 등 막판 인적 변수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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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 투표가 끝난 3월9일 서울 중구구민회관에 설치된 개표소에서 투표함이 열리고 있다. 한국에는 여론조사 기법도 미국처럼 자유롭게 발달돼있지 않으며, 이렇다할 선거 예측 모델도 없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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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지지율이 높다고 정권 재창출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임기 말 국정 긍정 평가가 김대중 전 대통령 33%, 이명박 전 대통령 25%일 때 여당 후보가 당선됐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은 긍정 평가가 35%였는데도 정권을 내줬다.

무엇보다 우리는 선거 때마다 ‘새 인물’과 쇄신에 대한 요구가 더 크다는 점에서, 정권 연속성에 중심을 둔 릭트먼 모델이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링컨은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도는 스스로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했다. 좋은 선거 예측 모델을 찾는 것보다, 좋은 통치를 하는 것, 통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다. 뻔해 보이지만 부인할 수 없는 법칙이다.

[정시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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