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09 (토)

[사설] ‘약육강식의 정글’ 노골화할 트럼프 2기 국제질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미국우선주의·신고립주의 흐름 더 거세지고





우방도 돈으로 저울질, 한·미동맹 풍파 우려





‘트럼프 리스크’ 활용할 역발상 잘 궁리해야



2016년 미국을 휩쓸었던 ‘트럼프 현상’은 일회성이 아니었다. 4년을 건너뛰어 트럼프가 돌아왔다. 그가 제기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는 구호는 이번 대선에서 더 넓고 깊게 먹혔다.

트럼프 현상은 미국 내 영향에만 그치지 않고 전 지구촌을 강타할 초대형 글로벌 태풍이다. 전임 정부들이 납세자의 돈을 지구촌 평화와 질서를 지키는 데 펑펑 써왔다고 비판하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미국 국민 다수가 공감·지지한다는 사실이 이번 선거에서 드러났다. 트럼프 2기에는 미국이 ‘세계 경찰국가’ 역할을 비롯해 기존 국제질서의 버팀목인 안전 보장과 자유무역이라는 공공재를 대폭 축소하는 방향으로 갈 우려가 커졌다.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인 로버트 케이건 박사가 『밀림의 귀환(The Jungle Grows Back)』에서 비유적으로 묘사한 대로 2차 세계 대전 이후 지난 70여년간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잘 가꿔진 정원 같았다. 하지만 ‘트럼프주의’에 따라 미국이 떠나려 하면서 정원은 넝쿨과 잡초로 뒤덮일 위험에 처했다. 지구촌에서 진행 중인 전쟁과 강력한 보호무역 흐름에서 보듯 국제사회는 적자생존(適者生存)과 각자도생(各自圖生)이 판치는 밀림으로 바뀌고 있다. 해리스 후보를 지지해온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예상하면서 “트럼프의 승리로 2차 대전 이후 ‘미국 리더십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고 진단했다.

종전 압력에 직면한 우크라이나가 트럼프 2기의 첫 시험대에 오를 상황이다.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윤석열 정부가 우크라이나 지원 카드를 신중하게 다뤄야 하는 이유다. 트럼프 당선인의 신고립주의 노선에 따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한 미국의 안보 공약이 약해지고 나토 회원국들의 방위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동맹을 경시하고 돈으로 저울질하는 트럼프의 태도 때문에 한·미 동맹에도 적잖은 풍파가 우려된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과 미국의 핵 군축 직거래는 우리에게 악몽이 될 수 있다.

자유무역협정(FTA)과 세계무역기구(WTO)는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 세계 통상질서를 떠받쳐온 두 축이다. 하지만 미·중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고 공급망 재편이 진행되는 와중에 자유무역은 퇴조하고 보호무역 흐름이 득세하고 있다. 트럼프의 귀환은 미국 이익 중심의 통상·산업 정책의 흐름을 가속·추동할 것이다. 게다가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 대응과 인권 촉진 노력이 미국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

피터 피버 미국 듀크대 정치학과 교수의 진단처럼 트럼프 2기는 1기 때보다 더 위험한 세계다. 그러나 미국의 이익을 앞세운 신고립주의와 보호무역 기조를 당분간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활용하는 쪽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거래를 중시하는 트럼프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잘 봐달라는 읍소 작전은 하책이다. 미국에 어떤 이익을 주고 어떤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구체적이고 분명한 카드를 제시하고 설득하는 자세가 더 유용할 것이다.

예컨대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승리 다음 날 윤석열 대통령과 첫 통화에서 “미국의 조선업은 한국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해군 전함(219척)은 중국(234척)보다 수적으로 열세이고 조선업 기반은 무너졌다. 트럼프가 콕 찍어 언급한 한국 조선업의 선박 MRO(보수·수리·정비) 역량은 트럼프 2기에서 한국이 기여할 여지가 큰 분야다. 이처럼 트럼프와 이너서클의 귀를 잡고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트럼프 2기가 가져올 위기는 얼마든지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