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화석 ‘금팔찌의 집’. [사진출처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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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00년전 폼페이에 닥친 ‘그날의 비극’은 후대가 복원한 화석에 그대로 드러났다.
고대 로마제국의 가장 융성했던 폼페이는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난 후 후대의 복원가들은 폼페이 희생자의 시체가 있던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 당시의 재난 상황을 모형으로 재현했다.
그런데 이들 석고 모형에 붙여진 해석 일부가 실제와 동떨어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이탈리아·독일 등 과학자들로 구성된 연구진은 이날 과학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by)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연구진은 ‘금팔찌의 집’이라고 명명된 공간의 화석에 대한 기존 해석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어른 2명과 아이 2명이 앉아 있거나 누워있는 이 모형에 대해 그동안 복원가들은 이들이 가족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아이를 안고 있는 한 어른이 팔찌를 착용했다는 점을 토대로 그가 두 아이의 어머니이고 나머지 한명은 아버지로 본 것이다.
하지만 석고모형에 들어가 있는 뼛조각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한 결과 네 사람은 모두 남성이며 서로 혈연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어머니와 딸 또는 자매로 추정된 두 사람이 포옹하고 있는 모습의 또 다른 석고 모형도 분석했다.
그 결과 이들 중 한 명은 남성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연구 결과는 그간 폼페이 화석에 대한 일부 해석이 고정관념에 기반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은 장신구를 여성성과 연결하거나 신체적 친밀감을 생물학적 관계의 지표로 해석하는 오랜 방식에 맞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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