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업계 "요즘 중국산 자주 보여"
병원은 깨끗할 거라 믿었던 환자도 불안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검색된 치과용 의료기기 '핸드피스'. 다만 지금은 '판매 불가' 상태다. 알리 익스프레스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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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 익스프레스(알리)'에 '핸드피스'를 검색하니 10만~20만 원대 제품 수십 개가 나왔다. 핸드피스는 충치를 긁어내거나 치아에 구멍을 뚫을 때 사용되는 의료기기다. 보통 국내 치과에서 쓰이는 제품 가격이 60만~90만 원대이니 알리 제품이 2, 3배 싼 셈. 다른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테무'에서 판매하는 핸드피스는 4만~6만 원으로 더 저렴했다.
#'주사바늘'을 검색해봤더니 400여 개 가까이 팔렸다는 중국산 제품이 화면 상단에 떴다. 가격은 50개에 1,400원 수준. 상품 설명엔 바늘 튜브 길이와 소재에 관한 짤막한 설명만 있을 뿐, 허가나 안정성에 관한 문구는 없었다.
최근 중국산 미인증·미허가 의료기기를 알리 등에서 싼값에 사들여 병원에서 사용한 치과의사들이 관세청에 적발됐다. 이들은 단체 메신저방으로 제품 정보도 공유했다. 허가를 받지 않은 의료기기를 치료에 사용하는 건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시민들 사이에서 불안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난해 불법 의료기기 적발률 3배 ↑
2021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에서 열린 치과의사 국가 실기시험.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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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기를 수입하려면 반드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고해야 한다. 개인 자격으로 외국에서 구매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 외국에서 허가를 받았는데 국내에 대체 제품이 없거나 △응급환자 치료에 필요할 경우 등 엄격한 예외 조건이 적용된다. 그러나 본보가 7일 알리·테무 등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검색한 저가 의료기기들은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제품들이다. 수술용 돋보기부터 에어 워터 스프레이, 수술 부위 봉합용 스테이플러 기계, 복강경 흡입 튜브 등은 모두 국내에서도 생산,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식약처 인증 없는 제품일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불법 의료기기를 수입하려다 적발되는 경우는 최근 부쩍 늘었다. 식약처·관세청은 의료기기 수입 및 통관 시 불법 의심 제품을 선별하는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보윤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허가·인증을 받지 않아 적발된 제품(6,958건)이 정상 통과된 제품(5,893건)보다 많아 적발률(54.1%)이 처음 50%를 넘었다. 전년인 2022년(17.8%)보다 크게 늘었다. 가장 많이 적발된 건 마취나 시술 등에 앞서 피부를 뚫기 위해 사용되는 일회용 천자침(2,094건)이었다. 핸드피스도 650건으로 3위를 기록했다.
의료기기 업계 관계자들 역시 '중국발 저가 제품'의 습격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치과용 의료기기 업체 대표 A씨는 "3, 4년 전 해외 직구가 유행하면서 시작된 일인 것 같다"며 "핸드피스처럼 부피가 작아 들여오기 쉬운 제품들이 인기가 많다"고 했다. 16년째 병원에 의료기기를 납품하는 업체 관계자는 "대놓고 물어보진 못하지만 (병원에) 가보면 중국산으로 의심되는 제품이 보일 때가 많다"고 했다.
위생 관념 높은 줄 알았는데... 환자들 불안
치과 의료기기가 식약처 인증을 받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 시민들은 걱정이 크다. 신경 치료를 받으려고 치과를 다니는 김소연(24)씨는 "병원에서 쓰는 건 위생, 안전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치과 의료기기는 내 입에 들어가는 거라 더 두렵다"고 토로했다. 1년에 두세 번씩 잇몸 치료차 치과에 들르는 박재현(52)씨는 "의사한테 어디서 샀느냐고 물어볼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의료기기는 철저한 검사를 거쳐 승인한 것만 사용하게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의사들의 일탈로 여길 게 아니라 의료계가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일단 치과의사협회는 회원들에게 불법 의료기기 구매를 도모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즉각 신고해 달라고 공지했다. 협회 관계자는 "관세청에 적발된 의사들에 대한 법적 절차가 끝나면 징계 등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리 측은 "올해 상반기부터 의료기기 규제를 강화했으나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면서 "규제 당국과 긴밀히 소통하겠다"고 해명했다.
최현빈 기자 gonnalight@hankookilbo.com
허유정 기자 yjheo@hankookilbo.com
강예진 기자 ywh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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