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구수동 중국집 ‘마포장’의 볶음밥. 김도언 소설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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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를 다니다 보니 시나브로 몇 가지 공통된 요소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일종의 전형성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김치찌개를 파는 집은 김치찌개집다운 전형성을, 냉면을 파는 집은 냉면집다운 전형성을, 중국 음식을 파는 집은 중국집다운 전형성을 올곧게 간직하고 있다는 것.
김도언 소설가 |
그렇다면 중국집의 전형성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단품 식사 메뉴를 시키면 딸려 나오는 단무지, 양파, 춘장의 조합, 그리고 볶음밥과 함께 나오는 짬뽕 국물, 테이블마다 놓인 간장병과 식초병이 같은 구성의 쇄말성이 아닐까 싶다. 생각해 보자.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짜장면과 단무지+양파 조합이 처음부터 당연했던 것은 아니었을 테다. 누가 언제 처음 식사를 내면서 종지에 단무지와 양파를 담았는지, 그리고 볶음밥에 짬뽕 국물을 곁들여 줄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그게 어떻게 전국의 중국집으로 퍼져 나갔는지를 생각하면 참 신비할 뿐이다. 어쨌거나 지금 중국집들은 이 ‘국룰’을 지켜가고 있지 않은가.
지금 자리에서 영업한 지 30년 됐다는 중국집 마포장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어지간히 빛이 바랜 낡은 간판은 혹시 폐업을 한 집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2층에 자리한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달큰하고 짭조름한 춘장 냄새와 함께 중국집 특유의 정취와 활기가 느껴진다. 그런데 말이다. 중국집에만 들어서면 공연히 기분 좋고 달뜨는 느낌에 젖는 건 나만의 경험일까. 그러니까 김치찌개집이나 파스타집에 들어설 때는 느껴지지 않는 갸륵한 어떤 파문이 마음밭에 이는 것이다. 그것은 내 짐작으론 아마도 중국 음식이 졸업식이나 입학식이 있는 날, 또는 새집으로 이사를 하는 날 주로 선택된 메뉴라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서사의 행간마다, 그 기억의 구비마다 스며 있는 음식이 바로 중국 음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중국집에만 들어서면 설렘으로 가슴이 파닥이는 건 아닐까.
아마 마포장도 30년 동안 이 동네 사람들에게 그런 곳이었을 테다. 이 집이 막 영업을 시작한 해에도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식이 있었을 테고 가족들과 함께 이 집에 와서 짜장면을 먹었던 이는 어느새 40대라는 중년이 되어 있을 터. 그이는 마포장 앞을 지날 때마다 그날의 미각이 되살아나 입맛을 다시게 되리라. 그런 이가 어디 한둘일까. 오랜 중국집들은 그 동네 사람들에겐 속절없는 세월의 저장소 같은 곳이리라.
마포장의 볶음밥과 짜장면은, 특별할 게 없어서 오히려 특별한 느낌이다. 예의 상술한 서사적 전형성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돼지 지방을 녹인 라드에 야채를 볶고 밥을 넣어 야채의 풍미가 밥에 스며들게끔 뜨겁게 ‘웍질’을 하고 거기에 투박한 계란프라이를 얹어서 나오는 식이다. 함께 나오는 짬뽕 국물도 영혼에 각인되어 있는 딱 그 맛이다. 한 숟갈 떠먹을 때마다 큼지막하게 썬 채소에서 ‘앗살한’ 불 향이 느껴진다. 이 집은 인심도 후해서 2인이 식사를 시키면 먹음직스러운 군만두를 내어준다. 사실, 짬뽕 국물도 볶음밥에만 딸려 나오는 게 아니어서 다른 음식을 먹으면서도 달라고 하면 내어준다.
이런 인심이 결국 단골들에게 일종의 의리와 충성심 같은 걸 심어줬을 테다. 노포들의 전형성은 사실 ‘인심’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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