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장관 '트럼프 맹비난' 재조명에 경질론도…"스타머, 최고 외교술 필요"
"문제는 '말'이 아니라 급변 정세 속 '특별한 관계' 약화" 지적도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트럼프 당선인님, 역사적인 선거 승리를 축하합니다. 영·미의 특별한 관계는 몇 년이고 번성할 것입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를 선언한 직후 빠르게 낸 성명은 군더더기 없이 명료했다.
맹방인 미국과 영국 관계를 지칭하는 '특별한 관계'란 용어도 빠지지 않았다. 윈스턴 처칠 전 총리가 2차대전 후 연설에서 사용한 이후 영국이 미국과 우호관계 강조를 위해 끊임없이 쓰는 표현이다.
그러나 최우방 국가에 들어설 '트럼프 2기'를 바라보는 스타머 정부의 속내는 편치 않아 보인다.
중도좌파 성향의 노동당은 전통적으로 민주당과 더 가까웠고 강한 보수 성향의 트럼프 측과는 기본적으로 '캐릭터가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BBC 방송은 "워싱턴과의 관계에 있어 우리는 또 다른 롤러코스터에 앉은 듯하다"고 해석했고, 폴리티코 유럽판은 "영국 정부에 트럼프 당선이 최악의 악몽인 이유"를 짚었다.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은 지난 7월 스타머 정부가 출범한 이후로 쭉 높게 점쳐지던 분위기였는데, 실제 당선이 확정되자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당장 스타머 내각 주요 인사들이 트럼프 당선인을 향해 쏟아냈던 과거 거친 발언들이 재조명받고 있다. 지난 7월 파이낸셜타임스(FT) 분석에 따르면 스타머 정부 각료 12명이 과거 트럼프를 비판한 전력이 있다.
가장 두드러진 언급은 데이비드 래미 외무장관이 2018년 야당 평의원 시절에 했던 발언이다. 그는 "트럼프는 여성을 혐오하는, 네오나치에 동조하는 소시오패스일 뿐 아니라 국제질서에 큰 위협"이라고 했다.
톰 해리스 전 노동당 하원의원은 이날 바로 텔레그래프 기고에서 "노동당의 오만함이 수십년 내 유일한 영국 친화적 미국 대통령과 관계를 돌이킬 수 없이 망쳤을 수 있다"며 "래미 경질이 특별한 관계에 그가 끼친 피해를 복구하려는 스타머의 진지함을 보여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래미 장관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그가 이번 의회 회기 내 자리를 지킬지도 영국 언론의 관심사가 됐다. 이에 스타머 총리의 대변인은 "예, 그는 외무장관"이라고 답했다.
스타머 내각은 정부 출범을 전후로 한 변화를 봐달라는 입장이다.
하버드대 법대 출신으로 스타머 내각의 '미국통'인 래미 장관은 총선 전 예비내각 외무장관으로서 미국을 수차례 찾아 JD 밴스 부통령 당선인을 포함한 공화당 인사들과 접점을 늘리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스타머 총리가 노동당 대표로 취임한 이후부터는 총선을 거쳐 총리로 일하고 있는 지금까지 '무섭도록 철저하고 신중한' 행보를 보인 걸로 미뤄, 트럼프 2기 정부와 큰 불협화음을 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부터 가자지구 등 중동 문제, 국방비, 무역 문제에 이르기까지 부딪힐 현안은 산적해 있다.
노동당 보좌관 출신인 에드 오언 미국 '서드웨이' 방문 연구원은 폴리티코에 "스타머는 영국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문제를 우선시하기 위해 최고의 외교 기술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핵심은 누가 당선됐느냐가 아니라 다변화하고 급변하는 국제 정세, 그리고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속에 미국과 영국 간 '특별한 관계'가 약해진 데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민주당 빌 클린턴뿐 아니라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원만한 관계였고, 보수당의 리시 수낵 총리는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통령과 잘 지낸 만큼 문제는 개인적, 또는 정당간 '성향' 차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이클 콕스 런던정치경제대(LSE) 명예교수는 LSE IDEAS 블로그에서 "트럼프보다 중요한 문제는 전반적으로 미국에서 영국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라며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미국 국익을 앞세우기 시작한 때에 런던, 그리고 유럽 어디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는 예전만큼 미국에 중요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 |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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