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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트럼프 당선에 떨고있는 韓기업…"크게 못 흔든다" 전망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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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미국 방송에서 연설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AFP=연합뉴스


‘트럼프발 폴리코노미’(Politics Economy, 경제의 정치화) 우려에 한국 산업계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당선으로 미국 정부의 산업 정책에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재생에너지‧전기차‧배터리 등 바이든 정부의 지원 하에 미국 투자를 대폭 늘린 기업들의 긴장도가 높아지고 있다.

우선 미국 이익 중심의 강력한 보호주의 통상과 대중국 압박 수위가 전례 없이 높아질 전망이다. 트럼프는 이전 집권기(2017년 1월~2021년 1월)에 파격적인 보호무역 조치를 취했다. 당시 한국은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셀‧모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 발동, 철강 제품 25% 관세 일괄 부과 등에 타격을 입었다. 이번 집권기에 트럼프는 이전보다 공세적인 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현재 트럼프 재선 캠프는 이전 집권기보다 더 ‘보호 무역’ ‘미국 우선주의’ 성향이 강하고, 이젠 '향후 재선 도전’이라는 브레이크도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당장 한국의 반도체‧자동차 기업들의 대미 투자 계획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바이든 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과학법(칩스법) 등을 만들어 한국 기업들에 보조금·세액 공제 등 혜택을 약속했지만, 트럼프는 지속적으로 IRA를 비판해왔고 폐지도 거론했다. 또 지난달엔 칩스법을 “정말 나쁜 거래”라고 지목하며 당선시 보조금은커녕 오히려 관세를 높여 미국으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주장했다. 칩스법 이후 미국 텍사스 테일러에 2030년까지 총 400억 달러(약 55조7800억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한 삼성전자는 64억 달러(약 8조9300억원)의 보조금을,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38억7000만 달러(약 5조4000억원)를 투자해 패키징 공장을 건립하기로 하면서 4억5000만 달러(약 6300억원)의 보조금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이 보조금이 정권 교체로 지급되지 않을 경우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 계획 축소는 불가피하다. 동시에 트럼프 재선 정부의 관세 인상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중앙일보

김영옥 기자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투자는 지난 3년간 누적 850억2400만 달러(118조8040억원)에 이른다.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대미투자기업(500만달러 이상 대미투자기업 30개사)들은 미국 연방정부‧주정부가 약속한 혜택이 이행되지 않으면 10곳 중 7.6곳이 투자 계획을 변경하겠다는 입장이다. 투자규모를 축소(33.3%)거나 투자 지연(40%), 투자 전면 취소(3.3%) 등 변화를 주겠다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시장의 시계제로를 우려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기차 의무화 및 탄소 배출량 감축 정책 철회를 예고했다. IRA 등을 통한 전기차 지원을 축소하고 환경 규제를 완화해 내연기관차 시장에 힘을 싣겠다는 것이다. 전기차 시장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45%의 성장(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했지만, 지난해엔 27% 성장하는 데 그치는 등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자동차 업계는 미국 내 전기차 생산 공장의 일부 라인을 하이브리드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화물트럭 같은 내연차 생산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실장은 "전기차 의무화 조치가 없다면 미국 내 전기차 수요가 늘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며 “미래를 위한 전기차 투자는 이어가겠지만, 당분간 하이브리드차에 집중하며 시장 상황에 맞춰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정근영 디자이너


재생에너지와 배터리 업계는 울상이다. 배터리 업계는 전기차 산업 축소에 따른 직격탄을 피할 수 없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인한 침체 여파에다 다른 수익원을 새로 만들기도 마땅찮은 상황이다.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산업도 위축될 전망이다. 트럼프는 석유·천연가스·석탄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번 밝혔다. 연방 토지 내 시추 허가 확대 등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트럼프 재선 정부가 들어서도 IRA나 칩스법을 폐지하거나 크게 흔들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들 정책을 바꾸려면 의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한국 반도체나 전기차, 재생에너지 업체들의 투자가 집중된 남부 지역이 대부분 공화당 우세 지역이라서다. 한국 기업들의 일자리 창출을 환영하는 주 정부와 의회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란 의미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겉으로 드러난 트럼프의 메시지는 세지만, IRA나 칩스법을 폐지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고 일부 조항이 바뀔 수 있는데 그 변화의 정도와 범위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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