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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 (목)

[기고] 고립의 시대, 외롭다면 도움 청해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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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최근 누구도 고립되지 않는 행복한 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으로 ‘외로움 없는 서울’을 발표했다. ‘동행’이라는 서울의 슬로건이 마음 깊이 다가오는 듯했다.

어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일종의 ‘상상력’처럼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시대다. 서울에만 청년 13만명이 고립돼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전국 단위는 54만명을 바라보고 있다. 일본의 히키코모리 인구가 중장년을 포함해 약 16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인구 대비 많은 수준이다. 이제는 정말 대책이 간절한 시점에 서울시가 의미 있는 발표를 한 것이다.

세계일보

유승규 ㈜안무서운회사 대표·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은둔고수


그동안 자살예방센터 같은 곳은 있었지만 외로움이나 고립감을 느낄 때 선제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곳은 없었다. 갈 수 있는 장소, 함께할 수 있는 식사, 배달, 편의점 등과 협업해 사전에 방비하거나 발굴하는 시도를 넘어 돌봄고독정책관까지 신설됐다니…. 외국인들이 한국이나 일본으로의 이주를 고민하다가 한국을 결정하는 주된 이유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이나 발전 속도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업무차 일본에 자주 출장을 가곤 하지만, 30년 넘은 일본의 히키코모리 지원의 역사에 비해서도 뒤처지지 않는 빠르고 견고한 시작이라고 생각된다.

현시대에는 많은 사람이 고립감을 느낀다. 직장에서의 관계, 취업, 왕따, 가족의 서사 등 모종의 이유로 위축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이 사회에 내가 있을 자리가 없다고 느낀다. 그러다 살이라도 조금 찌거나 피부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주위의 연락도 잘 받지 않게 되면서 소위 말하는 은둔형 외톨이 상태가 되기 쉽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쉽사리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왜일까.

누구도 ‘지금 상태에서 도움을 요청해도 됩니다’라고 좀처럼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전쟁과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선택과 집중을 통한 효율성을 우선시해왔다. 우리는 과연 효율적인 인간인지,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를 고민하면서 항상 효율과 성과의 그늘 속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국가는 고도성장을 이뤄냈지만, 정작 개인은 자살률 증가와 출산율 하락 등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인터넷은 점점 빨라지고 온라인상 공간에서 모두가 연결돼 있음에도 우리는 더 고독하고 외로워지고 있다.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던 외로움에 대응하기 위해 서울시가 공식적으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마치 “시민 여러분, 외롭다면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습니다”라고 위로해 주는 것 같다. 흔히 도움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도움받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고 한다. 서울시의 대책은 시민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외롭다면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이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21세기 단절의 시대를 정면 돌파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해결책 아닐까.

나 역시도 과거 5년의 은둔생활을 상담센터와 병원의 힘만으로는 벗어나기 어려웠다. 당시 유일했던 일본 기업의 히키코모리 지원을 받으며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동반된 덕분에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는 국내 서비스가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약물 처방보다 더 효과가 좋을지도 모르는 서울시의 사회적 관계 처방을 통해 우리 모두 보다 행복해지길 기대한다.

유승규 ㈜안무서운회사 대표·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은둔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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