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크면 실망도 크다더니…
“애플 발표를 보며 생각했다. 먼저 치고 나가는 사람이 꼭 위너는 아니다. 인공지능(AI) 경쟁은 언어모델 싸움에서 서비스 경쟁으로 넘어가는 단계다. AI로 카카오가 잘할 수 있는 건 결국 쉬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말로만 설명하면 공허할 수 있다. 올해 안에 결과물을 보여주겠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가 지난 6월 카카오 데이터센터 안산에서 열린 프레스 밋업 행사에서 밝힌 말이다. 당시 정 대표가 언급한 애플의 발표는 오픈AI와 파트너십을 통해 음성 비서 ‘시리(Siri)’에 챗GPT를 접목한다고 밝힌 내용이다. 쉽게 말해 직접 생성형 언어모델(LLM) 개발하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필요하다면 잘하는 기업 솔루션도 가져다 활용해 ‘좋은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의미였다. 발표 이후 4개월이 지난 10월 22일 정 대표는 절반의 약속을 지켰다. 카카오식 AI 서비스 ‘카나나(KANANA)’의 청사진을 내놓은 것. 다만 시장 반응은 ‘실망스럽다’에 가깝다. 특히 카카오톡 연계가 아닌 별도 앱 출시를 두고 부정적 평가가 이어진다. 발표 당일 주가도 5% 가까이 빠졌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가 ‘if kakao AI 2024’ 행사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카카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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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AI 비서 ‘카나나’
모델 오케스트레이션 전략
‘가장 나다운 AI’. 카나나에 담긴 뜻이다. 카카오에 ‘나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의미로 네이티브(Native)가 더해지고 ‘자연스럽게 사용 가능한 기술’ 뜻의 내추럴(Natural) 단어가 조합된 형태다. 정 대표는 10월 22일 ‘이프 카카오(if kakao) AI 2024’ 행사에서 카나나를 소개하며 일상 속 AI 친구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 대표는 “일상의 다양한 맥락 속에 각각 자아가 존재하는데, 이를 이해하고 개인화한 결괏값을 낼 수 있을 때 가장 나다운 AI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이런 방향성을 담은 게 카나나”라고 설명했다.
카나나는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다. 카나나는 개인 비서 ‘나나’와 그룹 매니저 ‘카나’를 통해 구현된다. 1대1 대화나 단체 대화 등 이용자가 카나나로 주고받은 모든 메시지를 나나가 기억한다. 이후 일정 관리 등 비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이용자가 ‘콘퍼런스 참석’을 두고 회사 동료 등과 대화를 나눴다면, 행사 직전 콘퍼런스 일정 등을 재차 알려준다. 또 행사가 끝난 뒤 나나가 “콘퍼런스 어땠어?”라고 먼저 말을 걸기도 한다. 카나는 자신이 포함돼 있는 단체 대화방에서 주고받은 메시지만 기억한다. 카나의 경우 스터디 모임방에서 학습한 내용을 토대로 퀴즈를 내달라고 요청할 수 있고, 채점도 해준다. 가족 대화방에서는 “숙소 추천해줘”라고 하면 그동안 나눈 대화를 통해 가족들 취향을 예측, ‘전망 좋고 힐링할 수 있는 가성비 숙소’를 알아서 추천한다.
카나나 서비스를 위해 카카오는 ‘모델 오케스트레이션’ 전략을 활용했다. 모델 오케스트레이션은 카카오가 자체 개발한 LLM뿐 아니라 오픈소스나 글로벌 언어모델의 API 등을 조합해 병행 사용한다는 의미다. 지난 6월 정 대표가 밝힌 방향성과 같은 맥락이다. 정 대표는 “현재 나와 있는 각각의 모델은 추론, 이해, 요약, 수학, 코딩 등 개별 영역에서 최고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지만 모든 요소에서 종합 1위를 하는 것은 아직 없다”며 “카카오에서 만드는 AI 서비스는 각 질문에서 가장 좋은 답을 낼 수 있는 모델을 조합해 사용하고, 같은 성능을 내는 모델 중에서는 가장 비용이 낮은 모델을 선택하도록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이상호 카나나엑스 성과리더 뒤로 개인 메이트 ‘나나’ 캐릭터와 그룹 메이트 ‘카나’ 캐릭터가 보인다. (카카오 제공) |
시장 반응은 ‘글쎄’
별도 앱 구축 두고 의문
다만 카나나를 향한 AI 업계와 시장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존 챗GPT 등 대화형 AI 서비스와 큰 차별화 포인트가 없기 때문. 그룹 대화에도 AI를 적용했다는 점은 눈에 띄지만 그게 전부라는 설명이다.
오동환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카카오의 AI 카나나, 차별성 과제’ 리포트를 내놓고 “카카오가 발표한 AI 서비스는 시장에 새로움을 주기에 다소 부족했다고 판단한다”며 “대화형 AI 서비스 카나나는 제한적인 채팅 정보만으로는 챗GPT 대비 차별적이거나 더 나은 답변을 제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오 애널리스트는 “정신아 대표는 AI를 차기 성장동력으로 내세웠으나, 실제로 카카오 성장을 이끌 만한 서비스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선화 KB증권 애널리스트도 카나나 발표 이후 내놓은 리포트에서 카카오 목표주가를 5만8000원에서 5만3000원으로 하향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카나나의 구체적인 출시 일정, 수익 창출 방법 등이 공개되지 않아 펀더멘털 기여도를 예측하기 어려워 아쉽다”고 말했다. 카나나는 연내 사내 비공개 베타테스트(CBT) 이후 2025년 상반기 출시가 예상된다.
시장에서 차별화 부족보다 문제로 꼽는 건 ‘별도 앱 구축’이다. 당초 시장에서 기대한 카카오식 AI는 ‘카카오톡과의 시너지’였다. 하지만 카카오는 카나나를 별도 앱으로 출시할 방침이다. 이상호 카나나엑스 성과리더는 “카카오에서 AI 서비스를 낸다고 했을 때 당연히 카카오톡 중심 서비스를 선보일 것으로 생각했을 것 같다. 별도 앱 출시 이유는 분명하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카카오톡이라는 기존 틀을 깨는 실험적 시도와 변화가 필요하다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UI, UX 등 카카오톡 메신저의 익숙함과 장점은 계승하되 AI 기술이 무한한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신규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봤다”고 밝혔다.
다만 AI 업계 관계자들은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첫째는 ‘카카오톡 성능’ 문제다. 최근 카카오톡을 향한 키워드 중 하나는 ‘무겁다’다. 온갖 서비스가 카카오톡에 적용되고 광고 기능을 확대하다 보니 성능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카카오톡 먹통이 잦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카카오톡은 올해만 5차례 ‘먹통’이 됐다. 카카오 측은 장애의 구체적 원인을 밝히진 않았다.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AI 서비스를 적용하기에는 이미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카카오톡이 고민거리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별도 앱 관련 또 다른 해석은 ‘개인정보보호’ 문제다. 대화형 AI 서비스의 핵심은 ‘대화의 데이터화’다. 이를 위해 이용자 개인정보 활용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규제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이 애널리스트는 “카나나는 신규 애플리케이션으로 출시돼 개인정보보호 이슈에서 자유롭게 됐다”고 말했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3호 (2024.11.06~2024.11.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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